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8
장난감이 하나있다.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여느 장난감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심플하면서도 앙증맞은 형태를 하고 있는 이 장난감은 그냥 장난감이 아니다. 장난감의 몸을 열면 뼈가 있고 장기도 있다. 뼈는 또 다시 조각으로 나뉜다. 뼈를 퍼즐처럼 맞추고 다시 몸통을 덮으면 다시 온전한 형태가 된다. 몸이 반으로 나누어지는 이 장난감의 이름은 하프토이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 | 장석윤(freej615@naver.com)
반으로 열리는 하프토이
하프토이는 심플하고 미니멀한 동물 형태의 장난감이다. 반으로 나뉘어져서 하프토이(HALF TOY)다. 하프토이를 디자인한 장석윤 디자이너는 어릴 적 여느 사내아이들처럼 공룡 장난감을 좋아했다. 장난감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아예 장난감을 디자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제품디자인을 전공하고 처음에는 취업을 생각했어요. 일반적으로는 전자제품 회사 혹은 대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는데 저랑은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나와 잘 맞는 게 무얼까 고민했는데 바로 장난감 회사에 취업을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장난감 관련 포토폴리오가 없는 거예요. 제가 갖고 있는 것들은 모두 전자제품과 관련된 것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취업용 포토폴리오를 위해 2~3개정도만 하자’ 했죠.”
장난감 중에서도 공룡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공룡을 만들기로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공룡장난감을 ‘연구’했는데 대부분 리얼하게 표현된 것들뿐이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이 없어 아쉬웠지만 오히려 다행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로 장난감을 만들기로 했다.
첫 디자인은 ‘티라노사우루스’. 디자인은 마음에 들었지만 일반 피규어와 차이가 없어 보여 고민을 했고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무심코 던진 ‘뼈를 넣어보라’는 한 마디에 뼈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3D프린터로 출력했다.
크리우드 펀딩을 통한 계약
실물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 좋았지만 대부분 디자인 전공자들이었던 주변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덕후’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인터넷 취미 커뮤니티에 작품을 올렸고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확인했다. 학교의 3D프린트를 사용하고 있던 그는 더 많은 모형 제작을 위해 자신의 3D 프린터를 마련하기로 했다. 3D 프린터 비용 마련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고 많은 사람들이 펀딩을 해주었다. 여러 장난감 회사와 관련업체에서 큰 관심을 표했을 땐 그도 좀 놀랐다. 예상했던 목표 금액의 200%에 달했을 때 해외의 한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예상하지 못한데다 취업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별 관심을 두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 중 매우 적극적이었던 업체가 한 곳 있었죠. 디자이너를 위한 배려도 세심했고요. 디자이너로서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몇 가지 토이에 대해서만 라이선스 계약을 했습니다. 여전히 취업은 하려고 했고요.”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한 후에도 그의 ‘조사’는 계속됐다. 이번에는 디자이너도 아닌, 덕후도 아닌, 일반인들의 반응이 궁금해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여했다. 학생 디자이너로 선발된 그는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더 다양한 토이 디자인 작업을 했고 공룡뿐 아니라 동물 버전, 몬스터 버전, 운송수단 버전을 선보였다. 페스티벌에서의 결과는 몇 개 제품에 대한 계약을 ‘하프토이’ 브랜드 런칭으로 확대시켰다.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아 모두가 꿈꾸는 창업을 하게 됐지만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프토이 브랜드 대표’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됐죠. 계획을 갖거나 의도한 것이 아니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실행된 거라 매사 신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전히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해외 토이 업체와는 디자인 도안 하나 하나당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고, 업체에는 생산과 판매에 대한 권리를 주었다. 하프토이의 개념 자체를 특허로 등록할 수가 없어 도안 하나하나에 대해 디자인 등록을 했다.
3D프린팅의 혜택
자신의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들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창업 꿈나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주변에서 조언을 구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운이 잘 풀린 케이스라서 해줄 말이 별로 없어요. 보통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찾는데 전 오히려 주변에서 가능성을 보고 발전방법을 제안해주시니까요. 하지만 3D프린팅 기술의 혜택은 확실히 봤다고 생각해요. 컴퓨터상의 렌더링으로만 표현했다면 그렇게 관심들이 없었을 것 같아요. 3D프린터가 없었으면 아마 이런 형태들의 목업 제작을 하지 못했을 거고요. 샘플을 통해서 어떻게 양산시킬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분말타입과 액체타입의 3D프린팅을 활용, 매트한 나일론 재질의 분말타입에는 염색으로 색을 입혔고 액체타입에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도색작업을 했다.
장석윤 디자이너는 일산에 위치한 디지털핸즈 갤러리에서의 전시(4월 10일까지)를 통해 총 3가지의 하프토이를 선보였다. 3~5세를 타깃으로 하는 하프토이, 디테일이 좀 더 가미된 아트토이, 모든 관절이 움직이는 메카닉 버전이 그것이다.
하프토이의 응용
아이들은 하프토이의 뼈를 분해하고 다시 맞추면서 동물 뼈의 구조를 알고 소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다. 하프토이가 ‘아이’라면 아트토이는 하프토이가 자란 ‘어른’이다. 하프토이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동세를 더 살렸다. 뼈도 더 디테일하게 조각이 나 있고 내부에는 장기도 있다. 메카닉 버전은 ‘프라모델’을 떠올리면 된다. 관절 하나하나를 따로 움직일 수 있게 설계했다. 매니악한 취미를 가진 이들을 위한 버전이다.
전시에서는 그가 디자인,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하프토이들과 양산을 앞두고 있는 하프토이들의 샘플, 아트토이, 하프토이들을 활용한 디오라마, 그의 동물들이 출연하는 여러 영화 및 애니메이션을 패러디한 그래픽 작업 등을 선보였다. 하프토이는 양산을 위한 준비를 거의 다 마쳤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안전한 ABS재질로 제작되며 도색과 패키지 작업을 거쳐 올해 안에 출시될 예정이다.
그는 하프토이로 애니메이션 작업도 한다. 그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이 달려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분해되는 10초 분량의 짧은 스토리로 하프토이의 콘셉트와 슬랩스틱 코미디의 요소가 모두 담겨있다. “장난감도 좋아하지만 애니메이션도 워낙 좋아해요.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문화콘텐츠, 서브컬처 모두 좋아하죠. 그래서 무척 재미있게 작업을 했어요.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하프토이를 각각의 성격이 있는 캐릭터로 발전시킬 생각이에요.” 현재 제작한 10여 편의 애니메이션 외에도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토이의 캐릭터에 각각 성격을 부여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예정이다.
그래픽과 패턴을 활용해 문구류 및 리빙제품 등도 선보일 계획이다. 올해 안에 출시될 하프토이는 시즌별로 출시될 예정이다.
장석윤 디자이너는 장난감 디자인을 3개만 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프토이가 시작됐으니 이제 두 개가 남은 셈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장난감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장난감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투자자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제품을 출시하게 된 그는 신중한 선택이 만든 탄탄한 플랫폼에 서있다. 하프토이를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그 만남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