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가 똑똑해지고 있다. 나이키, 아디다스와 같은 유명 브랜드는 물론이고, 킥스타터(Kick Starter)나 인디고고(Indiegogo)와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도 첨단 기술을 적용한 운동화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려왔던 미래가 바로 지금, 오늘일지도 모른다.
Back to the future
2015년 10월 21일. 아마 당신이 영화광이라면 무슨 날인지 단번에 알아봤을 것이다. 맞다.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주인공 마티가 미래에 도착한 날짜다. 영화 속 미래가 오늘이 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에 맞춰 나이키는 영화에 나온 자동 끈 조절 운동화 ’에어 매그(Air Mag)’의 출시를 예고했다.
사진만 봐도 여러 사람의 가슴을 떨리게 만든 나이키 Nike Mag (사진제공: 나이키)
그러나 10월 21일 당일, 기대와 달리 에어 매그는 마티를 연기했었던 마이클 J. 폭스에게만 선물되었다. 이대로 끝인 줄 알았으나 얼마 전인 2016년 10월 4일, 나이키 매그(Nike Mag)가 세상에 나타났다.
나이키는 ‘제대로’ 작동되는 매그의 영상을 올림과 동시에 판매 날짜도 발표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그리 만만하던가. 단 89켤레만 제작된 에어 매그를 얻기 위해서는 ‘구매’가 아니라 ‘당첨’이라는 행운을 바라야 했다.
나이키의 CEO 마크 파커(Mark Parker)가 직접 나이키 에어 매그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친절히 설명해준다. (영상 출처: 나이키 공식 유투브 채널)
나이키 매그의 추첨권은 10달러로, 구매 햇수는 제한이 없었다. 모든 추첨이 그렇듯이 많이 살수록 당첨 확률은 높았다. 10월 4일부터 11일까지 이뤄졌던 추첨권 판매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지난 17일에는 당첨자가 발표되었다.
사실, 나이키 매그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보다 상징성이 더 크다. 그렇기에 나이키는 신발의 대중화보다 경매와 추첨이라는 이벤트로 판매하는 것이 더 옳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나이키 매그의 총 수익은 675만 달러(한화 약 76억 원)로, 수익금 전부는 파킨슨병 치료 및 연구 재단인 마이클 J. 폭스 재단에 기부된다. 이렇게 영화 속 미래는 현실이 되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끈으로부터의 해방
자동 끈 조절 운동화라니, 나이키의 상술 같은가? 그렇다면 11월에 출시되는 나이키의 새로운 운동화 ‘하이퍼어댑트 1.0(HyperAdapt 1.0)’를 신으면 의심은 사라질 것이다.
자동 끈 조절 운동화 하이퍼어댑트 1.0은 흰색, 검정색, 회색 총 3가지 색으로 출시된다. (사진제공: 나이키)
하이퍼어댑트 1.0는 나이키 매그의 자동 맞춤 기술이 적용된 운동화로,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사용자가 신발을 싣고 걸으면 뒤꿈치에 위치한 센서가 사용자의 체중, 압력 등을 읽는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운동화의 품이 자동적으로 쪼여지거나 느슨하게 조절된다. 양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수동으로도 조절할 수 있다. 나이키 매그의 대중화 버전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하이퍼어댑트 1.0에는 나이키 매그와 똑같은 기술이 적용되었다. 이 상상을 실현시키기위해 나이키는 오랜 시간동안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나이키)
불편함의 감소는 운동 중 집중력 향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곧 기록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하이퍼어댑트 1.0의 등장은 신발 끈으로부터의 해방보다는, 맞지 않는 운동화가 초래한 발의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해결된다는 점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이제 더 이상 밤에 퉁퉁 부은 발을 마사지할 필요가 없다.
쇼핑 왕도 탐을 낼만한 운동화
나이키가 영화 속 운동화를 구현했다면, 버진 아메리카 항공은 자신의 퍼스트클래스 서비스를 신발로 재현했다.
퍼스크클래스 좌석을 구현한 운동화. 겉보기엔 정말 미래가 온 듯하다. (출처: 이베이)
이름도 ‘퍼스트클래스 슈즈(First Class Shoes)’인 이 운동화에는 끈 대신 비행기 좌석에 달려있는 안전벨트 버클이 있다. 신발 정면에는 영상 디스플레이가 달려있으며, 스마트폰을 연결하거나 신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USB 어댑터와 무드 조명도 장착되었다. 데이터 요금제는 미포함이지만, 와이파이(Wi-fi) 연결도 가능하다.
운동화의 소재는 퍼스트클래스 좌석에 사용되는 이탈리아산 가죽이다. 제작 역시 밀라노에서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들어진다. 자사 퍼스트클래스의 고급스러움을 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버진 아메리카 항공은 몇 년 전, 색다른 기내방송 영상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다시 한번 버진 아메리카의 획기적인 마케팅이 놀랍다. (출처: 이베이)
누가 봐도 역사에 길이 남을 운동화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없어 보인다. 재미있는 기념품으로 웃고 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왠지 운동화에 온갖 신기술을 접목해서 뭔가를 해보려는 우리의 현실을 비웃는 것 같다.
그래도 한 번쯤은 신어보고 싶은 퍼스트클래스 슈즈는 이베이(ebay)에서 경매로 판매했다.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된다고 하니, 구매에 정당한 이유까지 생겼다. 모두 마음이 통했는지 경쟁은 치열했고, 약 9만 7천 달러에 최종 낙찰되었다. 참고로 가장 비싼 버진 아메리카 항공 퍼스트클래스의 가격은 왕복 6천 달러 정도다.
내 신발은 내가 디자인한다!
증강현실에서 선택한 옷 이미지가 바로 사람에게 입혀지는 모습은 미래가 배경인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이 소설 같은 이야기가 곧 현실에서 가능해진다.
쉬프트웨어의 시연 이미지. 쉬프트웨어를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자체 마켓을 통해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줬다는 점에 있다. (출처: 쉬프트웨어 공식사이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쉬프트웨어(ShiftWear)’다. 쉬프트웨어 전용 앱을 통해 본인이 디자인한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바로 그 그림이 싣고 있던 운동화에 나타난다. 또한, 쉬프트웨어 전용 마켓에 올라온 이미지를 구매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바꾸듯이 운동화의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비솔(Vixole)’은 게임이나 음악, 운동 등 사용자의 ‘행동’과 연동되어 그 정보가 운동화에 표시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듣는 음악을 그래픽화한 이미지가 보이거나, 운동시 심박수나 소모칼로리가 운동화에 표시된다.
비솔은 ‘포켓몬 고’와 같은 AR 게임과 연동이 가능하다는 부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영상 출처: 인디고고 비솔 페이지)
비솔은 게임과도 연동되어 캐릭터와 진행 내용이 운동화에 표시된다. 이외에도 목적지를 입력하면 낮에는 진동으로, 밤에는 디스플레이 불빛으로 방향을 알려줘 내비게이션 역할도 한다.
두 제품 모두 킥스타터와 인디고고 등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올라와 주목을 받았다. 쉬프트웨어는 내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고, 비솔은 얼마 전 인디고고에서 펀딩을 시작했다. 아직 실제로 출시된 제품이 아니라서 판단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이 정도 기술이라면, 정말 미래에는 생각만 해도 저절로 옷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로봇이 당신의 운동화를 만들어 드립니다.
스포츠 브랜드만큼 첨단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곳도 없다. 신기술과의 결합은 제품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이나 서비스 등 브랜드가 제공하는 모든 것에 해당된다. 최근 스포츠 브랜드들이 눈독 들이고 있는 것은 제작 공정에 대한 혁신이다.
스포츠 브랜드들이 말하는 혁신이란, 4차 혁명으로도 알려진 ‘전자동화시스템’을 뜻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제품을 사람이 아닌 로봇이 전부 다 만드는 것이다. 인간인 우리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자동화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제작 기간이 짧아 그에 따른 비용이 절감된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전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스포츠 브랜드로서는 처음으로 아디다스가 독일에 ‘스피드팩토리(SpeedFactory)’라는 공장을 세웠다. 지난 9월에는 공장의 첫 생산품인 ‘퓨처크래프트 M.F.G(Futurecraft M.F.G)’를 공개했다.
스피드팩토리에서 퓨처크래프트 M.F.G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 아직까지는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공정이 있다니 다행이다. (영상 제공: 아디다스)
각종 첨단 기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로봇이 신발을 만드는 것쯤이야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스피드팩토리의 등장은 다른 의미가 있다. 스피드팩토리에서 생산되는 운동화는 ‘고객맞춤형’으로, 고객이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한 정보대로 로봇들이 제작한다. 즉,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발과 취향에 맞는 운동화를 신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스피드팩토리에서 생산한 퓨처크래프트 M.F.G. 신어봐야 알겠지만 외관상으로는 현재 공장에서 출시되는 제품과 차이가 없다. (사진제공: 아디다스)
이제 미래의 사람들은 로봇이 만든 운동화를 신고 다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은 스포츠 매장에서 제품을 사지 않고 자신의 신체 치수만 재고 나올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은 모든 것을 바꾼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우리를 운동하게 만드는 것은 한 개인의 부지런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운동화의 끈을 바짝 묶고, 힘들어도 잠깐만 참고 뛰어보자. 이 모든 불편함은 곧 기술이 해결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