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미술사가 · 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 2017-02-07
날이 갈수록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1인 가구일 정도로 혼자 생활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데 비례해서, 규칙적이고 의례화된 식생활 패턴과 여럿이 모여 함께 먹고 마시는 공동체 결속 의례로서 회식 문화의 당위성도 약해져 가고 있다. 또한 정해진 시간에 삼시 세끼를 꼭 챙겨먹어야 한다는 인식도 희미해지고 있으며, 정식 끼니를 거르고 간식으로 영양을 보충하는 인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식음료업계는 이 새로운 문화 현상을 이윤 획득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포착하고 시장조사와 새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침식사 문화의 기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식사는 여러모로 하루 중 제일 중요한 끼니’라는 대중적 믿음은 사실 20세기 초에 미국의 시리얼 제조업체 켈로그(Kellogg’s) 사가 콘플레이크(Corn Flakes®)라는 아침식사용 시리얼을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낸 광고 슬로건에서 비롯됐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아침식사(breakfast)’ 의례란 고작해야 1백 년이 조금 지난 비교적 신생 식문화인 것이다. 콘플레이크의 발명가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 박사는 아침식사 할 때 꼭 지켜야 중요한 요건이 있다고 했는데, 온 가족이 다 함께 단란하게 식탁에 모여 앉아 느긋하게 조식을 즐기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과거 인류 역사 속에서 삼시 세끼 관습은 여간해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대 로마인들은 점심 겸 저녁 한 끼를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으며, 아침식사 하는 사람을 과식하고 욕심 많은 자라고 여기며 탐탁지 않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또한 과거 유럽은 먹을 것에 대한 종교적 규율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예컨대 아침 기도를 하기 전에는 절대 먹을 것을 입에 댈 수 없었고, 고기는 1년 중 허용된 일정 기간에만 먹을 수 있었다. 그나마도 예측불허의 자연재해로 식량 공급과 확보가 들쭉날쭉해 기아와 포식을 오가는 불규칙한 식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절 사람들은 빵, 유제품, 말린 생선을 주식으로 한 소박한 한 끼 식사를 가족과 나누었다. 20세기 전반기를 살았던 노년세대는 세계 대전과 식량 부족에 따른 불안과 영양 부족으로 고생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가 보편화된 20세기 후반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서구에서는 달걀과 베이컨이 곁들여진 육류 위주의 든든한 아침식사를 건강에 이로운 것이라 하며 권장했다. 필자가 성장기를 보낸 1970~80년대의 대중매체는 공부를 잘 하려면 아침을 거르지 말라고,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누누이 당부했다. 현대인 사이에서 별미로 사랑받고 있는 햄-소시지-베이컨, 달걀, 콩조림으로 구성된 영양가 높고 기름진 영미식 브랙퍼스트, 일명 브런치(brunch)는 실은 사순절에 들기 직전에 농군들이 남은 고기를 실컷 먹으며 잔치를 벌였던 것에서 유래됐다.
삼시 세끼 철칙의 붕괴
물질적 풍요의 시대인 20세기 후반기 이후부터 점점 많은 사람이 규칙적인 하루 세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기후 예측력의 현대화 덕분에 치명적인 식량부족을 겪지 않아도 될 만큼 농산물 생산성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현재 도시인들 중 절반 이상은 아침식사를 거르며 살고 있다. 너도나도 아침 시간 바쁜 출근길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쫓겨 매일 아침식사를 챙겨 먹기 어렵기도 하지만, 점심과 저녁 모두 외식이 잦은 음식문화, 하루 세끼 중 저녁을 가장 든든하게 먹는 저녁식사 위주의 우리 식생활 패턴, 각종 성인병과 과체중에 대한 건강 대비책으로서 일부러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례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길에 오른 현대인들은 배가 고프다. 영어로 아침식사라는 의미의 단어 블랙퍼스트(breakfast)가 ‘단식(fast)’을 ‘깬다(break)’는 뜻에서 기원했다지 않는가. (밤 늦게 야식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지난 밤 저녁을 먹고 잠에 들어 아침에 눈을 뜬 우리는 10시간 넘도록 굶은 상태다. 그리고 많은 직장인은 거리 매점이나 편의점에서 아침 허기를 달래줄 아침식사 대용 음료나 간이 음식을 사서 걷거나 뛰면서 먹어 치운다.
실제로 이 같은 새로운 식생활 양상은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많은 현대인이 하루 종일 수시로 경험하는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테이블을 독차지하고 앉아 식사하거나, 출근이나 외출 시에 도시락을 준비하지도 않는다. 하루 일과 중 정해진 식사시간에 얽매이지 않으며, 식사 계획도 없다. 허기가 느껴지거나, 간이 스낵코너나 편의점이 눈에 띄면 간편식이나 포장식을 사먹는 것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현대인의 식사 스타일은 최근 다시 변화하고 있다. 최근 특히 미국을 위시로 하여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신(新) 트렌드는 이른바 ‘풀뜯기(grazing)’식 식사법 혹은 ‘끼니의 스낵화(snackification of meals)’ 현상이다. 시카고 소재의 시장조사업체인 인포메이션 리소시스 인코퍼레이티드(Information Resources, inc. (I.R.I))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 종일 간식과 주전부리로 끼니를 때우거나 식사를 대신하는 추세라고 한다. 끼니 때마다 일정한 시간을 확보하고 식탁 앞에 앉아 식사를 하기보다는 기회가 될 때마다 간편식이나 주전부리용 스낵을 손에 사 들고 자리를 이동하면서 후다닥 먹어 치우는 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이른바 ‘온 더 고(on-the -go)’형 소비자들이 이 새 트렌드의 주인공이다.
세련된 현대인은 1인 식객
과거 식사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해야만 하는 단체활동이라는 사고방식, 즉 식사는 공동체 의례행위(communal ritual)라는 사회적 믿음 때문에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홀로 식사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자리에 앉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면서 먹는(eating on the run)’ 생활에 익숙하다. 또 혼자 식사하는 사람은 비사회적이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오히려 ‘혼자 먹고 혼자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happy to be alone)’ 개인주의와 자신감이 강해졌고, 덩달아 식생활 문화에도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무소유적 삶, 비움, 간소함의 미학 열풍이 불며 집안 인테리어를 가급적 간소하게 디자인하는 미니멀라이프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음식문화도 그에 맞춰 합리화, 간소화되고 있다. 예컨대 대체로 한정된 공간 속에서 혼자 생활하며 적은 규모로 식품이나 공산품을 소비하는 1인 가구는 굳이 목돈을 내고 30개들이 덕용포장 화장지나 가족용 슈퍼사이즈 참치 통조림, 대형팩 우유를 사두어야 할 필요성이 없다. 소비하지 못해 부패한 신선재, 남은 음식거리, 쓸모없어진 물건을 쓰레기로 내버리는 일은 가격 대비 낭비일 뿐만 아니라 쓰레기 폐기 비용까지 추가 부담시킨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는 윤리적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게 환경보호나 절제된 소비를 호소했다. 어쩌면 이제 규모 있는 삶과 절제된 소비 태도는 당연한 경제적 선택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케팅 분야 전문가들은 소포장 제품은 임금이 낮고 구매력이 제한된 제3세계 소비자 대상 시장에서나 먹히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여겼다. 하루하루 노동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저소득 소비자들은 저축률이 낮기 때문에 장기계획이나 미래 대비용 사재기 구매를 하지 않고 현재 지갑 사정에 맞게 당장 필요한 자재나 상품을 소량으로 구입해 바로 소비하고 버리는, 이른바 ‘그날그날 구매(hand-to-mouth buying)’ 행위를 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소포장 생필품과 위생제품 심지어는 이동전화 통화료도 매일 필요한 만큼만 소량으로 구입하는 하루살이식 소비패턴이 널리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존 구매 트렌드와 포장 디자인 또한 제3세계의 경제성장과 중산층 인구 증가로 선진국형으로 빠르게 변화 중이다.
1인 소비시장의 포장 디자인 전략
혼식(혼자 식사하기)은 점점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이자 새로운 문화의 표준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혼자서 식사하고 혼자서 술을 마시는 1인 외식인구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며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4인 표준 핵가족 시대를 넘어서 무자녀 2인에서 1인 가구로 가족 단위는 잘게 해체되면서 개인들은 원자화되어 간다. 결혼을 미루고 싱글의 삶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자녀를 둔 엄마를 포함한 더 많은 여성은 일터로 나가고 있으며, 이혼의 증가로 한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2세 인구도 계속 늘고 있다. 인터넷과 개인용 모바일 기기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만사 즉시 구입하고 소비하는 행동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과 소통할 필요나 노력도 덜 필요해졌다. ‘온 더 고’ 소비자들은 45세 이하의 젊은층 인구가 주를 이루고, (고령화 추세에 따라 앞으로 소비 연령대는 이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으며, 세대가 어릴 수록 1인분 분량으로 포장된 인스턴트 포장식이나 간편식/음료로 손길을 뻗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핵가족 단위의 식생활 패턴이나 먹거리 장보기 행위에 대한 시장연구는 마케팅 분야의 라이프스타일 조사를 통해 이루어져 있지만, 최근 한두 해 급격한 증가추세에 있는 1인 소비자에 대한 소비행태 연구는 갓 시작단계다. 1인용 즉석 식음료 시장이 1인용 소포장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서 특히 식음료 업계는 최근 새로 변화한 소비자 성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조사가 한창이다. 1인 소비 시대에 1인용 식음료 포장 디자인이 염두에 두면 좋을 1인 소비자 취향을 정리해 보았다.
1 지난 40년 사이 1인 가정이 많아지고 가구당 식구 수는 줄어들었다. 식음료품의 아이템당 용량도 작아지고 있다. 테트라팩의 술레이 무라코글루 마케팅 및 제품관리 사장은 늘 변화하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따라 포장 디자인의 크기와 제품당 용량으로 세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 젊은 세대 일수록 정해진 식사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하루 중 아무 때나 내킬 때 음식을 찾는, 이른바 24시간 형 생활자가 많으며, 정식으로 차린 식사 말고 간편식이나 간식류로 끼니를 때우는 것에 익숙하다. 인터넷과 연결된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일, 오락, 음식 구매와 배달 서비스에 개방적이고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의 포장편의식을 이용하는 경향이 많다.
3 세대나 연령대에 상관없이 보다 많은 소비자가 슈퍼마켓이나 상점에서 포장음식이나 음료수를 구입할 때 바로 구입하여 소비한 후 폐기할 ‘즉석 소비형(grab and go)’ 포장을 택하는 추세다. 구입 후 일부만 소비하거나 일부를 보관하여 재조리해 먹지 않는 경향이 많다.
4 2012년 이후로 최근까지 개별 식음료품 포장 규모는 점점 작아지는 추세이나, 소포장 제품을 여러 개로 묶어 파는 가정보관용 포장방법은 인기를 끌고 있다. 벌크팩 포장식음료는 집에 보관해 두고 매번 새 소포장된 제품을 개봉하여 단숨에 소비하므로 위생에 좋고 남겨서 버릴 일이 없다.
5 젊은 세대일수록 제품 가격에 민감하며 갖고 있는 예산 안에서 소비한다. 가격이 너무 비싼 업스케일 제품과 지나치게 저렴한 제품보다는 적정한 가격대에서 가격 대비 합리적인 제품이라 판단되는 제품을 선택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포장과 소포장 싱글 서브 패키징(single-serve packaging) 방식은 본래 위생이 생명인 의료보건용품과 의약품, 장기 보관용 밀폐 식음료품, 개인 미용 및 위생용품 시장에서 먼저 도입된 포장 혁신이었다. 식음료품이 1인 소비용 소포장 제품 중에서 최근에 급격한 매출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포장 디자인(packaging design)은 편의성, 위생, 신선 유지력, 영양 보존력, 쓰레기 최소화 등 디자인의 미관상 측면보다는 과학기술에 의존한 기능성이 더 중요해졌다. 도시 환경 속에 생활하며 편의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위한 1인용 소형 포장 디자인은 1) 쉽게 파손되지 않을 것, 2) 가벼울 것, 3) 사용하기에 쉬울 것이라는 3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글_ 박진아 (미술사가 · 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