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이 낫다’는 말을 요새 무척 공감한다. 지인들과 카카오톡이나 라인을 하다 보면 지금 내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이모티콘(이모지) 하나만 보내면 만사 오케이니까 말이다.
‘This is for everyone: Acquiring @n Icon’ 전 전경. 작지만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많은 공부가 된다. (사진 제공: 현대카드 디자인라이브러리)
처음 핸드폰이 등장하고, 메시지라는 기능이 널리 퍼질 때쯤 줄임말이 봇물 터지듯이 나왔다. 그로 인한 한글 파괴와 세대 차이라는 문제는 마치 마트의 1+1행사처럼 덤으로 따라왔다. 해당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공통이었다. 그러나 이모티콘이 등장하면서 세대 차이는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60대가 넘으신 어르신 분들도 능숙하게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가족·친구들과 카톡을 한다.
우리는 글보다 이미지가 우선인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어라, 잠깐만. 생각해보니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지의 함축적인 힘을 알고 있었다. 아래의 이미지를 보라. 한눈에 봐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International Symbol for Peace, 1958. 정말, 이 아이콘이 간절하게 필요한 세상입니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아이콘과 상징은 우리 생활 속에 항상 존재했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그림이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자마자 알 수 있다. 물론 학교에서 배워서 아는 거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아도, ‘어떻게’ 탄생했고 ‘어떠한 힘’이 있는지 모른다.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서는 꼭 사용해야 하는 @은 사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용한 문자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6~7세기부터 시작이다. 역사가 긴 만큼 의미 변화도 상당하다. 처음에는 수도사들이 성경을 필사하면서 줄임말로 사용했던 것이 무게와 부피당 물건값을 나타내는 의미로 변했다가, 19세기에는 회계사들이 장부에 사용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이메일 아이콘으로서는 1971년 레이 톰린슨(Ray Tomlinson)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냥 키보드에 있어서 사용한 줄 알았던 @사인이 이렇게 긴 역사를 자랑하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키를 누를 때마다 모니터에 절을 해야겠다.
@, 1971. 나만큼 오래된 아이콘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에헴! (이미지 출처: MoMA 공식사이트)
온/오프(On/Off)를 지칭하는 ‘The IEC Power Symbol’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탄생한 아이콘이다. 원래 따로 존재했던 온, 오프 버튼이 기술 발달 때문에 하나로 합쳐지자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나타낼 수 있는 아이콘을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고안해낸 것이다. 우리는 너무 익숙한 나머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이콘에 담긴 이야기를 간과한다. 솔직히, 이 아이콘의 이름이 ‘The IEC Power Symbol’인지도 몰랐지 않았는가.
The IEC Power Symbol, 2002. 나를 어디서 많이 보시나요? TV 리모컨? (이미지 출처: MoMA 공식사이트)
때때로 아이콘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화를 나타낸다. 대표적으로 장애인을 독립적인 존재로 표현한 ‘Accessible Icon Project’의 휠체어 아이콘이 있다. 현재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 아이콘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장애인이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LGBT를 상징하던 ‘The Rainbow Flag’는 얼마 전 미국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과 함께 세상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곳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하나의 작은 그림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행동하게 하며 세상을 바꾼다.
Accessible Icon Project, 2009-11 (이미지 출처: Accessible Icon Project 공식사이트)
The Rainbow Flag, 1978.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사진 출저: ©Ludovic Bertron)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은 일찍이 아이콘의 가치를 알아보고 2010년부터 꾸준히 소장품으로 보관하기 시작했다. 현재 현대카드 디자인라이브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This is for everyone: Acquiring @n Icon’ 전에서는 모마가 소장한 15점의 아이콘을 볼 수 있다. 아이콘을 전시한다는 사실도 생소한데, 이들이 세계적인 미술관의 소장품이라니 획기적인 일이다.
그러나 각 아이콘에 담긴 뒷이야기와 의미,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읽다 보면 왜 모마가 이들을 소장품으로 선택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면,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상징 및 아이콘들이 과연 예술적인 위상을 가져도 되는지, 또는 미술관이 공공의 것으로 여겨지는 아이콘을 ‘소유’해도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전시장의 벽면에는 각 아이콘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있다. 이모티콘으로만 제작된 디자인 책들도 읽어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사진 제공: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옥스퍼드 사전은 2015년 올해의 단어로 ‘이모지(Emoji)’를 뽑았다. 누구나 이모티콘으로 대화하는 시대에서 한 번쯤은 아이콘이 가지는 힘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전시는 12월 4일까지 열리니 날씨가 더 쌀쌀해지기 전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단, 현대카드 소지자와 동반 1인만 관람 가능하다.
자료제공_ 현대카드 디자인라이브러리(
library.hyundaicard.com/design/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