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사인 | 2016-04-25
‘여기서 고백하면 사랑이 이루어진 대요’ 거짓말이다. 그런 길이 있을 리 없다. 골목길 낡은 벽에 그림을 그린다고 사랑이 이루어지면 세상에 혼자인 사람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나, 그런 거 본적 없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가을날 예쁘게 칠해져 있는 벽화거리를 걷다 보면 한 번쯤 모른 척하고 싶은 생각이 슬쩍 들기도 한다. 행운동 고백길은 그런 길이다.
기사제공 | 팝사인
행운동의 마을환경 개선하기
행운동. 수많은 드라마에서 달동네 씬 배경을 도맡아온 봉천6동의 현재 명칭이다. 오랜 세월 낙후된 이미지로 행정적 변화가 필요했던 이 마을은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2008년 ‘행운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행운동은 ‘지역주민들에게 늘 행운과 건강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속적인 개발에도 불구하고 행운동은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1인 가구와 20·30대 여성 인구 거주 비율이 높은 탓에 범죄 발생 비율이 높고, 건물 사이에 어두운 사각지대가 많아 성범죄 특별 단속 구역으로 지정돼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관악구는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위험성이 높은 지역에 범죄예방디자인(CPTED)을 적용하기도 했다. 미러시트와 반사띠를 설치해 어두운 밤에도 주위를 살필 수 있도록 했고, 여성안심지킴이집을 마련해 위험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지역주민의 봉사활동으로 이뤄진 범죄예방디자인은 마을 분위기를 개선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됐다.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고백길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행운동 고백길 작업은 마을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지역 움직임의 일부다. 마을의 낙후된 골목길과 벽에 정겨운 그림을 그림으로써 밝은 이미지를 전달하고 지역주민의 정서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고백을 테마로 한 벽화는 연인들에게 데이트 코스로 떠오르며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행운동 고백길은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입구역 중간에 있는 관악구 행운동주민센터 맞은편 뒷골목을 시작으로 관악중학교까지 이어진다. 약 700m 구간의 벽화거리는 현재까지도 인근 아티스트들의 재능기부로 유쾌한 그림이 채워지고 있다.
고백을 테마로 하고 있는 만큼 벽화의 대부분은 낭만적인 이미지로 그려졌다. 파스텔톤으로 칠한 배경에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벽화도 있었고, 사이좋은 연인이 데이트하는 로맨틱한 벽화도 있었다. 그리고 관악중학교 한편에는 ‘좋은 친구’, ‘좋은 이웃’같이 지역주민 사이의 정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행복동의 화목함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외에 ‘어젯밤 저는 당신 몰래 치킨을 시켜먹었습니다’는 벽화는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위트를 더했다.
행운동에 거주하고 있는 임은아 씨는 “행운동에 벽화거리가 생긴 이후로 마을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 것 같아서 좋다”며 “요즘 블로그를 통해 고백길이 데이트코스로 추천되고 있어서 인지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연인들이 자주 보이는데, 전에는 없었던 모습이라 기분이 색다르다”며 변하고 있는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하나의 사소한 변화가 훗날 커다란 영향을
미국의 한 사회학자에 따르면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나중에 그 지역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한다는 것으로, 하나의 작은 훼손이 훗날 거대한 무질서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이론이다.
행운동과 그 지역주민은 마치 이 이론을 경계하듯 마을 분위기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낡은 골목길에 벽화를 채우는 사소한 작업이 마을 환경이나 주민들의 의식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운동 고백길은 지역 주민과 다양한 소통을 하는 문화체험 프로그램과 플리마켓형태의 ‘고백장’이 정기적으로 이어지며 긍정적인 반응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