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미술사가/디자인 평론가(jina@jinapark.net) | 2016-01-26
당신은 컴퓨터를 다루어 오만가지 디자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빚어내는 21세기형 디자이너인가? 소프트웨어 아키텍트(architect)? 혹은 IT산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프론트엔드(front-end) 디자이너? 백엔드(back-end) 개발자(developer)? 아니면 요즘 각광 받는 인터넷 게임 디자이너? 어쩌면 당신은 지금과 미래 전 세계 업계가 목마르게 찾는 IT 탤런트(talent)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글 | 박진아 미술사가/디자인 평론가(jina@jinapark.net)
최근 필자는 한국 IT 업계 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어서 알고 있을 만한 한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며 여러 차례 국내 IT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헌데 어쩐지 요즘 젊은이들은 10여 년 전과는 대조적으로 컴퓨터 학과로 대학 진학을 꺼리고 IT분야에서 일하기를 꺼려하는 추세라고 귀띔해 주었다. IT업계는 3D 직종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1) 벤처캐피털 스타트업 창업자 혹은 업체에서 일하는 인구 연령대의 90%는 35세 이하이며, 10인 이하의 소규모 업체가 33%를 이룬다. 임금에 대한 만족도는 56%가 만족한다고 말한 반면 43%는 부족하다 느끼며, 응답자 중 75% 이상이 주당 근무시간이 41시가 이상이라고 대답해 국내의 IT 업계 여건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는 한편, 지금 세계 IT 산업의 산실인 미국의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늘어서 있는 카페들은 코딩으로 바삐 자판을 두드리는 젊은 개발자들도 북적대어 앉을 자리가 없다 한다. 그런데도 이곳에서도 특출난 프로그래머나 코더(coder)는 구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이 같은 트렌드를 틈타서 이 업계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고 경험 있는 수퍼 코더들은 구글이나 유명 제약업체나 은행권에 고용되어 안정된 연봉과 특전을 받으며 사무실 생활을 하기보다 아예 프리랜서로 독립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참고: 블룸버그 비즈니스 신문 1월 19일 자 기사(bloom.bg/1P3fWMe)).
그런가 하면 요즘 중국에서는 인터넷 파이낸스(internet finance) 열풍이 한창이다. 올 초 텐센트(Tencent)와 알리바바(Alibaba)는 우리 돈 약 18조 원에 이르는 액수를 차기 인터넷 비즈니스에 필요할 각종 인터넷 사업체 및 서비스 지분 매입에 썼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막강한 중국의 경제력을 견제하는 구미권 경제 언론계는 긴장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중국 IT 스타트업계에서는 메이투안 디안핑(Meituan Dianping) 같은 일명 ‘그룹 바잉 서비스 업체’들이 여러 유망 IT 스타트업들의 매각·매입 및 합병을 주도하며 알리바바그룹, 텐센트 홀딩스, DST 글로벌, 트러스트 브리지 파트너스(Trust Bridge Partners)로부터 받은 벤처 투자금액을 늘려 자회사 지분 덩치 키우기에 집중하는 추세다.
2) 스타트업 붐이 일고 있는 톱 세계도시 20곳 중 대다수는 실리콘밸리를 위시로 한 미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호주 여러 도시, 런던, 파리, 시드니, 베를린, 싱가포르, 벵갈루루가 지목된다. 칠레 산티아고는 가장 높은 여성 IT 창업자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창업자들이 가장 긴 근무시간(일일 11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에서는 97%의 창업자들이 석박사 학위 이상 소지자로 실리콘밸리 창업자들보다 교육수준이 높다. 성공률을 높이려면 차별화 전략으로 IT생태계를 다양화시키고 예술연예 분야를 창업 아이디어와 연계시키는 방안이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IT 빅뱅 소식이 있었다. 지난 1월 12일, 카카오가 멜론 음악 앱 서비스의 소유주이던 로엔엔터테인먼트(1978년 설립된 서울음반의 후신)의 지분 76.4%를 매입했다는 보도가 경제 뉴스를 장식했다.
이번 카카오-로엔 인수 협상 끝에 사실상 대박을 거머쥔 수혜자는 홍콩의 스타인베스트홀딩이었다는 사후 분석이 나오면서 국내 공정거래법 출자 규정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불거졌다.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애껏 멜론을 키운 SK플래닛의 자본과 노력이 해외 사모편드 사를 거쳐야만 국내 기업으로 매각될 수 있게끔 되어있는 현 규정 때문이라 한다.
블룸버그통신이 1월 19일 발표한 2016년 블룸버그 혁신 지수(Bloomberg Innovation Index, bloom.bg/1K0GBJs)에서 한국은 3년째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 세계 1위로 선정됐다. 2013년부터 현 정부가 제시한 창조경제 정책은 벤처 창업을 격려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시도한 지는 올해로 만 4년째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5년 초 발표된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애초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 친숙하고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라 기대했던 20~30대 젊은 층의 창업률은 오히려 지난 10년 전보다 70%나 감소했을 정도로 요즘 우리 청년들의 창업의욕은 저조하다. IT 분야 창업인구 중 72%가 35세 이하 젊은이인 인도의 경우와도 대조적이다(NASSCOM; 인도 소프트웨어서비스 국영협회 통계).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벤처 성공기를 무조건 본받아 도입한다고 해서 매우 다른 국가나 문화권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발생할 리도 없다. 천연자원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의 갓 60살 된 작은 이민국가 이스라엘이 오늘날 벤처산업을 통해 실리콘밸리 다음가는 IT 혁신의 중심국이 된 연유를 설명한 책 〈창업 국가(Startup Nation)〉(댄 시너(Dan Senor)와 솔 싱어(Saul Singer) 공저, 2011년)에 따르면, 유태인들 특유의 문화 - 상하위계와 권위 개념이 없이 누구나 질문과 반문을 허용하는 토론 문화, 한 다리 건너면 서로 아는 사이인 긴밀한 유대인계 공동체,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 믿는 후츠파(Chutzpah) 정신 등 - 를 거론했다.
허나 일찍이 2000년대 초엽부터 이 모델을 본따 창조경제 정책을 추진했던 두바이나 싱가포르는 모두 실패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경우, 다수의 우수한 창업 업체들을 탄생시키고 특출난 IT 인력을 창출했지만,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3) 스타트업으로 돈 버는 절차
기존에 나와 있는 제품 또는 아이디어 중에서 뭔가 부족한 것을 찾아낸다.
→ 구입하여 속속들이 해부한다.
→ 부족한 점을 개선한다.
→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 100명의 사람들에게 프로토타입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다.
→ 고칠 점은 고쳐서 킥스타터(우리나라는 텀블벅) 같은 소셜펀딩사이트에 소개해 주문을 받는다.
→ 공동창업자를 물색하고 이윤은 50%씩 나누기로 약속한다.
→ 투자자를 찾아 이윤의 10%를 주기로 약속한다.
→ 제품을 생산한다.
→ 제품을 판매한다.
→ 창업자, 공동창업자, 투자자는 저마다 합의한 돈을 번다.
→ 창업한 업체를 증권시장에 상장한다.
→ 창업자, 공동창업자, 투자자는 주식배당과 주식거래로 또 돈을 번다.
청년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고 웹툰과 TV 드라마 <미생> 속의 주인공들이 그려내듯 크든 작든 조직 속 직장생활에는 애로와 애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 젊은이들은 IT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 입사해 일해 보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번뜩이는 사업 아이디어와 넘치는 의욕이 있는 젊은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 같다.
‘나도 스타트업 창업을 해볼까?’, ‘스타트업에 입사해 일해 볼까?’
젊은이들이 알아두어야 할 나쁜 소식들
고민 중인 젊은이들이 미리 알아두면 도움이 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우선 전문가들이 말하는 나쁜 소식을 먼저 들어보자.
1. 정해진 출퇴근 시는 잊으라고 할 만큼 일일 업무시간이 길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의 IT 계열 종사자들은 주당 근무시간이 평균 70시간에 이른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인터넷과 정보기술은 늘 예상치 않은 문젯거리를 해결하는 재능 있는 인력을 필요로 하며, 더구나 규모가 작고 새로 출범한 업체일수록 조직기반이 이미 잘 구축된 정부기관이나 대기업보다 할 일이 많다.
2. 그러하다 보니 1인당 업무량도 더 많다. 업무 간의 구분과 책임 경계도 모호하므로 동료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거나 잡다한 총무 업무도 해내는 전천후 직원이 돼야 한다.
3. 조직이 체계화된 정부기관이나 대기업보다 업무에 대한 체계화된 교육이나 트레이닝과 조직 내 위계 구조에 대해 배울 기회가 부족하므로 직접 실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4. 임금이 적고 불안정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정부나 대기업보다 자금순환이 덜 안정적이고 외부 후원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 세 번이나 떨어진 후 입학했지만 결국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중퇴했다. 연쇄창업자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은 400번 창업했다 그만둔 끝에 버진 항공사와 버진 레코드 사를 성공시켰고, KFC의 설립자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 대령은 비밀 프라이드 치킨 레시피를 팔아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도했으나 무려 1009번 거절당했다.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에게 오스카상과 할리우드 스타덤을 단숨에 안겨준 영화 〈록키〉는 제작사를 찾기까지 1500번 거절 당했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유리관 프로토타입을 1만 번 만든 끝에 제대로 작동하는 전구를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젊은이들이 알아두어야 할 좋은 소식들
그럼 좋은 소식은 무엇일까? 실제 국내외 성공 사례들을 정리한 결과를 보면 이렇다.
1. 전문지식과 열정을 공유한 친구나 동료와 함께 작고 다이내믹한 사업 조직을 구축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성공하는 벤처 창업 업체들은 대학 시절부터 알고 결성된 친구들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 결국 성공하는 기업은 좋은 아이디어 그 자체 보다는 좋은 아이디어를 함께 구체화시킨 우수한 인재들의 협력이 빚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2.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도 있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한다. 실제로 나이가 어린 젊은이일수록 실패는 사회적으로 더 너그럽게 용서되고 설혹 좌절을 경험했더라도 재기할 기회가 더 많다. 예컨대 에어비앤비, 킥스타터, 인스타그램 등 해외 유명 소셜 사이트들의 창업자들도 수차례 실패를 경험하고 재도전한 끝에 대박을 터뜨렸다.
3. 특정 분야에 대해 비교적 단기간 내 다양한 지식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다. 다른 업계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으므로 화려한 경력이나 스펙 없이도 창업할 수 있다. 사업을 이끌고 경영하는 실무는 경험, 노련성, 연줄과 인맥은 나이에 비례해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부닥치고 머리로 생각하며 경험하는 동안 키워지는 정신적 자산이다.
4. 이미 직장이나 수입원이 있어도 남는 시간과 자금을 십분 더 활용하여 창업활동을 부업처럼 병행할 수 있다. 자기만의 관심과 열정을 바쳐 좋은 아이디어를 우수한 제품 혹은 서비스로 탄생시켜 상업성을 인정받고 경제적 성공으로 보상까지 받는다면 금상첨화다.
벤처 창업을 권하는 IT 업계와 하이테크계는 기존 업계의 질서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붕괴하는 파괴적 혹은 ‘디스럽티브(disruptive)’한 아이디어나 서비스를 창출하라 복음 한다. 하지만 스포티파이가 음반업계를 제거시키고, 에어비앤비가 호텔업을 혼돈시키고, 우버가 택시업계에 지장을 주듯, 꼭 기존 업계를 못살게 굴고 파괴해야만 우수한 스타트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MIT 테크놀러지 리뷰〉 지에 인용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라마나 난다(Ramana Nanda)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우수한 아이디어와 좋은 의도를 결합한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를 못 찾는 경우가 더 많다(2015년 11월 23일 자 Nanette Byrnes이 쓴 기사 ‘At a Time of Plenty, Some Technologies Are Shut Out’).
대다수 벤처캐피털이나 앤젤 투자자들은 인류에 유익한 사업 아이디어에 긴 안목을 갖고 느긋하게 투자하기보다는 가급적 단기간에 큰 투자액 환급과 이윤창출에 더 관심이 많다.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유해 저마다의 천직을 찾고 혁신이 인류발전에 활용되기 위해서라면 이젠 좋은 창업 아이디어가 지원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펀딩 제도와 일반대중도 창업지원에 관심을 두고 참여할 수 있는 창업 펀딩 민주화가 제도화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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