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거주하는 사진 컬렉터 빈센트 클라인이 자신의 수집품을 공개했다. 보는 순간 가슴이 뛰면 주저 없이 구입한다는 그의 소장작 리스트를 본다면 누구나 절로 입이 벌어질 것이다.
사진 왼편으로 보이는 작품이 모리야마 다이도의 ‘야생 개’
빈센트 클라인(Vincent Klein)은 바쁜 금융 관련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사진 구매를 하고 있는 열혈 컬렉터다. 그는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마이클 케나를 비롯해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데이비드 라샤펠, 윌리엄 클라인, 모리야 마 다이도 등 그 리스트도 화려하다. 아마 사진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왜 사진에 주목했던 것 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사진을 컬렉팅하기 시작했을까.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어릴 때부터 아트 딜러이자 가구 컬렉터였던 아버지와 함께 미술관과 옥션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미술품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특히 사진은 찰나의 순간 빛의 마법으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사진에 매료됐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는 것에 몰두했다. 학창 시절, 아버지에게서 빌린 니콘 F카메라로 파리 시내를 흑백으로 촬영한 뒤 마레 지구에 있는 사진 현상소에 가서 필름을 현상하는 것이 커다란 낙이었다. 그곳에서 1980~199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사진가 패트릭 드마르슐리에(Patrick Demarchelier)와 베티나 랭스(Bettina Rheims)를 만나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비록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본업인 금융 거래를 하면서도 사진에 대한 사랑은 멈출 수 없었다.
키스 해링을 향한 짝사랑으로부터
JP 모건(Morgan)과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에 근무하면서 모은 돈으로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사진가들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구매한 사진은 1980년대 키스 해링(Keith Haring)이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한 블라디미르 슈코프(Vladimir Shukhov)의 사진이다. 개인적으로 키스 해링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첫 번째로 구입한 대형 작품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Yann Arthus-Bertrand)의 말 사진이다. 스칸디나비아 왕실 마구간에서 촬영된 사진인 데, FIAC에서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무언가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그의 사진은 현재 나의 집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데, 매일 봐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이외에도 장-밥티스트 몬 디노(Jean-Baptiste Mondino),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 앙드레 케르테츠 (Andre Kertesz)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거실에 디스플레이된 스칸디나비아 왕실 마구간에서 촬영된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사진
흑백사진, 여백의 미학
흑백 프린트는 내 컬렉션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흑백사진에는 무엇인가를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 평소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인 구성에 관심이 많다. 그런 구성미가 느껴지는 사진들을 보면 마치 추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를 통해 잠시나마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다는 것도 내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가장 좋아하는 현대 사진가로는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를 들 수 있다. 완벽한 구성을 통해 순수한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마사오 야마모토(Masao Yamamoto)의 사진 작품도 몇 개 갖고 있다. 하나는 올빼미 사진이고, 하나는 추상작품이다. 두 사진 모두 사이즈는 작지만 강렬한 느낌을 준다. 남편인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페트라 세들라첵(Petra Sedlaczek)의 작업도 좋아하고, 또한 장-밥티스트 몬디노가 촬영한 비요크(Bjork)의 데뷔 앨범 커버 사진도 소중하게 여긴다. 일곱 개 에디션 중 하나가 현재 거실에 놓여 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했던 사진이라 구매를 결정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미카엘 지녜스(Michel Ginies)가 촬영한 키스 해링 초상 사진도 내겐 더없이 소중하다.
장-밥티스트 몬디노가 촬영한 비요크의 데뷔 앨범 커버 사진
모리야마 다이도의 야생 개
최근 들어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당연히 흑백으로 촬영된 사진에 더 끌린다.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과 모리야마 다이도 (Moriyama Daido)이 그 예다. 특히, 거실에 걸려 있는 모리야마 다이도의 ‘야생 개(Stray Dog)’ 시리즈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갤러리투어는 나의 일상
어딜 가든 그 도시에 있는 갤러리들을 방문하는 것이 취미다. 파리포토(Paris Photo)는 매년 방문한다.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최신 작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 안에서 제일 좋아하는 갤러리는 폴카 갤러리(Polka Galerie)와 카메라 옵스큐라 갤러리(Galerie Camera Obscura)다. 현재 작품 컬렉팅을 위해 상당히 많은 수입을 투자하고 있지만, 늘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컬렉팅 그것은 설렘
그동안 구매한 사진들에는 저마다 스토리가 있다. 지금도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구매할 당시의 상황이 기억난다. 작품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순간, 작품을 소유하지 못하면 하루도 더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조바심 등. 내 주위의 열정적인 컬렉터들은 모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절대 투자가치만으로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진과 마주했을 때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진다면, 나를 채워준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작품 구매를 결정한다. 또한, 집 안에서 함께 호흡해야 하기 때문에 나의 감정, 생활 패턴 등과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작지만 강력한 사진의 힘
좋아하는 작품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 자체가 끝없는 기쁨이다. 컬렉션의 규모가 작든 크든 상관없다.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자 위로라고 생각한다. 가급적 어릴 때부터 컬렉팅을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인생과 컬렉션이 함께 공유되며 성장한다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대 없이는 못살아
15년 전쯤 데이비드 라샤펠의 사진 한 장을 우연찮게 봤는데, 완벽한 세팅에 화려한 색감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섹시했다. 보자마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품은 성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이었다. 하지만 너무 고가였던 탓에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한동안 두통에 시달렸을까. 작품을 사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그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니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열렬히 원했던 열병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본능을 믿어라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만 사고, 자신의 본능을 믿어라! 최종 목표는 무엇을 구매하든 작품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다. 아마 끝이 없는 길이겠지만.
현재 눈여겨보는 작가
스테판 고트로노(Stephane Gautronneau)는 진정한 모험가이자 훌륭한 눈을 갖고 있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가 전시회를 열면 무조건 그의 작품을 살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진가 행키 코엔 초로(Hengki Koentjoro)도 눈여겨보고 있다. 마이클 케나와 비슷한 느낌의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다
인터뷰_ 전은경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전종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