2026-06-08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 최남단에 위치한 다롄(大連)은 조금 특별한 도시다.
중국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지만 다롄만큼 독특한 도시적 정체성을 가진 곳은 흔치 않다. 베이징도 아니고 상하이도 아니다. 광저우도 선전도 아니다. 다롄은 바다를 품은 항구도시이면서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중국이라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문명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도시다.
19세기 말 러시아가 이곳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러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이 도시 건설을 이어받았다. 오늘날 중국이 발전시킨 현대적 도시 위에 러시아의 도시계획과 일본의 근대 건축이 여전히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다롄의 거리를 걷다 보면 중국에 있으면서도 중국 같지 않은 느낌을 받게 된다. 유럽풍 광장이 나타났다가 일본식 벽돌 건물이 등장하고, 그 뒤로는 초고층 빌딩이 솟아오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두 곳이었다.
하나는 도시의 기억을 복원한 역사문화거리 ‘동관가(東關街)’였고, 다른 하나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낸 ‘동방수성(東方水城)’이었다.
흥미롭게도 두 공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을 걷다 — 동관가 역사문화거리>
동관가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벽돌이다.
낮은 건물들.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
그리고 사람의 속도에 맞춰진 골목길.
고층빌딩이 도시의 배경이 되어 멀리 서 있고, 거리의 주인공은 오롯이 사람이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거리가 아니다.
과거 다롄의 생활문화와 근대도시의 흔적을 보존하고 복원한 역사문화거리다. 러시아와 일본 통치 시기에 형성된 건축적 특징을 살려 리모델링하고, 그 안에 카페와 레스토랑, 디자인숍과 문화시설을 채워 넣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익선동과 성수동, 인천 개항장을 하나로 합쳐놓은 듯한 분위기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거리 전체가 하나의 브랜드처럼 디자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간판의 높이와 색채는 절제되어 있고, 포장재와 가로시설물도 통일성을 유지한다. 사인시스템은 중국어와 영어, 픽토그램을 함께 사용해 국제 관광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과거를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이었다.
많은 도시재생 사업이 건물을 보존하는 데만 집중한다. 하지만 동관가는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생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건축을 보존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보존한 것이다.
거리 곳곳을 걷다 보면 마치 오래된 도시의 기억 속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상상력으로 만든 베네치아 — 동방수성>
동관가가 기억의 공간이라면 동방수성은 상상의 공간이다.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베네치아’였다.
운하가 흐르고 있다.
수변 산책로가 이어진다.
광장이 펼쳐지고 시계탑이 솟아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마르코 광장을 연상시키는 시계탑과 아케이드, 르네상스풍 건축물이 시야를 채운다.
하지만 이곳은 베네치아가 아니다.
중국 다롄이다.
동방수성은 중국이 가진 압도적인 개발 역량과 도시기획 능력이 만들어낸 거대한 공간 프로젝트다. 역사도시를 보존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새로운 도시 풍경을 창조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복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을 걷다 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진짜 베네치아를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곤돌라를 타고,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온다.
도시가 반드시 역사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 또한 도시를 만드는 중요한 재료가 될 수 있다. 특히 광장과 수변공간의 스케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운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연결하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건물들은 수변을 향해 열려 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걷고 머무른다.
멀리 보이는 시계탑과 운하, 그리고 수변 카페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억과 상상력 사이를 오가는 다롄>
이번 다롄 여행에서 만난 두 공간은 서로 정반대의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동관가(東關街)는 과거를 복원한 공간이고, 동방수성(東方水城)은 미래를 상상한 공간이다.
하나는 기억을 기반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두 공간 모두 결국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사람은 건물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 공간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좋은 공간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품은 장소가 된다.
동관가(東關街)에서 나는 도시의 시간을 걸었다.
동방수성(東方水城)에서는 도시의 상상력을 걸었다.
그리고 그 두 공간 사이에서 다롄이라는 도시가 왜 중국에서 가장 독특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설계하고, 일본이 확장하고, 중국이 완성한 도시.
다롄은 지금도 그렇게 과거와 미래, 기억과 상상력이 공존하는 도시로 살아가고 있었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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