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3
“이 스툴로 말할 것 같으면, 이탈리아 수제품 장인과 디자이너 이광호가 한 땀 한 땀 만든 것이란 말이지.” 말로만 듣던 ‘한 땀 한 땀’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젝트가 열렸다. 2011년 펜디의 정규 프로젝트로 지난 3월 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점 펜디 매장에서 선보인 ‘파토 아 마노 포 더 퓨처(Fatto a Mano for the Future)’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
글 | 월간 디자인 신정원 기자
자료 제공 | 펜디 코리아(www.fendi.com)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제한된 시간 내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펜디 장인과 국내 디자이너가 함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퍼포먼스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이 퍼포먼스를 관람하는 고객은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해 이들과 대화하고 교감할 수 있다. ‘파토 아 마노’는 이탈리아어로 ‘수제’라는 뜻. 그간 이광호는 고무 호스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이번에는 펜디만의 최상급 가죽인 셀러리아(selleria) 가죽을 호스 형태로 변형해 작품을 완성했다. 이 아이디어는 장인이 제안한 것으로 이광호의 고무 호스가 펜디 셀러리아 라인의 린다백 손잡이 부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시작된 것이라고. 덕분에 이광호도 빡빡한 고무 호스가 아닌 부드러운 가죽으로 좀 더 매끄럽게 스툴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장인은 셀러리아 가죽을 손수 자르고 접고 스티칭해서 호스를 만들고, 이광호는 이 호스를 엮어 스툴을 만드는 협업을 펼쳐 보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장인과 이광호가 함께 생동감 넘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매우 중요했을 터. 둘은 펜디 프로젝트를 위해 이광호의 스튜디오에서 한 달간 동고동락했고 이 덕분에 행사 후에는 돈독한 사이가 됐다는 후문이다.
사실 펜디와 이광호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펜디는 2009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크래프트 펑크(Craft Funk)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10개국 10명의 디자이너를 초대해 열흘간 쇼룸에서 먹고 자며 디자인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여기서 이광호는 정원용 호스를 꼬아 만든 스툴 ‘옵세션(Obsession)’으로 집착에 가까운 집념을 보여줬다. 신념을 갖고 우직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태도는 펜디가 추구하는 장인 정신과 맞아떨어져 ‘파토 아 마노’에서 다시 한 번 펜디와 손을 잡는 계기가 됐다.
펜디는 이런 글로벌 프로젝트는 보통 아시아 본사인 홍콩에서 시작했지만, 이번만큼은 한국에서 첫선을 보였다. 펜디 코리아에 따르면, 펜디가 속한 루이비통 모엣 헤네시(LVMH) 그룹이 세계 최초로 자사 제품의 공항 면세점 판매를 허가할 만큼 한국의 명품 시장이 고속 성장하고 있으며, 커진 시장 규모만큼이나 브랜드의 정신과 문화를 소화하고 교감할 수 있는 나라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