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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컨버전스 vs. 디버전스 (1)

2007-11-06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여러 기능이 하나로 융합된 제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제품을 기능별로 구분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졌을 정도다. 하지만 불필요한 기능으로 인해 그만큼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사용법을 숙지하는 데에만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꼬박 할애하는 데 지친 사람들이 얼마 전부터 하나의 기능에 충실한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복합 기능을 탑재한 ‘컨버전스’와 단일 기능에 충실한 ‘디버전스’. 이 두 양상은 지금 치열한 공방전을 치르고 있다.

글 | 김홍배 한성대학교 미디어디자인학부 교수
진행 | 서은주 기자(ejseo@jungle.co.kr)

바야흐로 인류의 삶은 더 이상 디지털이란 기반을 떠나서 질적 만족과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삶의 질을 위해 존재하는 수많은 제품들은 디지털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의 메가 트렌드가 바로 디지털 컨버전스(convergence)이다.
‘컨버전스’는 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융합되거나 합쳐지는 일을 뜻한다. 컨버전스의 등장은 산업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막대한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과거 서로 만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던 서로 다른 개념들이 기묘한 만남을 가지고 있다. 신발과 오디오, 패션과 컴퓨터, 세탁기와 인터넷, 가전기기와 가구,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전략적 밀월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전 세계의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서로 융합되어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무구한 역사를 이어온 다양한 나라의 고유문화들이 규정하기 어려운 괴이한 정체성의 문화로 융합되어 거듭나고 있다. 이렇듯 디지털 컨버전스는 인류의 삶 전반을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가속화되는 기술혁신으로 인해 디지털 컨버전스의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고기능, 다기능 제품을 통해 경쟁력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혹자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속성 자체가 비인간적인 것으로 가까운 미래에 컨버전스의 반대 개념인 ‘디버전스(divergence)’로 역류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 예상한다. 디지털 컨버전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제품 용도를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힘든 지경이라는 것이다. 또 불필요한 기능들이 하나의 제품에 여럿 탑재됨으로써 모든 사용자들이 공통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제품이 양산되고 있다. 미래의 디지털 패러다임의 핵심이 컨버전스냐, 디버전스냐 하는 문제는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선택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컨버전스는 사회 전반에 걸쳐 시대적인 추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컨버전스는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알다시피 디지털 컨버전스의 개념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제품이나 콘텐츠, 서비스 등이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되는 현상이다. 통합 그 자체가 아니라 통합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목적이다.
오늘날 디지털 컨버전스 소용돌이의 핵심에 있는 제품은 단연 휴대전화 단말기이다. 통신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온갖 제품의 기능들을 흡수하고 있는 블랙홀과도 같은 휴대전화 단말기의 진화과정을 보면 그 끝이 과연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앞으로 PC, TV, 휴대전화 그 어느 것에서 출발했건 모든 제품들이 형태만 다를 뿐 결국은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유사 개념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법.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현상이 왜 일어났고, 또 그 변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디지털 기술의 등장과 진화로 인한 기술적 요인이다. 둘째는 소비자와 시장의 니즈이다. 기술적 요인만으로는 디지털 컨버전스를 지속가능한 트렌드로 만들 수 없다. 기술이 시장과 소비자를 만났을 때 비로소 가치 있는 개념이 된다. 셋째는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다. 이질적 개념들이 융합될 때에는 이를 주도하는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 요구된다. 기술 혁신과 시장의 니즈를 만나게 하고, 컨버전스의 유형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전략적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

이러한 핵심 요인에 의해 진화되어온 디지털 컨버전스가 디자인 산업에 끼친 대표적인 영향 중 하나는 UI 디자인이다. 그간 표현주의적 역할에 가려 간과되어왔던 디자인의 사용성에 대한 문제가 디지털 컨버전스로 인해 심각하게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사용성의 문제에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UI 디자인은 기능적인 관점에서 감성적 관점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는 UI 디자인의 본질적인 문제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컨버전스로 인해 나타나는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는 제품의 디자인이 블랙박스(black box)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디스플레이와 버튼으로 구성되어 있는 디지털 제품은 외관만 얼핏 봐서는 정확한 용도와 기능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과거 기능주의의 근간을 지탱하던 이념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이에 따라 디자인의 핵심이 제품의 구조적, 스타일의 문제에서 혁신적인 콘셉트를 찾는 문제로 크게 이동되었다.
디자이너들은 신제품의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하기 위해 렌더링과 같은 설명적 수단에서 탈피하여 스토리텔링을 위한 스토리보드, 애니메이션 등의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컨버전스로 인해 디자인의 역할이 새로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사용자 경험을 제안하는 문화적 매개자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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