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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이슈] ‘알파벳’이라는 시각 언어로 연결한 현대카드의 새로운 브랜드 실험 — 카드 플레이트에서 전용 서체, 패키지, 팝업 공간, 굿즈까지 하나의 브랜드 생태계로 설계하다

2026-08-06

지난 2003년 현대카드는 신용카드 전면에서 기업의 긴 이름을 지우고 단 하나의 알파벳 ‘M’을 내세웠다. 당시 대부분의 신용카드가 카드사의 이름과 로고, 제휴사, 혜택 정보를 전면에 빼곡하게 배치하던 상황에서 ‘M’이라는 한 글자는 낯설고도 대담했다.

 

그것은 단순히 카드 이름을 짧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M은 포인트 적립이라는 상품 기능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사용자의 소비 성향을 드러내는 하나의 기호가 됐다. 

 

이후 쇼핑을 위한 S, 여행과 이동, 자동차, 통신, 생활 등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알파벳 카드들이 등장했다. 신용카드를 결제 수단이 아니라 사용자의 생활방식과 취향을 표현하는 매체로 바라본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현대카드가 알파벳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돌아온 알파벳은 과거 상품명의 반복이 아니다. 각각 흩어져 있던 알파벳을 하나의 체계 안에 다시 모으고, 카드 상품군 자체를 별도의 브랜드로 독립시키는 작업이다. 

 

현대카드는 2025년 5종으로 다시 시작한 알파벳카드 라인업을 2026년 총 11종으로 확대하면서 ‘Alphabet for Life’라는 슬로건 아래 새로운 브랜드 세계관을 구축했다. 현대카드 역시 이번 프로젝트를 개별 상품을 넘어선 독자 브랜드의 출범으로 설명한다. 

 

이번 ‘알파벳카드’가 주목되는 이유는 카드의 외형이 새로워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카드 플레이트와 혜택 체계, 전용 서체, 패키지, 광고, 공간, 굿즈까지 하나의 시각 언어로 연결해 ‘카드를 둘러싼 전체 경험’을 설계했다는 점에 있다.

 

현대카드의 새로운 실험은 신용카드 디자인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카드사가 아니라 ‘알파벳’이 전면에 등장하다>

 

새로운 ‘알파벳카드’의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카드 앞면에서 현대카드 CI를 과감하게 제외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금융회사의 로고는 신뢰와 책임의 표시로 여겨진다. 특히 신용카드는 고객이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금융상품이기 때문에 카드사의 이름과 로고가 가장 중요한 시각 요소로 취급돼 왔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이번 카드에서 회사 이름보다 개별 알파벳을 앞세웠다.

 

B, D, H, O, R, S, T 등 각각의 글자는 단순한 상품 구분 기호가 아니다. 뷰티, 다이닝, 홈, 모빌리티, 쇼핑, 여행 등 사용자의 주요 생활영역을 상징하며, 알파벳 한 글자가 카드의 기능과 라이프스타일을 동시에 대변하는 구조다.

 

기업 브랜드보다 상품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도전적인 선택이다. 소비자가 카드를 볼 때 ‘어느 회사의 카드인가’보다 ‘나의 삶을 어떤 글자가 설명하는가’를 먼저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카드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알파벳카드’를 “라이프스타일을 알파벳에 담은 또 다른 현대카드”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카드별로 외식과 배달, 교육과 의료, 자동차 생활, 쇼핑, 해외 사용 등 구체적인 소비영역을 구분해 혜택을 제공한다. 

 

카드 전면에서 회사 로고를 제거한 선택은 브랜드가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현대카드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도 현대카드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디자인 자산을 축적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브랜드가 강해질수록 로고는 작아지고, 때로는 사라질 수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하나의 마크가 아니라 색상과 비례, 서체, 재료, 움직임, 사용 경험 전체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알파벳카드‘는 바로 그 단계에 도전한다.

 

 

 

새로운 상품 '알파벳카드'는 단일 카드 상품의 출시를 넘어,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한 독자적인 브랜드이다.

 

 

<개별 상품을 모아 ‘브랜드 생태계’를 만들다>

 

과거의 알파벳카드가 M, S, W, T처럼 개별적인 카드 상품의 집합이었다면, 이번 ’알파벳카드‘는 모든 상품을 하나의 상위 브랜드 아래 조직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변화는 상품의 수가 늘어난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기존에는 새로운 카드가 출시될 때마다 별도의 이름과 디자인, 혜택 체계를 개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각각의 상품은 독립적으로 존재했으며, 카드 사이에 시각적·개념적 연결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품 수가 증가할수록 브랜드는 복잡해지고 소비자의 선택 부담도 커진다.

 

’알파벳카드‘는 이를 하나의 문법으로 정리한다.

 

모든 상품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알파벳 구조, 카드 비례에서 출발한 전용 서체, 반복되는 그래픽 시스템과 패키지 규격이 브랜드의 기본 문법이 된다. 그 안에서 각 알파벳은 서로 다른 혜택과 색, 재질, 이미지를 갖는다.

 

쉽게 말해 각각의 카드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지만, 모두 같은 가족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방식은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이나 자동차 브랜드의 모델 라인업과 유사하다. 개별 제품의 차이를 강조하면서도 전체 브랜드의 인상을 잃지 않는다. 사용자는 하나의 카드만 선택하지만, 동시에 더 큰 알파벳카드 세계에 편입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디자인의 통일이 아니라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통일성’에 있다.

 

11개 카드의 성격을 지나치게 동일하게 만들면 라이프스타일별 차별성이 약해지고, 반대로 각 카드의 개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하나의 브랜드라는 인식이 무너진다. 알파벳카드는 공통된 구조 안에 색상과 재질, 글자, 혜택의 차이를 담아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그래픽 디자인이 아니라 복수의 상품을 장기간 운영하기 위한 브랜드 시스템 디자인에 가깝다.

 

<카드의 비례가 글자의 뼈대가 되다>

 

’알파벳카드‘ 브랜드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전용 서체다.

 

현대카드는 오래전부터 서체를 기업의 중요한 디자인 자산으로 활용해 왔다. 대표적인 전용 서체 ‘유앤아이(Youandi)’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광고, 사인, 인쇄물, 디지털 화면 등에 폭넓게 적용되면서 기업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통일해왔다.

 

현대카드에서 서체는 정보를 적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브랜드의 태도와 성격을 전달하는 일종의 표정이다.

 

새로운 ‘알파벳카드’ 전용 서체 역시 이 같은 전통 위에서 출발한다. 다만 기존의 서체를 알파벳카드에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카드라는 물건 자체를 글자의 설계 원리로 삼았다.

 

서체의 기본 비례는 실제 신용카드의 가로와 세로 비율인 약 1:1.58에서 출발한다. 둥근 카드 모서리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직선과 사선으로 대비를 만들고, 글자 하나하나가 작은 카드 또는 카드가 결합된 구조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그 결과 알파벳은 읽히는 문자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그래픽 모듈이 된다.

 

특히 카드 플레이트에 크게 배치된 알파벳은 상품명을 표시하는 타이포그래피이자 카드 표면을 구성하는 이미지다. 글자와 그림, 정보와 장식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이번 프로젝트가 네덜란드 디자인 스튜디오 LAVA와 협업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알파벳카드’의 디자인에는 강한 색상 대비, 구조를 노출하는 타이포그래피, 모듈의 반복과 변주 등 실험적인 더치 디자인의 특징이 나타난다.

 

하지만 시각적 실험이 목적 없는 장식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카드의 규격과 기능이라는 현실적인 조건을 조형 원리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디자인의 논리가 명확하다.

 

‘카드를 닮은 서체’가 아니라, 카드의 구조가 곧 서체가 된 것이다.

 

이번 브랜딩은 카드 플레이트 외에도 서체와 패키지, 팝업 굿즈까지 하나의 브랜드로써 전 영역의 시각 언어를 연결하여 브랜드의 완결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결과물이다.

 

 

서체의 모든 요소는 카드의 부드러운 모서리 디테일과 세련된 시각적 대비를 이루도록 과감한 직선 그리고 사선 엣지로 완성했다. 이 직선 실루엣은 모든 요소 전반에 일관되게 적용돼 서체의 통일감 있는 인상을 유지한다.

 

알파벳카드의 가장 큰 시각적 특징은 카드 전면에서 현대카드 CI를 과감히 제외하고 알파벳 자체와 타이포그래피적 조형미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후면의 카드 정보에도 알파벳카드 폰트를 적용하여 일관성을 유지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다.

 

 

<하나의 로고가 아니라 움직이는 시스템>

 

‘알파벳카드’ 서체는 고정된 한 가지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굵기와 폭을 조절할 수 있는 가변 폰트 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매체와 화면 비율에 대응한다.

 

3가지 두께인 Light, Regular, Bold와 3가지 폭인 Condensed, Regular, Wide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인쇄물처럼 고정된 지면뿐 아니라 모바일 화면, 영상, 옥외광고, 간판, 공간 그래픽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도 같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가변성은 오늘날 브랜드 디자인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의 기업 아이덴티티는 일정한 형태의 로고를 모든 매체에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는 화면의 크기와 비율이 계속 바뀌고, 정지 이미지뿐 아니라 움직임과 반응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나의 고정된 로고만으로 모든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현대의 브랜드는 고정된 상징보다 변화의 원칙을 필요로 한다.

 

‘알파벳카드’의 전용 서체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일종의 브랜드 엔진이다. 알파벳의 폭과 굵기가 달라지더라도 카드 비례와 직선적인 구조, 모서리의 특징은 유지된다. 모습은 변하지만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카드는 ‘알파벳카드’ 전용 폰트를 카드와 패키지, 광고 등 브랜드 전반에 적용해 통합된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서체를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브랜드가 계속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생성 시스템으로 바라본 접근이다.

 

<플레이트는 가장 작은 브랜드 공간이다>

 

신용카드의 면적은 작다. 그러나 사용자가 가장 자주 접촉하는 브랜드 공간이기도 하다.

 

‘알파벳카드’는 제한된 카드 표면을 하나의 작은 포스터처럼 활용한다. 회색으로 구성된 알파벳 그리드 안에서 해당 카드의 글자만 강한 색으로 강조되고, 일부 글자는 카드 안에 또 다른 카드가 삽입된 것처럼 표현된다.

 

이 구조는 카드 종류를 구분하는 기능과 시각적 재미를 동시에 제공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카드에 해당하는 알파벳을 찾게 되고, 전체 알파벳 가운데 특정 글자가 선택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이는 수많은 생활방식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하나를 고른다는 알파벳카드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플레이트는 소재와 분위기에 따라 Metal, Bright, Soft 세 가지 유형으로 확장된다.

 

Metal은 금속 소재의 물성과 정밀한 인상을 강조하고, Bright는 강한 색상 대비를 통해 젊고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Soft는 절제된 색조와 부드러운 인상으로 보다 차분한 취향에 대응한다.

 

동일한 혜택을 가진 카드라도 사용자가 자신의 미적 취향에 따라 물성과 색상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디자인이 상품 혜택의 부수적인 포장이 아니라 실제 선택 조건의 하나가 됐음을 보여준다. 신용카드를 고르는 기준이 할인율과 연회비에만 머물지 않고, 매일 손에 들고 사용하는 물건의 인상과 감촉으로 확장된다는 판단이다.

 

스마트폰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실물 카드의 사용 빈도는 줄어들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실물 카드는 더욱 상징적인 물건이 된다. 반드시 필요해서 소지하는 도구라기보다 사용자의 취향과 소속감을 드러내는 오브제로 변화하는 것이다.

 

‘알파벳카드’의 플레이트 디자인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선제적으로 읽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패키지는 폐기되는 포장인가, 첫 번째 브랜드 경험인가>

 

대부분의 신용카드 패키지는 배송을 위한 임시 포장으로 취급된다. 카드와 약관, 안내문을 안전하게 전달하면 역할이 끝난다. 고객 역시 카드를 꺼낸 뒤 포장재를 버리는 경우가 많다.

 

‘알파벳카드’는 이 짧은 순간을 브랜드 경험의 시작으로 다시 정의한다.

 

플라스틱 카드 패키지는 기존의 가로형 구성을 세로형으로 전환했다. 카드와 인쇄물이 위에서 아래로 연결되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세로 방향의 플레이트 디자인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메탈 카드 패키지는 더욱 구조적이다. 외부의 모든 면을 90도 직각으로 정리하고 장식을 최소화했다. 내부에는 보드 합지와 V컷 가공을 적용해 견고한 형태를 구현했으며, 패키지를 열었을 때 카드가 나타나는 위치와 각도, 움직임까지 반복적으로 검토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급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카드를 꺼내는 행동에 시간과 순서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패키지를 열고, 내부의 그래픽을 보고, 인쇄물을 지나, 마지막에 자신의 알파벳을 마주하는 과정이 하나의 작은 의식처럼 구성된다.

 

브랜드는 상품을 사용하기 시작한 뒤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택배 상자를 받고 포장을 여는 순간부터 형성된다. 최근 기술·패션·화장품 브랜드들이 언박싱 경험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파벳카드’는 금융상품에도 이러한 경험 설계가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금융상품의 패키지는 환경적 책임이라는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높은 완성도의 포장이 일회성 폐기물로 끝난다면 디자인의 성취가 오히려 과잉 포장이라는 비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앞으로 패키지가 보관함이나 카드 케이스, 오브제로 재사용될 수 있도록 기능을 확장하거나 소재와 제작방식의 지속가능성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잘 만든 패키지’ 다음의 과제는 ‘버리지 않아도 되는 패키지’다.

 

 

 

플라스틱 패키지는 기존 가로형 레이아웃을 세로형으로 전환해 카드와 동봉되는 각종 인쇄물을 하나의 흐름으로 구성했으며, 세로형 카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했다.

 

 

 

메탈 패키지는 카드를 꺼내는 순간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 세밀하게 설계됐다. 내부는 보드 합지와 V컷 가공을 적용해 견고한 형태와 높은 완성도를 구현했다.

 

 

 

키캡, 티셔츠, 에코백 등 다양한 굿즈에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알파벳을 적용해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취향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카드가 공간과 굿즈로 확장될 때>

 

‘알파벳카드’의 세계관은 카드와 패키지에 머물지 않는다.

 

현대카드는 9월 13일까지 서울 이태원 바이닐앤플라스틱에서 팝업을 열고, 알파벳카드의 서체와 그래픽 시스템을 공간과 상품으로 확장한다. 키캡과 티셔츠, 에코백, 맥세이프 카드지갑, 스티커, 음료와 식품 등 일상의 다양한 물건에 알파벳을 적용했다.

 

방문자는 마그넷으로 자신만의 단어나 문장을 만들고, 이름이나 이니셜을 조합한 키캡 키링을 제작할 수 있다. 전시된 디자인을 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알파벳을 선택하고 조합하며 자신의 기호를 만들어보는 참여형 경험이다.

 

이 지점에서 ‘알파벳카드’는 금융상품에서 문화상품으로 이동한다.

 

카드를 발급받지 않은 사람도 팝업 공간에 들어와 전용 서체를 보고, 알파벳을 조합하고, 굿즈를 구매할 수 있다. 신용카드의 고객이 아닌 사람까지 브랜드 경험의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카드가 오랫동안 음악과 미술, 건축, 서점, 공연, 미식 등 문화 영역을 통해 브랜드를 확장해 온 방식과 맞닿아 있다. 현대카드는 금융회사의 브랜드가 반드시 금융상품 안에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보여줬다.

 

이번 팝업에서도 핵심은 굿즈 판매 자체가 아니다.

 

카드에 적용된 그래픽을 일상적인 물건으로 이동시키고, 사용자가 자신만의 조합을 만들게 함으로써 알파벳을 기업의 소유물에서 사용자의 표현 도구로 전환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알파벳은 본래 결합을 통해 의미를 만드는 기호다. 하나의 글자가 모여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듯, 개별 카드와 사용자, 상품과 공간이 연결돼 브랜드의 이야기를 확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알파벳은 이번 브랜드에 매우 적절한 이름이자 시스템이다.

 

 

9월 13일까지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바이닐앤플라스틱에서 열리는 알파벳카드 팝업은 카드를 소개하는 공간을 넘어 알파벳카드를 직접 경험하는 플랫폼이다.

 

 

<금융회사가 디자인을 대하는 방식>

 

현대카드는 국내 금융업계에서 디자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경영에 활용해 온 기업 가운데 하나다.

 

많은 기업이 디자인을 상품 출시의 마지막 단계에서 외형을 다듬는 작업으로 이해해왔다. 상품 구조와 마케팅 전략이 결정된 뒤 디자이너에게 보기 좋은 결과물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현대카드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반대 방향을 선택했다. 카드 크기와 방향, 숫자의 배치, 서체, 사옥과 문화공간, 광고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을 상품과 사업전략을 만드는 초기 단계에 참여시켰다.

 

그 결과 현대카드의 디자인 프로젝트는 단순히 아름다운 카드 한 장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카드 상품을 분류하는 방법, 소비자에게 혜택을 설명하는 방식, 기업이 문화적 이미지를 획득하는 과정까지 변화시켰다.

 

이번 ‘알파벳카드’ 역시 디자인이 상품의 표면이 아니라 사업 구조를 정리하는 도구로 사용된 사례다.

 

11종의 카드를 알파벳이라는 체계로 분류하고, 라이프스타일별 혜택을 한 글자로 압축하고, 상품군 전체를 독립 브랜드로 묶었다. 이어 카드 규격에서 서체의 비례를 만들고, 서체를 패키지와 공간, 굿즈로 확장했다.

 

전략에서 제품으로, 제품에서 그래픽으로, 그래픽에서 경험으로 이어지는 연결 구조다.

 

현대카드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가장 특별한 아이디어는 새로운 색이나 모양 하나가 아니다. 상품·언어·물성·공간을 서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했다는 것이다.

 

<혜택보다 디자인이 먼저 보이는 카드의 가능성>

 

신용카드 시장에서 소비자의 최종 선택을 좌우하는 것은 여전히 할인율과 적립률, 연회비, 전월 실적 조건이다. 디자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상품의 실질적 혜택이 부족하면 장기적인 사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알파벳카드’도 이 현실에서 예외일 수 없다. 각 알파벳이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려면 소비자가 자신의 생활과 카드 혜택 사이의 관계를 즉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알파벳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상품 수가 지나치게 늘어날 경우, 오히려 어떤 카드를 선택해야 하는지 혼란을 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알파벳카드’의 성공 여부는 강렬한 첫인상보다 이후의 운영에서 결정될 것이다.

 

첫째, 각 알파벳과 생활영역의 연결을 얼마나 명확하게 유지하는가가 중요하다. B가 무엇을 의미하고, H와 R은 어떤 사용자를 위한 카드인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인식돼야 한다.

 

둘째, 사용자의 생활이 변화할 때 카드도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초년생이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거나, 자동차를 구입하고 여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다른 알파벳으로 전환하거나 복수의 카드를 조합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플레이트와 패키지에서 구축한 높은 디자인 완성도가 앱과 명세서, 혜택 안내, 상담, 카드 교체와 해지 과정까지 이어져야 한다. 브랜드 경험은 아름다운 카드를 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혜택을 확인하고 결제 내역을 살피며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이 브랜드다.

 

‘알파벳카드’의 진정한 완결성은 오프라인 디자인보다 디지털 서비스 경험에서 검증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화를 넘어 ‘자기표현의 플랫폼’으로>

 

‘알파벳카드’가 가진 가장 큰 확장 가능성은 개인화에 있다.

 

현재는 카드사가 마련한 11개의 라이프스타일 가운데 사용자가 자신에게 맞는 알파벳을 선택하는 구조다. 그러나 앞으로는 여러 알파벳을 조합하거나 자신의 이름과 관심사를 반영해 플레이트와 혜택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행과 외식, 쇼핑을 즐기는 사용자가 T, D, S의 혜택을 일정한 비율로 선택하거나, 앱에서 자신의 소비패턴에 따라 알파벳 조합을 추천받을 수 있다. 사용자가 삶의 변화에 맞춰 알파벳의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알파벳은 단순한 카드 상품명이 아니라 금융 서비스를 구성하는 모듈이 된다.

 

전용 서체의 가변형 구조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글자의 폭과 굵기가 환경에 따라 변화하듯, 카드 상품도 사용자의 생활과 소비 방식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다.

 

팝업에서 알파벳 마그넷과 키캡을 직접 조합하게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완성된 브랜드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사용자가 직접 글자를 선택하고 의미를 만들도록 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알파벳카드’가 지향할 수 있는 미래는 ‘나에게 맞는 카드를 고르는 것’을 넘어 ‘나의 카드를 구성하는 것’이다.

 

<브랜드의 완결은 동일함이 아니라 연결에서 온다>

 

이번 ‘알파벳카드’ 프로젝트는 좋은 브랜딩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흔히 브랜드의 일관성이라고 하면 같은 로고와 같은 색을 반복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진정한 일관성은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제품과 환경, 사용자 경험이 하나의 원칙으로 연결돼 있다는 확신을 주는 데 있다.

 

‘알파벳카드’에는 11개의 서로 다른 상품이 존재하고, 플라스틱과 메탈이라는 다른 물성이 있으며, 카드와 패키지, 디지털 화면, 공간, 의류, 가방, 식품처럼 전혀 다른 매체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되는 이유는 알파벳, 카드 비례, 전용 서체, 색상 체계, 직선과 사선의 조형원리가 모든 접점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카드 한 장의 디자인이 아니라 관계의 디자인이다.

 

현대카드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신용카드라는 작은 사각형 안에 브랜드를 가두지 않았다. 카드에서 글자를 꺼내고, 글자를 패키지와 공간에 적용하고, 공간에서 다시 사용자의 물건과 행동으로 연결했다.

 

카드 플레이트가 브랜드의 출발점이라면 패키지는 첫 만남이고, 팝업은 체험의 장소이며, 굿즈는 일상으로 이어지는 매개가 된다. 각각의 요소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역할을 나눠 갖는다.

 

<다시, 알파벳으로 돌아간 이유>

 

알파벳은 가장 기본적인 문자 체계다. 수많은 단어와 이야기가 제한된 수의 글자에서 시작된다.

 

현대카드가 20여 년 만에 다시 알파벳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과거의 성공을 복원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복잡해진 카드 상품과 세분화된 소비자의 삶을 가장 단순한 기호로 다시 정리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과거의 M이 신용카드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면, 새로운 ‘알파벳카드’는 여러 카드가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전자는 강력한 하나의 상품을 만든 실험이었다. 후자는 지속적으로 확장 가능한 브랜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실험이다.

 

물론 디자인의 높은 완성도가 곧바로 상품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알파벳이 소비자의 실제 생활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지, 혜택이 얼마나 경쟁력을 갖는지, 오프라인에서 시작된 브랜드 경험이 디지털 서비스와 고객 경험으로 얼마나 일관되게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현대카드는 다시 한번 신용카드를 금융회사가 발행한 결제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의 삶을 표현하는 시각적 언어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언어를 카드 한 장에 머물게 하지 않고 서체와 패키지, 공간과 굿즈, 사용자의 참여로 확장했다.

 

기업의 이름을 카드 앞면에서 지우고도 오히려 더 강한 브랜드를 보여주는 것.
새로운 ‘알파벳카드’가 내놓은 가장 대담한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브랜드의 완결은 로고를 크게 드러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제품과 언어, 경험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글_ 정석원 편집인(jsw0224@gmail.com)
사진제공_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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