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9
양경수 (a.k.a. 양치기) 작가는 원래 현대미술작가로, 불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현재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더 붓다’ 전에 초청돼 전시 중이다.
양경수 작가님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에서 열리는 ‘더 붓다’ 전을 통해 전 세계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박물관 측에서 구글링으로 저를 찾았어요. ‘Eight Scenes of Buddha’s Life(팔상도)’, ‘The ten(십대 제자)’ 등의 단어는 세계 공통어니까요. ‘더 붓다’ 전은 전 세계 불교 문화재를 모은 전시인데요. 아시아 13개국 중에서 현대미술작가로는 저랑 데즈카 오사무(일본 만화의 신. <우주소년 아톰>, <붓다> 등의 만화를 그렸다) 단 둘만 초청됐고, 한국에서는 저랑 팔만대장경이 대표로 뽑혔어요. 지금 생각해도 무척 영광스럽죠. 전시는 내년 2월까지 이어질 거예요.
전시되고 있는 작품이 부처의 일생을 여덟 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붓다 히어로의 일생>이죠? 선글라스를 낀 부처가 클럽에서 디제잉을 한다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말씀하신 작품은 <팔상도>의 일곱 번째 장면, <녹원전법상>입니다.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내용이죠. 그런데 저는 이게 마치 신나는 금요일 밤, 클럽에서 DJ의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 같았어요. 생각해보세요. 만약 2016년 부처가 깨달음을 설파하기 위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젊은이들이 가득한 홍대 클럽 아닐까요?
부처를 히어로로 재해석한 점도 독특해요. 덕분에 젊은 세대가 불교를 이전보다 훨씬 힙하고 세련되게 느끼는 것 같아요.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열반에 이른 부처의 이야기는 무척 활기차고 변화무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행의 과정을 거친 후 다른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부처는 꼭 영화 속 슈퍼 히어로 같았죠. 그런데 저는 이 히어로를 범접하기 힘든 초월적인 존재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으면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을 택했죠. 이를 테면 클럽 DJ 같은. 그림 속 장소 역시 2016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럽, 공연장, 폐차장 같은 곳을 선택해 젊은 사람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려고 했어요.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 <십대 제자>도 이 히어로물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죠?
맞아요. <십대 제자>는 부처님의 열 명의 제자를 말하는데요. 이들은 당시 125:1의 경쟁률을 뚫은 상위 0.0001%의 초특급 엘리트들이에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당대 최고의 히어로이자, 셀러브리티인 셈이죠. 저는 이들 각각에 현대적인 캐릭터를 부여했어요.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에 정진한 3제자는 꽃거지로, 매서운 논리로 오만한 지식인들을 교화시킨 6제자는 손석희로, 대중설법의 1인자였던 9제자는 래퍼로 표현했죠. 다들 우리 옆에 있을 법한 평범하고 친근한 사람들의 모습이에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요. 문득 처음 불교 미술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부모님이 불교 미술을 해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어요.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저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요. 그런데 돌고 돌아 결국 불교 미술을 하게 된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하죠? 단, 저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불교 미술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좀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불교의 '이야기' 자체에 집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찾아보니까 완벽한 히어로물이더라고요. 이렇게 재미있는 스토리가 재미없는 그림에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때부터 요즘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불교 이야기를 젊고 트렌디한, 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수많은 불교 이야기를 전부 그림으로 표현할 수는 없잖아요. 그중에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이 오는 게 따로 있나요?
그럼요. 주로 캐릭터가 강한 이야기를 골라요. 그건 곧 사건 중심이라는 뜻인데요. 그럼 그림으로 풀기가 수월하거든요. 예전에 <십우도(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그린 그림)>라는 그림을 그리다가 중단한 이유 중 하나도 스토리가 너무 철학적이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이걸 쉽게 푸는 게 제가 해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 역량이 거기까지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공부도 더 하고 노하우도 많이 쌓이면 다시 도전해보려고요.
현재 작업하고 있는 불화는 어떤 건가요? 살짝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은 직장인 일러스트가 빵 터지는 바람에 불교 미술은 잠깐 쉬고 있는데요. 원래 ‘관세음보살 33상(관세음보살이 현신할 때 33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내용)’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각각의 보살에 오늘날의 셀러브리티들이 매칭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방생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보살은 제인 구달과 비슷하고, 아이들이나 힘든 사람을 구제하는 보살은 오프라 윈프리를 닮았죠.
듣기만 해도 작가님만의 색깔이 느껴지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진짜 많이 받는데, 사실 저는 꿈을 생각하고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상투적이지만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자, 그게 제 삶의 철학이에요. A를 해야 B가 나오는 거지, 어떻게 갑자기 B가 나오겠어요? 지금 안 하는 사람은 내일도 안 해요.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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