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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전시리뷰] 샤넬이 한국의 장인을 후원하는 방법 — 예올×샤넬 <진소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

2026-08-20

전시장 한가운데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 위에는 백색과 회색을 오가는 도자들이 작은 풍경처럼 펼쳐진다. 산처럼 겹쳐진 기하학적 조형, 물결처럼 반복되는 작은 그릇들, 손으로 빚어 올린 듯 조금씩 다른 표정의 백자들이다.

 

다른 공간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오래된 목가구와 책장, 문갑, 장과 병풍이 절제된 공간 속에 놓여 있다. 나무의 결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드러낸 가구들은 새것처럼 번쩍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손으로 다듬어온 물성이 공간 전체를 지배한다.

 

지난 8월 19일 서울 북촌 예올에서 공개된 예올×샤넬 프로젝트 <진소(眞素)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 전시장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2026년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소목장 조복래와 ‘올해의 젊은 공예인’ 도자공예가 백경원이다.

 

그러나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작품만이 아니었다. 이 전시 뒤에 ‘샤넬(CHANEL)’이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2026년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소목장 조복래와 ‘올해의 젊은 공예인’ 도자공예가 백경원이다.

 

 

<장인과 젊은 공예인을 함께 키우는 프로젝트>

 

재단법인 예올은 우리 문화유산과 전통공예를 보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동시대의 문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공예 후원사업을 펼쳐온 비영리재단이다.

 

그중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과 ‘예올이 뽑은 올해의 젊은 공예인’은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장인을, ‘올’은 현재와 미래를 이어갈 젊은 공예인을 의미한다.

 

한쪽에서는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을 지키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기술과 정신을 새로운 시대의 언어로 확장한다.

 

샤넬은 2022년부터 이 프로젝트에 파트너로 참여했다. 올해로 벌써 5년째다. 단순히 전시 비용을 지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정된 장인과 공예가가 지속 가능한 공예품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모델링하고 생산·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다.

 

한 번의 전시를 후원하고 로고를 붙이는 일반적인 협찬과는 결이 다르다.
장인을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장인이 계속 장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후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올해의 장인 조복래는 경남무형문화재 제29호 소목장 기능보유자다.

 

 

<“보이지 않는 곳도 보이는 곳과 같아야 한다”>

 

올해의 장인 조복래는 경남무형문화재 제29호 소목장 기능보유자다.

 

소목은 못이나 금속 부속에 의존하기보다 나무와 나무를 짜 맞춰 가구를 만드는 전통 목공기술이다.

 

조복래 장인의 작업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한 문장이다.

 

“보이지 않는 곳이 보이는 곳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

 

좋은 디자인과 좋은 공예가 어디에서 만나는지를 보여주는 말처럼 들린다.

 

사용자에게 보이는 표면만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조와 연결부, 재료와 마감까지 같은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인의 가구를 단순한 ‘전통가구’로 진열하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양태오 디자이너가 문인이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사물을 바라보던 공간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책상과 책장, 장과 병풍, 백자가 하나의 생활풍경을 만든다.

 

전통공예가 박물관 유리장 안에 들어가는 순간 과거의 유물이 되기 쉽다면, 이번 전시는 반대로 묻는다.

 

“이 가구가 오늘 우리의 방으로 다시 들어온다면 어떤 모습일까?”

 

전통의 현대화란 옛것의 형태를 억지로 현대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시 오늘의 생활 속에서 쓰일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백경원의 도자는 공예의 재료와 조형 언어가 앞으로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손으로 쌓아 올린 백경원의 작은 풍경>

 

올해의 젊은 공예인 백경원의 도자 역시 흥미롭다.

 

그는 화려한 장식이나 고도의 기교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흙을 집고, 말고, 펴고, 쌓아 올리는 원초적인 방법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그릇을 하나의 작은 공간으로 바라보고, 비슷한 형태를 반복하고 연결하면서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간다.

 

전시장 중앙의 원형 테이블 위에 놓인 작품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것들은 더 이상 그릇처럼 보이지 않는다.
산맥이 되기도 하고, 파도가 되기도 하고, 어느 도시의 건축적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복래의 가구가 오랜 시간 축적된 전통의 기술을 보여준다면, 백경원의 도자는 공예의 재료와 조형 언어가 앞으로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두 사람을 한 공간에 배치한 이번 프로젝트의 구조가 흥미롭다.
한 사람은 전통의 깊이를 보여주고, 한 사람은 전통의 다음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목은 못이나 금속 부속에 의존하기보다 나무와 나무를 짜 맞춰 가구를 만드는 전통 목공기술이다. 조복래 장인의 작업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한 문장이다. “보이지 않는 곳이 보이는 곳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

 

 

<샤넬이 장인정신에 주목하는 이유>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긴다.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 샤넬은 왜 한국의 소목장과 도예가를 후원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샤넬과 전통공예 사이에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샤넬 역시 패션만으로 존재하는 기업이 아니다. 오뜨 꾸뛰르를 비롯해 자수, 깃털, 꽃 장식, 금세공 등 수많은 전문 공방과 장인의 기술을 브랜드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온 기업이다.

 

즉, 장인의 손과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이 사라지면 브랜드의 미래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가브리엘 샤넬 자신도 예술가들과 폭넓게 교류한 문화예술 후원자였다. 오늘날 샤넬은 이러한 전통을 ‘샤넬 컬처 펀드(CHANEL Culture Fund)’라는 글로벌 문화후원 프로그램으로 확장하고 있다.

 

세계 여러 문화기관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예술가와 큐레이터, 연구자, 문화기관이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이라는 말이다.
문화는 한 번의 이벤트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백경원은 화려한 장식이나 고도의 기교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흙을 집고, 말고, 펴고, 쌓아 올리는 원초적인 방법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그릇을 하나의 작은 공간으로 바라보고, 비슷한 형태를 반복하고 연결하면서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간다.

 

 

<상하이에 5만 권의 예술도서관을 만든 명품회사>

 

샤넬의 문화후원 방식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상하이에 있다.

 

중국 최초의 국립 현대미술관인 파워 스테이션 오브 아트(Power Station of Art)와 함께 만든 ‘에스파스 가브리엘 샤넬(Espace Gabrielle Chanel)’이다.

 

샤넬은 단순히 미술관 전시 하나를 후원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오랜 협업과 공간 조성을 통해 현대미술과 디자인을 중심으로 약 5만 권의 책과 자료를 갖춘 공공 예술도서관을 만들고, 극장과 디자인 공간, 리버사이드 테라스 등이 연결되는 문화공간 조성에 참여했다.

 

명품회사가 가방이나 향수를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무료로 책을 읽고 예술을 공부하며 생각을 나누는 문화 인프라에 투자한 것이다.

 

이런 후원을 단순히 ‘통 큰 후원’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기업이 문화에 돈을 쓰는 차원을 넘어 한 도시가 오랫동안 사용할 문화적 자산을 남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한 공간에 배치한 이번 프로젝트의 구조가 흥미롭다. 한 사람은 전통의 깊이를 보여주고, 한 사람은 전통의 다음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이어지는 샤넬의 문화후원>

 

샤넬의 한국 문화예술 후원 역시 예올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리움미술관이다.
샤넬 컬처 펀드는 리움미술관의 중장기 연구·공공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IDEA Museum)’을 후원하고 있다.

 

아이디어 뮤지엄은 단순한 전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술가와 철학자, 과학자,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기후 위기와 생태, 젠더, 사회적 관계 등 동시대의 문제를 탐구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2024년에는 아티스트 토마스 사라세노와 에어로센 커뮤니티가 참여한 <에어로센 서울> 프로젝트가 진행됐으며, 이후에도 ‘In the Middle Voice’ 등 연구와 교육, 퍼포먼스가 결합된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한국의 전통공예와 장인, 다른 한쪽에서는 동시대 미술과 미래의 담론을 후원한다.

 

‘예올×샤넬‘과 ‘리움미술관×샤넬‘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방향은 같다.
과거의 문화유산을 지키면서 동시에 다음 세대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클라우스 헨릭 베스터가드 올데거 샤넬코리아 대표가 ‘2026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전시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샤넬은 현재 세계 15개국에서 30개 이상의 기관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5개 파트너와 장기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정석원)

 

 

<기업 메세나는 ‘광고비’가 아니라 ‘문화 투자’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업이 문화예술을 후원한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문화후원이 전시나 공연에 기업 로고를 붙이는 ‘스폰서십’ 차원에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메세나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광고 효과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계산하기보다, 지금 지원하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기술과 사람을 지키고 아직 시장에서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젊은 창작자가 성장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예올과 샤넬의 협력이 의미 있는 것도 그래서다.

 

2022년 시작해 올해로 5년째 같은 방향의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매년 새로운 장인과 젊은 공예인을 발굴하고, 작품을 개발하고, 전시를 통해 세상과 연결한다.

 

장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 번의 박수보다 계속 작업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인의 가구를 단순한 ‘전통가구’로 진열하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양태오 디자이너가 문인이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사물을 바라보던 공간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책상과 책장, 장과 병풍, 백자가 하나의 생활풍경을 만든다. (사진: 정석원)

 

 

<명품 브랜드가 남겨야 할 진짜 명품>

 

이번 전시를 둘러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은 결국 기업이 사회와 맺는 또 하나의 디자인 행위가 아닐까.

 

좋은 브랜드는 물건만 남기지 않는다.
그 브랜드가 존재했던 시대의 문화에 무엇을 보탰는지도 함께 남긴다.

 

100년 뒤 샤넬의 가방과 향수는 박물관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 기업이 어떤 예술가를 키웠고, 어떤 장인의 기술을 지켰으며, 어떤 도서관과 미술관을 만들고, 어떤 문화적 실험이 가능하도록 도왔는가 하는 기록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샤넬이 예올과 함께 한국의 소목장과 젊은 도예가를 5년째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작지만 의미 있는 사례다.

 

우리 기업들도 이런 방식의 메세나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유명 전시의 타이틀 스폰서가 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장인을 찾아내고 젊은 작가에게 몇 년의 시간을 주며, 지역의 작은 미술관과 도서관을 오래 키우는 후원도 필요하다.

 

기업이 제품을 만들면 시장이 풍요로워지지만, 기업이 문화를 후원하면 사회가 풍요로워진다.

 

<진소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조복래의 나무와 백경원의 흙만은 아니다.

 

그들의 손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뒤에서 시간을 만들어주는 사람과 기관, 그리고 기업도 함께 보아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이 전시가 우리 기업들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기업은 이 시대의 문화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전시 정보]

예올×샤넬 프로젝트 2026
<진소(眞素)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

 

기간: 2026년 8월 21일 ~ 10월 16일
장소: 재단법인 예올

 

올해의 장인: 소목장 조복래
올해의 젊은 공예인: 도자공예가 백경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양태오
주최·프로젝트: 재단법인 예올 × 샤넬

 

글_ 정석원 편집인(jsw0224@gmail.com)
사진제공_ 재단법인 예올, 샤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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