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2
지금 국내에서는 세계적인 두 사진작가의 귀한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포토그래퍼라 불리는 닉 나이트와 패션, 광고계는 물론 예술계에서도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데이비드 라샤펠의 전시다. 이 두 작가는 실사 촬영 vs 디지털 그래픽 기술의 결합이라는 서로 다른 작업 방식으로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두 작가 모두 우리가 원하는 아름다움과 그 본질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데이비드 라샤펠_ INSCAPE OF BEAUTY
데이비드 라샤펠은 사진 작업으로 패션과 광고계를 넘어 예술계까지 섭렵한 아티스트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다소 과장된듯한 이미지를 풍기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실제 세트 제작과 실사 촬영을 통해 완성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콘셉트에 맞게 분장을 하고 데이비드 라샤펠의 의도에 따라 제작된 세트에서 연기를 펼친다.
작품의 색감이나 인물의 구성, 소품 등은 인위적이고 과장된 듯한 이미지를 풍기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복잡한 감정들이 마음 한편에 자리한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욕망, 그 덧없음, 살아가고 살아내는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데이비드 라샤펠전 ‘INSCAPE OF BEAUTY’는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폭넓게 선보이고 있다. 5년 전 내한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30점에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 150여 점을 더해 총 180여 점을 선보이는데 그중에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그의 최근작도 포함돼 있다.
일관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이면서도 다채로운 영역을 오가는 그의 작품들은 총 4개의 섹션을 통해 전시된다. 전시는 1984년 그의 초기 순수 예술 작업부터 시작된다. 앤디 워홀을 만나면서 시작된 작품세계와 매거진 포토그래퍼로 작업했던 작품들, 마이클 잭슨, 에미넴, 엘튼 존, 안젤리나 졸리, 마돈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유명 셀럽들과 진행한 작품들이 M1 ‘POP’에서 전시된다.
M2 ‘Rebirth Of Venus’는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비너스의 재탄생(Rebirth Of Venus)>은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V&A Museum)에서 진행된 기획전시 ‘보티첼리 리이매진(Botticelli Reimagined)’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다. 인간을 순수하게 바라본 그의 시각을 표현한 최근작으로 남성과 여성이 모두 한 몸에 존재하는 성 소수자를 주제로 한 작품도 있다. ‘CINEMA ROOM’에서는 마이클 잭슨,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엘튼 존 등 셀럽들의 뮤직비디오 메이킹 영상도 볼 수 있다.
M3 ‘DESIRE’에서는 소비와 탐욕 등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랜드 스케이프(Land Scape)>는 가장 최신작 중 하나로 미래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이 작품은 재활용품과 공산품으로 모형 제작을 통해 촬영된 것으로 사진 작품과 함께 <에메랄드 시티(Emerald City)>라는 실제 세트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M4 ‘DELUGE / STILL LIFE’에서는 초창기 순수예술사진으로 돌아간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셀러브리티의 초상을 암울한 집합체로 다룬 <Still Life> 시리즈는 파손된 셀럽들의 밀랍 조각상을 촬영한 것으로 권력의 부질없음을 말하고 있다.
닉 나이트_ 거침없이, 아름답게 NICK KNIGHT: IMAGE
닉 나이트는 사진과 디지털 그래픽 기술의 결합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든 제1세대 작가다. 스스로를 ‘이미지 메이커’라 칭하는 그는 다큐멘터리, 패션 사진, 디지털 영상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독자적은 스타일을 펼쳤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의 협업, 유명 매거진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인 그는 2010년 대영제국훈장(OBE) 수여,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British Fashion Award, 2015) 수상 등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보다 더 주목할 점은 그의 작품세계에 있다. 바로 아름다움에 대한 전형적인 가치관과 사회적 통념을 깨기 위한 그의 거침없는 시도다.
대림미술관에서는 국내 최초로 닉 나이트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 ‘거침없이, 아름답게(NICK KNIGHT: IMAGE)’에서는 다큐멘터리적 접근부터 인종·동물보호 등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패션 캠페인,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 이미지에 움직임을 더한 영상 등 끊임없는 시도를 선보인 그의 작품들이 총망라된다.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한 통념을 바꾼 그의 전시는 6개의 섹션으로 구성, 총 11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스킨헤드(SKINHEADS)’로 시작된다. ‘스킨헤드’에서는 스킨헤드 문화의 자유로움과 솔직함을 포착한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선보인다. 닉 나이트는 패션, 음악 등 스킨헤드 문화에 강하게 매료돼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그가 전문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된 이 프로젝트는 1982년 사진집으로 출간된 후 이번 전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기도 하다.
‘초상사진(PORTRAIT)’에서는 동시대 대표 예술계 인사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전시된다. 그는 특정 표정과 자세, 움직임, 소품을 통해 인물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독창적인 초상사진 스타일을 선보였고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디자이너 모노그래프(DESIGNER MONOGRAPHS)’는 패션계에 대한 그의 도전을 보여준다. 여성을 상품화, 대상화시키던 당시 패션계의 보편적인 시선에 과감히 도전한 화보들은 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 마틴 싯봉, 질 샌더와의 오랜 협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의상 자체와 표현에 집중하는 그의 시도는 정형화된 화보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페인팅 & 폴리틱스 (PAINTING & POLITICS)’에서는 ‘미’의 전형적인 가치관과 사회적인 통념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들이 전시된다. 패션을 일상과 가장 밀접하면서도 파급력이 강한 예술의 한 형태로 여긴 그는 패션과 결합한 캠페인 화보를 통해 장애, 차별, 폭력, 죽음 등 금기시되고 소외됐던 사회적 이슈에 대해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표현의 극대화를 위해 90년대 초부터 퀄텔 페인트박스(Quantel Paintbox) 등을 도입했는데 이러한 그래픽 장비를 활용한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정물화 & 케이트(STILL LIFE & KATE)’에서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 작품들과 실험적인 표현기법을 볼 수 있다. 3D 스캐닝 한 디지털 데이터를 프린트, 2차원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인쇄하는 기법을 도입한 케이트 모스의 사진 조각상도 있다.
마지막 섹션 ‘패션필름(FASHION FILM)’에서는 그의 최근 작품들이 전시된다. 의상에 깃든 고유한 내러티브를 다각도의 프레임으로 저장, 움직임을 표현한 영상 실험을 통해 확대된 그의 작업은 애니메이션, 3D 촬영, 비디오 콜라주 등이 접목됐다. 패션필름을 대중들에게 실시간으로 선보이는 ‘쇼스튜디오(SHOWstudio)’를 통해 패션 사진을 영상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패션필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그의 실험정신도 살펴볼 수 있다.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정형화된 아름다움의 개념을 뒤집는 닉 나이트와 사회적인 이슈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데이비드 라샤펠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아름다움에 대한 메시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아름다움의 의미는 정해진 것이 아닌 다시 정의될 수 있는 것임을 말하는 닉 나이트와 충족되지 않는 욕망 속에서 분투하는 인간을 통해 아름다움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데이비드 라샤펠을 통해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삶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보는 것은 어떨까.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아라아트뮤지엄 / 대림미술관, NK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