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01
독일의 유력 미술출판사 타셴이 필립 스탁, 아릭 레비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이너로 꼽은 스타 디자이너 론 아라드. 최근 폐막된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마친 그가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갖게 됐다.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4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론 아라드의 초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리미티드에디션 의자 10점과 디자인작품 등 총 30점이 공개된다. 전시에 앞서 론 아르드의 빛나는 행보를 갈무리해봤다.
취재 | 이상현 (shlee@jungle.co.kr)
자료제공 | 가나아트갤러리 최윤이
일시 2008. 3. 27 ~ 4. 20
장소 가나아트센터 www.ganaart.com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02 720 1020
론 아라드, 그는 누구인가?
이스라엘 출신의 론 아라드는 1980년대 초, 폐허적이고 해체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기성 디자인계를 경악시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83년 런던 디자인 공방과 쇼룸을 갖춘 ‘One-Off Ltd.,’를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혁신적이고 예술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서게 됐다. 이를 입증하듯 1994년부터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 세계 유수의 디자인상 및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하였고, 필립 스탁, 아릭 레비와 함께 독일의 유력 미술출판사인 타셴(Taschen)이 선정한 세계 3대 디자이너에 뽑히기도 했으며 2002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영국 디자이너 최고의 영예인 RDI(Royal Designer for Industry : 로얄산업디자이너)칭호를 수여 받았다. 또한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의 주요 경매 기록을 통해 그에 대한 대중적 열광을 증명하기도 했다(그의 2007년작 보디가드는 시가 8억 원을 호가한다).
장르를 파도 타는 영원한 청춘
론 아라드는 소년과 같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다양한 장르를 파도타기 한다. 가구, 조명, 제품 등 디자인뿐 아니라 실내 공간 디자인과 건축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적 감각은 손을 뻗어왔다. 런던의 AA스쿨(런던 건축협회)에서 60년대 급진적 건축의 대가인 피터 쿡, 베르나르 츄미에게 사사 받은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금속의 조형미가 유려하게 표현된 런던의 Belgo 레스토랑, 동경 롯본기 힐스에 위치한 일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의 스토어(Y’s Store), 이태리 두오모 호텔, 텔 아비브 오페라하우스 등이 있다. 돌체 앤 가바나의 초대로 열린 2006년과 2007년 두 번의 개인전에서는 Bodyguard 시리즈와 Blo-Void 시리즈를 선보여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모으기도 했다.
관능적인, 그리고 실용적인
론 아라드는 1980년대 말부터 금속을 주된 소재로 작업해왔다. 그는 거칠고 차가운 느낌의 금속을 표면착색이나 도금처리를 하지 않은 채 소재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부드러운 곡선과 유기적인 형태로 조형미를 더한 풍부한 감수성의 오브제로 재탄생시켰다. 쿠션이나 가죽 등 부드러운 소재만 사용하는 의자나 소파 디자인의 통념에 반기를 들며, 기능성과 편리함 등 본연의 요소에 충실하면서도 마치 순수미술의 조각작품을 보는 듯한 감흥을 주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또한 1990년대 초에 제작된 책꽂이 ‘Bookworm’은 수평 선반이라는 책꽂이의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유연한 곡선의 선반에도 편리하게 책을 꽂을 수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의 디자인은 관능성과 실용성을 고루 갖춘 것으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디자이너, 시대를 관통하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로는 ‘폐허성’, ‘해체주의’, ‘아방가르드’ 등이 있다. 이는 활동 초기, 폐차의 시트와 철 파이프를 소재로, 폐기된 그대로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드러낸 ‘Rover Chair(1981)’와 같이 각종 재화를 폐기 처분함으로써 유지되는 산업사회의 정황을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에서 나온 듯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든 턴테이블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Concrete Musical System’은 폐허의 느낌과 음악이라는 감성적 매체를 접목시켜 묘한 아이러니를 자아내 또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렇듯 1980년 대 초, 30대 초반이었던 작가는 해체주의적 철학이 담긴 작업들로 디자인계의 이단자가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점차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형태의 미학적 본질에 더 집중하는 작업들을 계속하고 있다. 론 아라드는 그 어떤 디자이너와도 차별되는 자신만의 철학적 정신을 마치 장인과도 같은 수공예적 기법을 통해 구현하는 과정을 고수하며, 자신을 여타의 작가들과 절대적으로 차별되는 작가로 분류케 한다.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르네상스
작가가 활동을 시작하던 80년대 초, 영국은 팝 문화와, 히피, 아방가르드 등 사회적 변혁이 생동하던 시기로 비평가들은 당시의 디자인적 경향을 일컬어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새로운 르네상스라 평가하였는데 론 아라드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기여한 대표적인 작가로 일컬어진다. 론 아라드의 작품은 단순한 하나의 가구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인 형태로, 마티스(Matisse)의 드로잉을 떠올리는 대담한 곡선과 에너지로 가득하다. 최근작들은 특히 특정 소재와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실험적인 기법과 디자인을 통해 마치 ‘물질’ 그 자체를 보는 듯한 유기적인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처럼 감각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물질적 다양성 속에서 순수함과 단순함이라는 미적 철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는 기능적 형태와 생산성에만 치중하는 기존의 디자인계와 차별되며 단연 돋보인다. 또한 유려한 곡선미와 폐허성을 가감없이 드러낸 그의 작품들은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색의 여유를 선사한다.
기자 회견장에서 론 아라드의 말 말 말
“지루함은 모든 창조의 어머니이다. 나는 게으른 편이며 금방 실증을 느끼는 스타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창작을 시도하는 게 아닐까.”
“newness, 참신함은 나의 기본 모토이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드는 것이 내가 작업을 하는 중요한 이유다.”
“순수미술을 하는 작가들 중 ‘프리드만’이 있는데, 그에게 질투심과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들은 나와 같은 디자이너와 달리 의자에 앉았을 때 편안한지, 사용이 용이한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을 한다. 그러한 제한 없는 자유로움 속에 작업하는 것이 가끔 부러워할 때가 있다.
“나는 공예가 이길 거부한다. 금속 공예가, 유리공예가 이런 말을 듣는 게 싫어서 한때 나의 work shop을 닫은 적도 있다.”
“나의 의자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오며 완성도가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의자들의 생명주기가 실용의자들과는 다르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예술과 실용성은 상호관계가 깊이 성립한다.
“장 폴 고티에가 의자를 사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우연찮게 그 의자를 많이 구매하기 시작했다. 장 폴 고티에가 사서 유명해졌다기보다 그 의자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신호등에 서있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영감을 얻는다. 어디서 영감을 얻느냐 보다는 어떠한 아이디어에 투자를 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많은 아이디어 중에 무엇을 작업하는 것이 훨씬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하나의 작업을 하면서도 다음 작업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