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1
첨단 기술은 우리가 매일 타는 자동차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진보를 가장 가까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도구가 자동차 이기도 하다. 차는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울고 웃던 시절을 함께 보낸 동반자 ‘자동차’와의 추억을 ‘동행’이라는 주제로 엮었다. 개개인의 추억은 이제 테크놀러지와 만나 아날로그 추억들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 이해에서 새로운 경험으로 탄생한다.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kr)
사진제공 ㅣ 서울시립미술관, 현대자동차, 김미주
한동안 국내외에서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로 분한 전지현은 자신의 차에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 빨간색 스포츠카는 일명 ‘붕붕이’로 불렸고, 전지현은 차량에 탑승 전 한껏 부푼 표정으로 이런 대사를 외친다.
“우리 붕붕이~ 오랜만에 달려볼까?”
자동차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한 장면이었지만, 때로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의인화되어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이 같은 개인의 자동차에 대한 기억들, 인간의 삶과 맞닿아 있는 자동차가 예술가의 상상력과 만나 새로운 경험을 전달한다.
현대자동차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기획한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 시즌2: 동행'은 그런 의미에서 평생 소중한 추억이 담긴 아버지의 각 그랜저, 어머니의 쏘나타, 생애 첫 차였던 엑센트, 낡은 엘란트라에 얽힌 첫사랑 이야기 등 차에 얽힌 개인의 기억들을 수집한다.
차량을 떠나 보내는 고객의 사연이 얽힌 차를 그냥 두고 보지 않고 이를 재활용해, 아티스트 12명(김기라X김형규, 김상연, 김승영, 김진희, 민우식, 박경근, 박문희, 박재영, 이주용, 전준호, 정연두, 홍원석)이 제작한 예술작품 12점을 선보인 현대자동차는 인간과 자동차의 동행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특별한 전시로 현재의 이슈와 연결시켜 담고자 했으며, 첨단기술을 이끄는 자동차 제조사에서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기획의도를 밝혔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동차에 담긴 소중한 추억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고자 이번 전시를 마련한 전시에서는 폐차 예정이거나 중고차 판매로 차량을 떠나 보낼 예정인 현대차 고객들의 차량에 얽힌 사연을 응모 받아, 그 중 8명의 자동차를 작품으로 재탄생 시켰다. 또한 이번 시즌2 전시에서는 응모 받은 사연 이외에도 참여작가 개인의 사연과 탈북 새터민의 사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는 후문.
전시를 함께한 작가들은 드로잉, 퍼포먼스, 조각,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펼치고 있는 참여 아티스트로 인간의 삶과 맞닿은 자동차가 지닌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인간 본연의 정수와 실존에 대해 다루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크게 자동차를 매개로 한 특별한 추억 자동차가 전하는 삶과 문화의 의미, 자동차로 대표되는 기계 문명과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 등 세가지 테마를 담아낸다.
아티스트 김기라x김형규는 낡은 엘란트라에 얽힌 손기동씨의 첫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두 편의 영상과 기념비를 만들었고, 생애 ‘첫 차’인 엑센트와 함께 일과 가정을 꾸리며 모든 순간의 ‘처음’을 함께한 윤주문씨의 사연은 아티스트 김상연에 의해 영원히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상화한 조각으로 다시 태어났다.
온 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조구란씨의 애마 싼타모의 라디오는 아티스트 김진희가 미세한 단위로 재조립해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설치작품으로 만들었다. 또 작가 김승영은 작가로서의 삶의 순간을 늘 함께 해온 자신의 차량 리베로에 7천여 개의 나침반을 설치해 작가로서의 방향성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작가 이주용은 21년 동안 가족의 역사와 동행한 안익현씨의 그레이스를 홀로그램과 깃털을 매개로 꿈과 판타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보여준다.
차량을 물려준 어머니와 차주 이재걸씨의 특별한 추억은 아티스트 박재영에 의해 어린 시절의 향수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감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됐다. 작가 전준호는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의 인생이 깃든 손기선씨의 쏘나타2를 키네틱 작품으로 제작해 불완전한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며, 정혜란씨 부부의 평생을 함께한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준 포터는 작가 박문희에 의해 사막 속에 핀 생명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각 그랜저’란 애칭으로 불렸던 1세대 그랜저에 담긴 조윤희씨 가족의 사연은 작가 홍원석을 통해 택시 아트로 다시 태어난다. 홍원석 작가는 자동차의 이동성을 기반으로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커뮤니티 연대의 가능성을 현재 진행형으로 탐구하는 중.
작가 정연두는 탈북한 새터민의 이야기로 일련의 사진 사운드 설치 작품을 제작한다. 탈북 당시의 현대자동차와 자동차가 담긴 거리의 풍경들을 작품으로 재해석해 자동차에 얽힌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를 들려준다.
작가 박경근은 자동차를 제조하는 제작자로 시선을 돌린다. 로봇이 자동차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의 공장 시설 내부를 로봇의 시선으로 촬영한 미디어 작품을 통해 산업화와 미래의 산업구조를 조명한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로봇들이 자동차를 생산하며 만들어낸 프레스 기계의 맞물리는 소리, 용접 불꽃의 소리 등 무미건조한 기계음은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 민우식은 자동차의 ‘이동성’에 주목해 전시의 주제인 ‘동행’을 가능케 하는 ’움직임’을 시각화했다. 원이 직선 위를 구를 때 원주상의 한 점이 그리는 자취를 나타내는 ‘사이클로이드’ 개념으로 해석한 작업을 선보인 것.
전시는 이달 21일까지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며, 내달 4일부터 8월 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도 연속해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보다 많은 자동차의 기억들이 수집되어 개인의 경험이 차와 함께 헛되이 보내지지 않도록, 모두의 감성에 닿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