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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상징에 목메는 공공디자인

2011-01-31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공디자인은 무엇일까? 바로 장소와 공간의 전통과 특징을 내포한 상징성을 내세운 건축물과 경관 디자인이다. 하지만 이 그럴싸한 명제와는 달리, 정작 전국에 넘쳐나는 것은 거리의 가로등 전체를 도배한 고추 형상물, 부두 위에 내려앉은 갈매기 조형물 등, 지극히 일차원적 상징물들의 퍼레이드이다. 각 지역만의 장소특정성이 부재한 상징으로만 점철된 안일한 공공디자인이 오늘날 우리나라 공공디자인의 현주소인 것. 그렇다면 미관상 아름답지도 않고 이용자 친화적이지도 않은 이런 조형물이 형성되는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안일한 상징으로 둔갑한 공공디자인의 현 실태와 문제를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마련했다.

기획, 글 | 퍼블릭아트 조숙현 기자

서울 도심의 한복판, 젊은이들의 모임과 쇼핑 장소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은 말을 타고 아슬아슬한 포즈를 취한 로데오 기수 조형물이다. 역사적인 정황과 공간의 상징적 맥락과는 전혀 관계없는, 오로지 ‘로데오’라는 단어와 억지로 의미를 꿰어 맞춘 이 조형물은 심지어 ‘관광특구 지역 활성화’이라는 슬로건까지 버젓이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막무가내’식 상징물을 앞세운 공공조형물이나 디자인의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역의 문턱 역할을 하는 기차역에 세워진 뜻 모를 조형물들, 교량을 디자인할 때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바다를 상징하는 물결무늬와 강렬한 파란색은 이용객들의 발길을 붙들기는커녕 오히려 주변경관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지역단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발생한다. 세계 시장이 개방되고 지방자치가 어느 정도 안착되면서 지역의 특산물이 브랜딩되고, 장소마케팅이 보편화됨에 따라 브랜딩과 마케팅의 수단으로 지역의 상징이 재구성되어 가로시설이나 조형물로 빈번히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내 고향’의 특성들이 지역 특산물이나 캐릭터를 중심으로 축소되면서 지역 상징들이 일차원적인 재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디자인연구소 류제홍 박사는 “‘상징’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단 배경이 되는 장소와 공동체 혹은 구성체가 존재해야 하고 이야기나 사건에 의해 촉발되는 과정이나 의례나 축제에 의해 의미를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현재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일한 상징체계는 지역 주민들이나 외부인 모두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라고 상징주의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이런 상징 디자인이 공공 디자인으로서 적합하지 않은 더 큰 이유는,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조형물과 디자인이 주변의 경관을 가리고 시야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승수 건축가는 “공공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배경으로, 공공을 위해 존재하는 디자인이다. 그런데 주변 환경을 배려하는 상징이 아닌, 행정적인 지시에만 충실한 저차원적인 상징물들은 사람들이 만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공공 공간의 본래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상징물은 본디 공간 이용자들의 합의와 역사성이 전제된 특수한 장소에 세워져야 하는데 상징물이 일상이 된다면 더 이상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행정 매뉴얼에만 충실한 디자인은 디자인의 기본 정신인 창의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상징을 이용한 공공디자인의 성공적인 사례나 대안은 무엇일까? 류제홍 박사는 “먼저 상징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전문적인 공무원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메모리얼을 이용한 예 등 좀 더 명민하고 포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류박사는 “돌탑을 쌓듯이 잃어버린 기억을 모으는 작업부터 시작하자. 그냥 돌을 쌓지 말고 프레임을 만들어 모양을 잡고 그 안에 돌을 쌓으면 염원과 기억이 조직화될 수 있다. 기억들의 염원을 담아 조직해 보자는 얘기다. 일정한 용기 속에 아이디어들을 모으고 상상의 은행을 만들고, 흔적을 살리고 바람을 모아 보이지 않던 집단적 소망-이미지를 그려 보자. 경복궁에 처음으로 들어간 현대 조형 작품인 <인왕산에서 굴러온 돌> 은 경복궁 주변 인왕산을 둘러싼 오래된 이야기들을 인터넷으로 모으고 돌을 쌍아 <사회적 뇌(social brain)> 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기억들을 모았고 조직화된 뇌 모양의 틀에 돌을 쌓은 기념물로, 커뮤니티 이용자들이나 방문객들의 자연스러운 공감을 형성한다.”라며 모범사례를 제시했다.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는 수배여개의 “바르게 살자” 자연석과 비교해 볼 만한 사례들도 있다. 일예로 세계로 흩어진 유태인의 척박한 환경과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한 자연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 미국 뉴욕의 배터리파크 지구(Battery Park City) 내 유태인유산박물관(Jewish Heritage Museum) 2층 공개 공지에는 <돌들의 정원”(garden of stones)> 이라는 공공조형물이 있다. 자연석 18개(유태문화의 전통에 따라 ‘LIFE’라는 단어의 알파벳 철자가 각각 상징하는 숫자들을 합한 개수)에 구멍을 뚫고 나무 씨를 심어 자라게 한 작품이다. 40-50cm 정도로 자란 푸른 나무는 세계를 떠도는 유태인의 척박한 삶의 조건과 그럼에도 끈질기게 이어가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한 조경시설이 아니라 유태인의 삶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일단 맥락을 알고 나면 유태인의 삶에 공감하게 된다.

같은 배터리파크 지구의 ‘아일랜드 기아 기념관(Irish Hunger memorial)’은 아일랜드 특유의 풍경을 재현한다. 1층에는 기아의 기록이 벽면의 띠를 타고 흐르는 기념관 건물이 있고, 1층 건물을 통과하면 뒤편에는 예측하지 못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고 강바람이 부는 쾌적한 경사지 공원 풍경 모습의 아일랜드에서 기근(Great Irish Famine: 1845-1852)으로 비참하게 굶어 죽은 수백만 명을 떠올리면, 이 작은 공원은 관람하는 이의 슬픔에 잠기게 된다.


상징물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상징의 원형이 되는 의미에 집중함으로써 성공한 사례도 있다.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이 설계한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 도서관(Phillips Exeter Academy Library)은 도서관의 주인공을 ‘책’으로 상정하고, 책을 읽는 행위나 독서의 접근 방법을 상징물의 구현 목적으로 상정함으로써 책이 진열된 중앙 공간, 사람과 책이 만나는 공간의 차별적 설계에 성공했다. 이는 ‘도서관’하면 으레 떠올리는 책이나 기타 오브제의 외형을 동상으로 입구에 세우는 방식과는 차별화되는 것이다.

한편 이런 전략이 관철되고 통용되기 위해서는 공공디자인을 설계할 때 기획 단계에서 전문가와 유저의 의견 수렴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승수 건축사는 “현행 공공디자인 설계는 기획 후 용역이 발주되어 위에서 아래로 지시가 이루어지는 직선일괄적인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프로젝트를 좌지우지하는 몇 명의 의사결정자들의 성향과 취향에 따른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관례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 전문가와 시민들 모두의 의견이 수렴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도 주민설명회 등의 형식적인 과정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마스터플랜 단계에서의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 조율 과정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원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채 얄팍한 마케팅 전략에 이용되는 상징위주의 공공디자인 행정, 이제 상징체계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의 형태와 과정을 총체적으로 다시 디자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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