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5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번쯤은 좁은 골목길 사이 혹은 도시의 거대한 건축물에 끼어있는 거대한 빨간 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도시 곳곳에 빨간 공을 설치하는 레드볼 프로젝트(Redball Project)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 새로운 경험을 유도한다. 올 9월, 이 빨간 공이 서울을 찾아온다. 전시를 앞두고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내한한 레드볼 프로젝트의 작가 커트 퍼시케를 미리 만났다.
에디터 | 허영은(yeheo@jungle.co.kr)
레드볼 프로젝트(Redball Project, redballproject.com)는 미국 출신 조각가이자 아티스트인 커트 퍼시케가 진행하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다. 2001년에 시작하여 2016년 현재까지 11개 국, 35개 도시, 300여 곳 이상에서 전시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공이라는 단순한 오브제를 크기를 키우고,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 설치함으로써 도시 속 숨어있던 장소를 발견하게 만든다.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중요한 레드볼 프로젝트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시 장소를 공개한다. 서울에서의 전시는 올해 9월 2일부터 11일까지 10군데에서 진행될 예정으로, 전시 장소 선정을 위해 내한한 작가 퍼트 퍼시케를 만나 레드볼 프로젝트와 서울에서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레드볼 프로젝트는 2001년부터 15년 동안 진행되고 있다. 시작이 궁금하다.
레드볼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사업인 ‘Arts in Transit’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당시 나는 고가도로 밑, 다리와 지면 사이의 공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구상하던 중, 다리 아래에 거대한 빨간색의 구를 그려 넣었는데,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이렇게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을 예상했나?
그랬던 것 같다. 처음 전시할 때부터 앞으로 시리즈로 작업하면 작품이 더 명확하고 강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해석이 필요한 작품이 아니기에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도 전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레드볼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레드볼 프로젝트의 핵심은 골목 모퉁이를 도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것을 봤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이다. 이런 감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프로젝트 사진을 보면, 사람들은 마치 공을 갖고 노는 것처럼 서슴없이 레드볼을 만지거나 몸을 부딪친다.
즐거움은 레드볼 프로젝트의 중요한 주제다. 레드볼은 도시의 딱딱하고 고정된 체계를 풀어 헤치고, 일상의 공간들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레드볼에 담긴 유쾌함은 도시를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고, 더 큰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레드볼은 살아 있는 것처럼 한 도시 안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레드볼은 도심 자체를 캔버스로 활용한다. 작품도 사람처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도시 안에 공을 자연스럽게 놔둠으로써 사람들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려고 한다.
장소 이동이 잦은데, 한 도시 당 일정은?
한 도시당 7~10일 정도를 머물며 하루에 한 장소에서만 전시한다. 각 장소는 오직 한 번만 방문하기 때문에 레드볼은 오직 그날, 그 장소에서만 볼 수 있다. 전시 시간도 6시간 정도로 정해져 있다.
전시 시간을 정해놓은 이유는?
햇빛 때문이다. 날씨는 관람객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 햇빛은 사람의 심리와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날씨가 맑은 날에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만, 더울 땐 그늘을 찾는다. 이렇게 해의 위치와 빛의 세기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달라진다. 그래서 공이 햇빛 아래에 있느냐, 또는 그늘에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며, 현장답사 때도 앱을 사용하여 해의 위치를 꼼꼼하게 체크한다.
장소 선정은 어떻게 하는가? 갑자기 영감을 받아 ‘여기에 가야겠다!’ 이런 식인가?
아, 그랬으면 너무 좋겠다. (웃음) 사실 장소 선정은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아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물리적 위치뿐 아니라 해의 위치, 관객, 유동인구,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모두 고려하여 이 요소들이 가장 잘 어우러진 장소를 선택한다.
프로젝트 진행과정이 궁금하다.
주로 전시하기 1년 전에 도시를 여행하며 현장조사를 한다. 카메라, 스케치북, 미터 측정기를 들고 거리의 구석까지 돌아다니며 전시하기 좋은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여러 장소들을 구성한다. 각 장소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현장답사 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가?
자연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을 동시에 본다. 자연적 환경이 장소의 물리적인 조건과 구조적인 형태라면, 사회적 환경은 그곳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이다.
홈페이지를 보니 콜라주 작업도 있던데, 과정의 일부인가?
콜라주는 현장답사가 끝난 뒤,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답사 때 찍은 사진들과 리서치를 합쳐서 작업하는 것으로, 프로젝트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다. 전시를 하지 않은 장소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진행되는 첫 전시다. 기분이 어떤가?
레드볼 프로젝트와 한국의 열정적인 모습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 궁금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사전 답사를 하면서 한국인의 열정적인 팬 문화를 보았다. 수줍은 성격도 있는 반면,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즐거워하더라.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 기대된다.
가장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도시는?
장소와 관객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반응이 나타난다. 돌이켜보면 관객들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보였고, 그것이 그 도시만의 이야기가 되었다. 도시의 특징을 만드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레드볼 프로젝트를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각 도시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과 심리가 다 달랐다. 그런 면에서 도시가 레드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게 좋다.
레드볼은 다른 공공 미술 작품보다 다가가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공공미술은 단순히 야외에 설치되는 것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진정한 공공예술이 되려면 대중들의 상상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다행히 사람들은 갤러리나 미술관보다 공공장소에서 더 솔직해진다. 그래서 공공 미술은 다른 분야보다 기회도 더 크고, 반응도 다양하다. 하지만 위험도 더 많다.
다가오는 9월에 전시가 진행된다. 한국 관객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레드볼 프로젝트는 내가 여러분께 보내는 ‘초대장’이다. 부담 갖지 말고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 진정한 작품을 만드는 건 바로 관객들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말해달라.
현재 15년 동안 진행했던 레드볼 프로젝트의 책을 집필하고 있다. 아마 서울이 책에 들어가는 마지막 도시가 될 듯싶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출판할 계획이다. 또 예전부터 아시아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데, 서울이 교두보가 되어 아시아의 다른 도시에서도 전시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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