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미술관 | 2016-03-15
결과물이라는 단편적 시각으로만 디자인을 바라볼 뿐 그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생각들, 수많은 검증과정에 주목하기란 쉽지 않다. 소다미술관에서 3월부터 열리는 기획전 〈Design Spectrum〉, 〈D-CUBE〉전은 디자이너의 작품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디자이너의 치열한 고민과 창조의 과정, 철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김영학(yhkim@jungle.co.kr)
색 색의 디자인을 보다
〈Design Spectrum〉전의 목적은 분명하다. 다양한 디자인 영역의 대표 디자이너를 선정, 그들의 디자인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디자이너의 치열한 고민, 창조과정, 확고한 철학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보자는 것이다.
〈Design Spectrum〉의 첫 번째 디자인 분야는 의상디자인으로 최인숙 무대의상 디자이너의 작품전이다(03.05~05.22). 최인숙 디자이너는 치밀한 작품분석과 무용수와의 교감을 바탕으로 의상을 제작한다. 최인숙 디자이너는 줄곧 공연의 주제를 이끌어낼 의상을 참신한 소재나 구조 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연해 왔으며, 조형적이고 독창적인 실루엣을 형성해 무용수의 신체적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공연의 완성도를 높여 왔다.
특히 최인숙 디자이너의 철학은 무엇보다 작품에 잘 스며드는 무용의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스스로 작품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디자인 철학은 소통을 중시하는 디자인 전반에 나타나 있다. 최인숙의 디자인은 안무가(기획자)와 무용수(사용자)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데, 안무가와 공유된 작품의 기획의도는 무용의상을 디자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말한다.
작품의도를 기반으로 디자이너는 떠오르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직접 실현하며, 작품에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검증과정을 거친다. 구현된 무용의상은 무용수가 직접 착용하며 시각적 디자인을 벗어나 사용자 입장에서 디자인 수정 단계를 거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무용의상을 놓고 작품 전체의 흐름과 함께 되짚어보며, 무엇을 더하고 뺄 것인가를 선택한다. 작품을 위해 디자이너 개인의 욕심을 버리는 과정인 것이다. 디자인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트프로젝트 보라의 〈꼬리언어학〉은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기호로 꼬리를 사용하는 고양이를 모티브로 제작된 무용작품이다. 인간의 사고를 한정하고 해석의 오류를 가져다 주는 언어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몸에 집중해 관계 속에서 진정한 소통을 발견하고자 하는 작품의 의상은 장갑 또는 깃털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소재는 동물의 촉수를 연상시키며, 인간 몸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인간도 동물도 아닌 미지의 존재를 드러내며 몸의 언어를 더욱 부각시켜 준다.
19세기 스탕달은 “허영으로 인한 욕망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리는 이 길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 시대의 아슬아슬하고 서글픈 윤리이자 미학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21세기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안무가 차진엽의 〈Fake Diamond〉는 스탕달의 수사를 주제로 허영과 거짓을 쫓으며 진정한 나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Fake Diamond〉 작품을 통해 최인숙은 소비사회를 대변하는 물성인 비닐 혹은 비닐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로 의상을 제작했다. 비닐의 반짝이는 표면과 풍성한 부피감으로 치장한 무용수들의 모습을 통해 일식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도 그 본질은 쓰레기 곧 허상임을 나타내고 있다.
길서영의 〈Social Factory〉에 등장하는 양복을 입은 거대한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얼굴을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알 길이 없다. 이 공연 작품에서 각각의 개인은 하나의 고립된 섬처럼 무대를 유영하며 소통이 단절된 채 사회적 기능이 강조된 몸만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Social Factory〉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본연의 주체성과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채 사회와 타자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인숙 디자이너는 커다란 사이즈의 모노톤 양복을 통해 사회적 가능만 남아있는 우리의 모습을 강조했다. 무용수의 머리에는 양복에 맞는 어깨 구조물이 씌워지며 얼굴이 없는, 즉 자아를 잃어버린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 내며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지욱의 〈Shock〉는 우리가 인지한 영역을 넘어서 새로운 사실 혹은 상황에 부딪혔을 때 느끼는 두려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인식이 확장되는 순간의 충격을 세 명의 무용수가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나약함을 표정으로 읽기 보다는 몸의 언어로 보여주기 위해 안무가는 무용수의 얼굴을 가렸다.
최인숙 디자이너는 난해할 수 있는 작품의 주제를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 풍성한 탈과 알록달록한 옷으로 올빼미를 만들어 무용수의 몸짓을 담았다. 올빼미 탈에 사용된 털은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며 신체적 가능성을 넓혀주고 있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새의 모습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빛과 그림자의 다채로운 변주곡
또 하나의 기획전인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프로젝트 〈D-CUBE〉전은 2015년부터 역량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진행해 온 프로젝트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젊은 디자이너들은 실험적이며 창의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다양한 디자인의 영역과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번 〈D-CUBE〉의 의 주제는 ‘Lighting Design’(왕현민, 최명주)으로 3월 5일부터 5월 22일까지 열린다.
왕현민, 최명주의 조명은 스틱과 그 스틱을 연결하는 리벳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러한 간단한 재료들은 견고히 맞물리며 하나의 건축적인 원통형의 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구조는 스틱과 리벳의 수에 따라 조명의 폭이 무한히 확장되기도 하며, 그 면이 다양하게 분할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스틱과 스틱을 연결해주는 리벳은 X자 유닛을 만들어 내며 조명에 유기체적인 움직임을 부여한다. 당기거나 누르는 힘에 의해 실루엣은 다양하게 변형되며, 이러한 변형은 조명에서부터 비롯되는 빛과 그림자의 다채로운 변주를 선사한다.
〈D-CUBE〉를 통해 견고한 구조와 유연한 움직임으로 다양한 빛과 그림자를 생성해 내는 왕현민 최명주 디자이너의 조명을 체험하고, 조명에 의해 다양하게 변화되는 공간과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