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서울 | 2016-05-13
지난 2015년 한글날, <제4회 한글잔치>일환으로 홍대 상상마당 앞에서 ‘당신의 손글씨를 폰트로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제목 그대로 이벤트 현장에서 응모자들의 손글씨 샘플을 받아 3명을 선정하여 폰트로 제작해준다는 행사였던 것. 무려 1,500명이나 참여했던 이벤트는 남녀노소, 심지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만점! 성황리에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기사제공 | 타이포그래피서울
우선 손글씨 제작을 위해서 1,500개의 손글씨 샘플 중 3점을 선정해야 하는 고뇌가 있었다. 윤디자인그룹의 폰트 디자이너들이 여러 날에 걸쳐 회의를 거듭해 십여 개로 추리는 작업이 있었고, 그 다음은 직원 모두가 심혈을 기울여 투표에 돌입! 드디어 3점의 손글씨 샘플을 뽑았다. 윤태민 님, 김남윤 님, 이현지 님의 예쁘고 개성 있는 글자가 최종 선정된 것.
해당 손글씨 폰트는 윤디자인그룹이 개발한 자필폰트 제작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각 글자당 평균 1주 정도 소요되었고, 폰트 이름은 주인공들의 의견을 100% 반영해서 윤고래체, 김남윤체, 이숲체로 결정했다. 이 폰트들은 지금 윤디자인그룹의 온라인 스토어 폰코(font.co.kr)에서 무료로 내려 받아 체험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이 폰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손글씨 폰트 제작 과정
Step 1. 손글씨 샘플 문장 받기
손글씨를 폰트로 만들려면 샘플 글자가 많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손글씨 주인공들에게 한글 낱글자 365자, 영문, 숫자, 특수문자가 포함된 여러 문장들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Step 2. 손글씨 데이터화(스캔) 하기
주인공들에게 받은 손글씨 샘플을 데이터화 하기 위해 스캔 작업을 한다.
Step 3. 폰트 제작 프로그램으로 옮기기
데이터화한 글자들을 폰트 제작 프로그램으로 옮겨서 아웃라인(outline) 작업을 한다. 글자를 그림처럼 만들어 그 형태를 저장한다는 것이다.
Step 4. 폰트를 완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밸런스 맞추기
손글씨 특성에 맞게 글줄과 자간 등을 조절하여 글씨체 전체의 표정을 완성하는 단계이다. 이때 영문, 숫자, 특수문자들도 한글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Step 5. 폰트 파일로 변환하기
완성된 글자체를 기술적 변환을 통해 폰트 파일로 만들어준다.
Step 6. 적용 및 테스트
폰트 파일이 잘 만들어졌는지 워드나 PPT 등 우리가 잘 쓰는 문서 프로그램에 다양하게 적용해보고, 마지막으로 프린트하여 테스트하면 완성.
윤고래체, 김남윤체, 이숲체 구성 및 특징
손글씨 폰트 1 - 매력적인 펜글씨 타입, 윤고래체
윤고래체는 가로, 세로 획의 굵기 대비가 확연히 나는 펜글씨 타입의 매력적인 폰트이다. ‘ㅁ, ㄹ, ㅅ, ㅈ, ㅊ’의 형태가 독특하고 전체적으로 개성 있는 필력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 특히 가로모임(가, 나, 다, 라 등) 중성이 다른 글자와 달리 길게 내려오는 점도 획 굵기 차이와 함께 어우러져 시원한 느낌을 주는 서체이다.
▶윤고래체 구성: 한글 11,172자, 영문 94자, 인용부호 4자
디자이너의 말
이 폰트는 첫 작업이라 아웃라인과 조합 작업이 길게 소요되었으며, 원본 글자 크기가 작아서 작업 이후 전체 폰트 스케일 조정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손글씨 선정 과정에서 매우 공정한 기준에 맞춰 자신감 있고 잘 써진 손글씨로 선택이 되었는데, 작업 도중 손글씨의 주인공이 사내 직원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답니다. 주인공 윤태민 씨는 엉뚱상상사업부 소속의 소셜미디어 기획 팀장님이랍니다. 디자이너가 아니에요.
손글씨 주인공의 말
전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냥 입에 풀칠이나 해볼 수 있을까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잘 쓰진 못하고 살려고 씁니다. 그런데 윤고래라는 필명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한 점은 유일하게 소질이 있는 건 글을 쓰는 것보다 글씨를 쓰는 것입니다.
펜은 형태에 따라서 쓰는 방법이 다르고 필체가 다릅니다. 그래서 쇼핑을 가거나 서점에 가면 옷이나 책은 사지 않아도 펜은 꼭 하나씩 사오는 편입니다. 쭉 한 번 둘러보다가 평소 써보고 싶었던 펜이 있으면 사는데 그것도 비싸면 사질 않습니다. 비싸면 더 잘 써질 거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펜은 보통은 천원대, 비싸봐야 2~3천원대입니다.
글씨를 잘 쓰는 건 아니고 나답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세월과 노력이 합쳐지면 글씨가 나다워지는데, 나답다는 것은 글씨가 잘 생겼다거나 못생겼다고 판단하는 기준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제 손으로 쓰는 글의 마침표 하나까지도 소홀할 수가 없더군요. 그게 ‘나’라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쓴 윤고래체는 제 필명을 딴 글자입니다. 자음과 모음 사이가 넘실대는 것처럼 배치하였습니다. 윤디자인그룹에서 제 손글씨로 폰트를 만들어주셔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손글씨 폰트2 - 또박또박 정성이 느껴지는 정자체 스타일, 김남윤체
김남윤체는 또박또박 정자체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손글씨체이다. 일반적으로 ‘어른 글씨’라고 불려지는 잘~쓴 글씨인 것. 이는 가로모임(가, 나, 다, 라 등) 중성 길이가 길어 어른스럽고 진중한 느낌이 부각되어 나타나는 손글씨의 표정이다. 자간 값이 비교적 좁지만 단어와 단어간의 띄어쓰기가 넓어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면서 가독성이 좋은 서체이다.
▶ 김남윤체 구성: 한글 11,172자, 영문 94자, 인용부호 4자
디자이너의 말
샘플자 원본에 화이트로 수정한 글자가 간혹 있어 스캔 원도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웃라인 다듬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만큼 한 자 한 자 쓰고 지우고 했을 주인공의 고민과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손글씨였습니다. 또한, 낱글자 샘플자와 문장 샘플자의 느낌이 가장 달라 보이는 서체이기도 했어요. 물론 바둑판 칸 안에 한 자 한 자 쓸 때의 글자와 단어와 문장 단위로 손글씨를 써 내려가는 글자는 한 사람이 썼을지라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 당연해요. 하지만 그 정도가 가장 큰 손글씨였기에 작업 완료 후 보정 작업이 가장 길게 소요된 서체였답니다.
손글씨 주인공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인문학과 예술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제 친구가 폰트 디자인에 훨씬 더 관심이 많은데 아주 우연한 기회로 손글씨를 만들게 되어 영광입니다.
폰트제작용으로 글씨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라 조금 힘들고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씨 쓰는 연습을 좋아해서 요즘도 어버이날이나 주변 사람들의 생일에는 꼭 손글씨 편지를 씁니다. 예쁜 한글 폰트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손글씨 폰트3 - 귀엽고 아기자기한 탈네모꼴 손글씨, 이숲체
이숲체는 초성, 중성, 종성간의 공간감이 균등하고 작아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표정의 서체이다. 가는 필기구로 또박또박 얌전하게 써 내려간 느낌으로 가로, 세로 획 굵기 차이 없이 깨끗한 이미지이다. 자간, 스페이스 값이 큰 것도 특징인데, 이는 전체적으로 여백이 느껴져 단정한 자소의 형태를 더욱 부각시켜준다. 특히 영문 ‘l, m, n, t’의 형태가 독특했고 특이점은 폰트와 어울리는 딩벳 아이콘 1개를 추가 개발한 것이다.
**딩벳 사용 방법: ‘ㄷ + 한자’에서 6번째 [±] 선택
▶ 이숲체 구성: 한글 11,172자, 영문 94자, 인용부호 4자, 딩벳 1자
디자이너의 말
이숲체는 민글자와 받침글자의 크기가 차이 나는 탈네모꼴의 글자였고, 손글씨 자체의 자소 간 크기가 동일한 특징 때문에 손글씨를 폰트화 하는데 가장 재미있는 형태였습니다. 또한, 샘플문장 시트지 뒤편에 써주신 손글씨 주인공의 감사 메시지가 작업에 지친 디자이너에게 힘과 의욕을 불러일으킨 작업이어서 특히나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한 일상 메시지에서 보여지는 성격과 작은 그림들이 손글씨의 주인공의 성격과 성향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그래서 귀여운 딩벳 또한 추가로 넣어 드리고 싶었답니다.
손글씨 주인공의 말
안녕하세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이숲(이현지)입니다. 나의 손글씨가 폰트가 된다는 건 마치 내 손 끝에서 나온 마음의 일부가 복제되는 기분입니다.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쓰이든, 그 단어와 문장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글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기회를 준 윤디자인그룹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