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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사진에 영원히 잠들다

월간 사진 | 2017-05-02

 

 

얼마 전, 중국 사진가 렌항이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의 마지막 전시 소식과 함께 우리에게 는 덜 알려진, 못다 핀 꽃이 안타까운 사진가들의 작업을 만나보자. R.I.P 


Ren Hang © Fotografiska, Knut Koivisto

렌항 1987-2017
지난 2월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한 중국 사진가 렌항. 전 세계 모든 젊은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준 사진가로 평가받는다. 마오쩌둥 이후의 젊은 세대들 초상사진으로 성(性)을 이야기 한다.

Ren Hang © Fotografiska, Knut Koivisto 

렌항(1987-2017). 지난 2월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한 중국 사진가 렌항. 전 세계 모든 젊은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준 사진가로 평가받는다. 마오쩌둥 이후의 젊은 세대들 초상사진으로 성(性)을 이야기 한다.


렌항, 별이 지다

지난 2월, 전 세계 모든 젊은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준 사진가로 평가받는 렌항(Ren Hang)이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20대 후반인 그는 인생 대부분을 우울한 감정에 휘둘려 살았다고 한다. 때로는 우울의 감정이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원동력이 된다지만, 아무래도 그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무거운 짐을 견디기가 버거웠던 것 같다.

렌항은 자국인 중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사진가였다. 마오쩌둥 이후의 젊은 세대들을 촬영한 초상사진이지만, 사진 수위가 꽤나 높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노골적으로 성(性)을 이야기하는 그의 사진을 달가워할 리가 없었을 터. 실제로 중국에서 작업을 할 때는 늘 검열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의 사진에 열광했다. 동양적 요소가 가미된, 벗은 몸을 기괴하고 기막히게 묘사한 그의 사진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최근엔 유명 패션 브랜드의 화보 작업까지 도맡아 할 정도였다.

Ren Hang © Fotografiska, Knut Koivisto

Ren Hang © Fotografiska, Knut Koivisto


관능적인 렌항 사진은 우리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마치, ‘계속 사진만 보지 말고 우리 곁으로 와서 함께 놀자’고 유혹하는 듯하다. 그에겐 ‘퀴어 사진가’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사진 전반에 흐르고 있는 짙은 동성애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는 그런 코드를 갖고 작업하진 않았다. 친구들과 놀며 소위 ‘필’이 꽂힐 때마다 셔터를 누른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결과물이다. 잠시라도 사진과 떨어져 있으면 인생이 지루했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 없이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촬영한 경우는 드물었으며, 모델의 포즈와 소품 역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현재 스웨덴 스톡홀름 포토그라피스카(Fotografiska) 뮤지엄에선 렌항의 전시 〈Human Love〉(~4.2)가 진행 중이다. 아마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 전시는 그가 살아있을 때 기획된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될 것이다. 당분간 렌항과 관련된 모든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업을 볼 수 없겠지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 속 주인공들의 야릇하면서도 신비스런 몸짓은 지금 이 사진들 속에 영원히 박제될 것이다.


Dream, 서울, 1991

Dream, 서울, 1991

Dream, 서울, 1991

박건희 1967-1995
과로로 인한 심정지로 생을 마감한 사진가 박건희. 그의 사진은 마치 자신의 음울한 기운을 피 사체에 투영시킨 듯한 느낌이다. 박건희는 사진에 대해 “기록성을 우선으로 할 수도 있고, 극명한 사실 묘사를 주로 삼을 수도 있다. 그것들 서로의 가치를 따진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논하는 것처럼 복잡 미묘할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내가 하는 또 다른 작업은 사진을 통해 내 자신을 비춰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Dream, 서울, 1991

 

박건희(1967-1995). 과로로 인한 심정지로 생을 마감한 사진가 박건희. 그의 사진은 마치 자신의 음울한 기운을 피 사체에 투영시킨 듯한 느낌이다. 박건희는 사진에 대해 “기록성을 우선으로 할 수도 있고, 극명한 사실 묘사를 주로 삼을 수도 있다. 그것들 서로의 가치를 따진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논하는 것처럼 복잡 미묘할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내가 하는 또 다른 작업은 사진을 통해 내 자신을 비춰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못다 핀 꽃 한 송이

신(神) 역시 뛰어난 감각을 가진 사진가들의 재능을 질투하는 것일까. 렌항 외에도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등장했지만,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사진가들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사진가는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다. 동성애, 에이즈 같은 금기된 주제를 대담하면서 우아하게 다뤄 ‘퇴폐적 낭만주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사진가다. 작업 주제만큼이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까닭일까. 그는 마흔세 살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반면, 프란체스카 우드만 (Francesca Woodman)은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셀프 사진으로 표현한 사진가다. 메이플소프보다 잔잔하면서 회화적 색채가 짙은 그녀의 누드 사진은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자신을 옭아매는 작업에 영향을 받았는지 그녀는 스물세 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간의 내면의 심연을 다루는 작가들은 왜 대부분 단명하는 것일까.

자아와 타자를 이야기했던 일본 사진가 시게오 고초(Shigeo Gocho)도 서른여섯 살에 심부전증으로 요절했다. 또한, 제주도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데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김영갑은 루게릭병으로 마흔여덟에, 긴장감 넘치게 한강을 표현한 흑백 파노라마 사진으로 주목 받았던 오영철은 스물일곱에 숨을 거뒀다.


Transferts, Le Goût, 2004. Courtesy Succession Edouard Levé et galerie Loevenbruck, Paris

Transferts, Le Goût, 2004. Courtesy Succession Edouard Levé et galerie Loevenbruck, Paris

Transferts, La Blessure, 2004. Courtesy Succession Edouard Levé et galerie Loevenbruck, Paris

에두아르 르베 1965-2007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사진가 에두아르 르베는 〈자화상〉에서 “나는 쾌락보다는 현실과 더 자주 직면하지만 쾌락 원칙은 현실보다 더 내 삶을 인도한다. 예술가와 작가로서 나는 나도 모르게 미칠 수 있다.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때로 그 사실을 알려주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때로 내가 하는 것이 예술인지, 단지 예술 치료인지 궁금하다.”라는 말을 했다. 사진에서 심한 내적 갈등이 읽히는 대목이다.

Transferts, La Blessure, 2004. Courtesy Succession Edouard Levé et galerie Loevenbruck, Paris 

에두아르 르베(1965-2007).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사진가 에두아르 르베는 〈자화상〉에서 “나는 쾌락보다는 현실과 더 자주 직면하지만 쾌락 원칙은 현실보다 더 내 삶을 인도한다. 예술가와 작가로서 나는 나도 모르게 미칠 수 있다.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때로 그 사실을 알려주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때로 내가 하는 것이 예술인지, 단지 예술 치료인지 궁금하다.”라는 말을 했다. 사진에서 심한 내적 갈등이 읽히는 대목이다.



패션 분야에선 배우 하정우와 좋은 궁합을 보였던 사진가 보리가 뇌출혈로 나이 마흔에, 반항적인 유스 컬처를 폴라로이드로 거침없이 담아낸, 슈프림과의 콜라보로 유명한 대시 스노우(Dash Snow)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보도사진 분야에서는 케빈 카터(Kevin Carter)와 로버트 카파(Robert Capa)를 꼽을 수 있다. ‘독수리와 소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카터는 소녀 생사와 관련된 비판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고, 카파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던 중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

이외에도 요절한 사진가들 중에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도 제법 있다. 먼저, 에두아르 르베(Edouard Leve)는 프랑스 개념사진가다. ‘연출사진의 전통 안에서 명확한 허구적 요소를 지닌 사진 연작을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표정한 등장인물들 탓에 사진 속 텍스트가 잘 읽히질 않아 혼란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그는 작가로도 활동했는데, 마지막 작품 〈자살〉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기고 열흘 뒤 자살했다.


Fear, ca. 1938, Gelatin silver print, Courtesy of Taka Ishii Gallery

Fear, ca. 1938, Gelatin silver print, Courtesy of Taka Ishii Gallery

Circus Woman, 1940, Gelatin silver print Courtesy of Taka Ishii Gallery

나카지 야스이 1903-1942
1920년대부터 1940년 초까지 활동한 사진가다. 오늘날 사진가보다 더 폭넓은 수용력과 포용력을 보여준다. 당시 유행했던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회화주의사진(살롱사진, 픽토리얼리즘)과 포토몽타주를 이용한 초현실주의 사진을 만드는 데도 능숙했다. 여러 가지 예술 이론들을 조합하며 만든 그의 사진들은 모리야마 다이도 같은 현대 일본 사진가들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Circus Woman, 1940, Gelatin silver print Courtesy of Taka Ishii Gallery

 

나카지 야스이(1903-1942). 1920년대부터 1940년 초까지 활동한 사진가다. 오늘날 사진가보다 더 폭넓은 수용력과 포용력을 보여준다. 당시 유행했던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회화주의사진(살롱사진, 픽토리얼리즘)과 포토몽타주를 이용한 초현실주의 사진을 만드는 데도 능숙했다. 여러 가지 예술 이론들을 조합하며 만든 그의 사진들은 모리야마 다이도 같은 현대 일본 사진가들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오사카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아마추어 사진가였지만, 전후 세대 일본 최고의 사진가로 손꼽히는 나카지 야스이(Nakaji Yasui)도 있다. 다양한 사진적 실험으로 탄생된 그의 작품들은 모리야마 다이도 같은 현대 일본 사진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촉망받던 사진가 박건희도 있다. 그의 사진은 비극적인 장면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진 않지만, 왠지 모를 죽음의 향기가 잔잔히 풍긴다. 일찍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사진에 반영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과로로 인한 심정지로 생을 마감했다. 박건희는 우리나라 사진사의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을 보라. 지금 활발히 활동 중인 사진가들의 톤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전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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