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3
지난 시간에는 공동주택의 현재와 문제점에 대해 짚어 보았다. 공동주택이 1960년대 서울 종암동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변화와 함께 공동주택을 둘러싼 대중의 인식, 행정기관의 경제논리, 그리고 건축가들이 제시해야 할 방향성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거론되었다. 이번 시간에는 더 나은 공동주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들어보기로 한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자료제공 | AN NEWS
김용삼 좀더 미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공동주택의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전문가의 관점에서 도시를 만들어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생각들은 무엇이며 공동주택의 밑그림은 어떤 모습일까요? 더불어 공동주택의 대안을 이야기하면서 환경문제를 빠뜨릴 수 없잖아요.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다른 부분들은 국내 공동주택도 앞서가려는 노력이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환경 측면에서는 여전히 뒤떨어진 부분이 있지 않나 싶어요.
김효만 공동주택뿐만 아니라 건축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가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가족이 성장하면서 구성원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변하게 되니 공동주택도 개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것이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선진국에서는 이미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것이고 우리도 기술 측면에서 해결해야 되는 문제죠. 기술과 과학이 해결할 문제인데, 그 두 가지가 미래 건축의 밑그림에서 필수 조건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과학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공동주택의 조형적 군집과 도시 전체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의 조화 역시 친환경적인 요소라 볼 수 있어요. 탄소를 줄이는 것만이 친환경은 아니잖아요.
중요한 것은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요구조건이 명확하게 반영되었을 때 비로소 건축이 바뀔 수 있어요.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술이나 이념을 갑자기 적용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추구하는 이상적인 공간 등은 무엇인지 분석한 후 이것을 건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어야 하고요. 소비자가 공동주택의 변화를 시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목적을 공유하면서 정부가 기획하고, 건축가가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실현이 자주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건축도 자신 있게 세계 시장에 선보일 수 있게 되고 또 정체성 문제도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는 어떤 면에서 카피경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끼리 누가 카피를 세련되게 하느냐, 누가 먼저 수입해서 유행시키느냐를 겨루고 있지 않냐는 거죠. 지금은 기획만 잘 돼있으면 자원은 많거든요. 이렇게 대단한 디자인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만들어내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이라는 거죠. 다 버리고 내 것을 만들어 보자는 시도가 더욱 많아져야 된다고 봅니다.
최시영 그건 후배들에게 기대해도 된다고 봐요. 우리가 다 할 수는 없어요.
김효만 지금 시도하고 있지 않으면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디자인한다는 것은 창조적 측면에서 뭔가 이뤄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역사에 기여했다고 인정받은 것들은 대중적인 인기가 없더라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주관적인 시도와 노력이 담긴 것들이 있으니까요.
최시영 김 대표님 말씀 중 가장 수긍이 되는 것이 주거문화의 순수성이에요. 경제논리든 정치논리든 문화는 바뀌어 왔잖아요. 무엇으로 인해 변화를 겪었고 또 변해가더라도 한쪽에서는 인문, 철학을 바탕으로 한 순수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제는 건축가에게 건축은 물론이고 다른 능력도 함께 요구하고 있거든요.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또 벌어지게 될 거예요. 영역이 다양해지다 보니 어떤 분야의 비위를 맞춰야 좋을지 고민되죠. 사실 말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어디에 의지해야 할까요. 저는 파인아트라고 생각해요. 순수한 크리에이티브의 힘은 가공할 만한 힘이 있거든요. 아직은 클라이언트들이 디렉터의 판단과 철학을 흔들어 놓는 경우가 많아서 힘들지요.
김용삼 지금까지 공동주택의 현재부터 문제점과 현실적 대안 모색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논의해 봤는데요. 그 흐름은 공동주택이 처한 냉엄한 현실비판에서부터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 교육에 대한 문제점, 바람직한 담론을 이끌어가기 위한 저널의 역할과 책임 등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견해는 모두다 건축문화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이를 통해 공동주택의 긍정적인 결과와 방향성을 낳는 초석이 되리라고 생각해봅니다. 비록 논의 시간이 짧은 관계로 다소 논리 정연하지 않은 점이 있더라도, 이번 대화는 허심탄회하게 우리의 삶과 공간을 토론하는 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대담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향후 이런 담론들이 곳곳에서 펼쳐짐으로써 건강하고 아름다운 주거문화를 양산해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건축전문가와 디자이너, 건축언론인의 입장에서 공동주택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으로 이번 대화를 가늠할까 합니다. 한 분씩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시영 결론적으로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카더라’로 문화가 바뀌어왔어요. 선진국은 이렇다더라, 잘 나가는 사람은 이렇다더라 하면서 그 뒤를 쫓아가기 바빴죠. 최고만을 원했던 건데, 지금은 이런 ‘카더라’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어요. 공동주택의 장, 단점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도 어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거거든요. 공동주택은 이미 여기까지 와 있고, 다시 한 번 변화할 단계니까요. 이제 공간보다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건축가가 공간에 꿈을 줘야 하죠. 이 공간에 살면 이런 생활이 가능할 거라는 꿈. 추상적이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안정원 최근 각종 매스미디어에서 예측하듯 뜨거워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기후변화의 심각한 재앙이 결국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부터 그 대응방안에 대한 다채로운 안건들도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는 셈이죠. 사실 기온이 2~4.5도만 올라도 40억명이 심각한 물부족 사태를 겪게 되며 지구상의 수많은 동식물이 멸종하고, 섭씨 5도가 올라가면 뉴욕과 도쿄, 상하이 등의 주요도시가 바다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가히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지요. 공동주택에 대한 문제점 역시 이러한 흐름은 예외가 아니에요. 현재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는 태양열, 풍력, 지열 등을 이용한 에너지재생, 도시녹화, 탄소제로 등의 친환경적인 건축 흐름이 공동주택에 어김없이 반영되고 있어요.
얼마 전 개막한 상하이엑스포 또한 무공해 전지차를 통한 엑스포장의 이동, 엑스포 중심축의 42m 높이 대형 태양열 지열관과 LED발광체, 태양에너지, LED조명, 지열펌프, 빗물수집 등의 기술로 녹색건축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는 엑스포센터, 녹색 언덕 위의 우주선처럼 자리한 부채꼴 원형 벽면의 외관은 태양광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유리지붕 하부에 자연채광을 적용해 전기사용을 최소화하고 있는 아트센터, 43개의 국가관 등에서는 ‘아름다운 도시 행복한 생활’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향후 중국은 물론 세계의 친환경 녹색성장에 대한 심도 있는 시도들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해외의 모범적인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우리의 나아갈 방향성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예를 들어 ‘2050 태양에너지 주거단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된 독일의 비스마르크 솔라(Bismarck Solar) 주거단지는 루르지역에 건설된 로드라인 베스팔렌주 주도의 첫 번째 태양열 주거단지로 주변환경과 녹지와의 조화로 모범적인 태양에너지 주거단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과거 광산과 철광산업의 중공업도시였던 겔젠키르헨시, 석탄산업의 붕괴와 환경오염 등으로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이 도시의 생명력은 이제 새로운 태양열 발전을 근간으로 한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지향형 기술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죠. 나아가 태양에너지 분야의 주요기업은 물론 세계 최고의 친환경재생에너지 분야의 기업들도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비스마르크 솔라주거단지의 바람직한 거주환경의 모습과 그 실천정신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구하는 우리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뜨거워지는 지구의 몸부림을 잠재워줄 대안이 바로 우리 자신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됨을 명심해야 할 거예요. 우리의 공동주택의 현실 또한 개발위주의 양적 팽창에서 벗어나 진정 환경을 생각하는 따뜻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임은 자명한 문제입니다.
김효만 공동주택의 미래는 아마 ‘공동의 주택’이 아니라 ‘개인주택들의 공동체’의 개념으로서, 개인적 독립성과 공공적 사회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면서,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상의 환경에 입지하면서, 삶의 프로그램의 변화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해줄 수 있는 ‘움직이는 기계’로서의 조건을 요구 받을 것입니다.
최시영 현재 공동주택이 약간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누군가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려주면 그게 트렌드로 발전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는 각자의 스타일을 발견하고 개발시켜야 해요. 스타일로 간다는 거죠. 건축가든 대중이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것을 고르는 거예요. 최근의 한국은 모계사회로 가는 듯 한데요. 여자들이 자금은 물론 각종 미디어와 모임을 통해 정보력까지 갖추게 되었거든요. 사업자, 시행자, 건축가, 디자이너 모두 이들이 가진 정보의 영향권 아래 있어요. 요즈음 문화는 그곳에서 형성된다고 보면 됩니다. 문제는 이 정보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다는 거고, 그래서 저는 제 스타일대로 가려고 해요.
대화, 그 후…
두 번째 대화는 공동주택의 현재를 짚어봄으로써 개선 가능성과 미래를 점쳐보려 했다. 지금까지 공동주택에 대한 논의는 획일성과 투자 대상으로써의 공간, 이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대담을 통해 실질적인 주거공간으로써 공동주택의 진짜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문제점들이 생겨나게 된 경위와 이유를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대안까지 살펴보고자 했다. 하지만 공동주택이 지닌 문제는 행정, 대중의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결책의 가짓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것은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흥미진진한 입담 대결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세 명의 패널이 입을 모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 가지 수확이 있다면 공동주택이 ‘환경’이라는 화두를 간과하지 않는다면 분명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정글콜론>
7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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