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미술사가 · 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 2017-05-24
오늘날 눈이 나쁜 사람은 안경을 쓰거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하여 시력을 교정을 한다. 최근에는 의술의 발달로 라식과 라섹 수술이 일반화되어 거추장스럽게 안경을 쓰거나 콘택트렌즈의 귀찮은 위생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허나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이 시력교정용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몰아낼지도 모른다는 예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안경은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자 자신의 개성과 신조를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부활했다. 현대인들은 굳이 시력이 나쁘지 않아도 안경을 패션의 일부로, 콘택트렌즈를 미용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 홀론 디자인 박물관에서 진행된 ‘오버뷰(Overview)’ 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품임과 동시에 오늘날 현대인들 누구나 자랑하고 싶어하는 디자인 용품으로서 안경의 디자인사를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스라엘-프랑스 출신의 콜렉터 겸 안계측사인 클로드 사뮈엘(Claude Samuel)이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골동품 안경과 현재 활동 중인 이스라엘 출신의 디자이너 40명이 제안하는 안경 디자인 400여 점을 선보였다. 다양한 모양, 소재, 크기와 색상으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사용되어 왔던 안경 역사의 출발점은 17세기에서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안경
인간의 시력과 안경에 관한 의학사는 그 보다 오래 전인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인 플리니우스가 쓴 <렌즈론(lens)>에 따르면, 당대 사람들은 일찍이 물이 담긴 유리잔을 통해서 들여다보면 모든 사물이 커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물로 빛을 굴절시켜 모은 햇빛의 초점으로 상처의 염증을 치료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 같은 의학적 목적으로 당시 그리스의 약방에서 아주 원시적인 형태와 기능의 망원경을 판매했다는 흔적을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책 <구름(the Clouds)>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로마 황제 네로는 글래디에이터 전투장 관람 때마다 녹푸른 에메랄드로 제작된 천연 렌즈를 눈에 대고 구경했다고 전해지는데, 혹자는 에메랄드를 오목하게 깎은 것으로 봐서 네로의 심한 근시안 교정용이었다 하고 또 어떤 학자는 주변 탐색과 호신용 거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안경이라 부를 만한 세련된 도구는 13세기에 이르러서 만들어졌다. 12세기 영국에서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이 망원경의 원리에 대해서 썼지만 실제로 원시 교정용 망원렌즈가 달린 안경이 발명된 곳은 이탈리아였다. 약 1268년과 1289년 사이,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크리스탈 유리를 볼록 렌즈로 깎아 안경테에 장착한 돋보기 안경을 최초로 디자인하여 얼굴에 착용하고 다녔는데, 굴곡과 모양이 불규칙한 자연석 대신에 굴곡이 일정하고 무게까지 가벼운 유리 소재를 안경 렌즈로 사용했다는 것이 혁신이었다. 15세기에는 오목 렌즈가 개발되어 근시안을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유리 렌즈 주변으로 빛이 여러 각도로 굴절되어 무지개빛이 반사된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이 현상도 18세기 영국 발명가 체스터 홀(Chester Moor Hall)이 발명한 아크로매트(Achromat) 렌즈로 해결됐다. 이때부터 안경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귀족층이 안경 착용을 꺼려했던 이유
인간의 시력은 나이가 든다고 반드시 퇴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처해진 주변환경과 업무상 질환 혹은 직업병의 증상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먼 거리를 늘 자세히 관찰해야 하는 목동이나 어부는 본래 먼 거리를 잘 볼 줄도 알아야 하지만 직업상의 필요 때문에 자연히 원시안 증상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시간 앉은 자리에서 많은 문서를 읽고 쓰거나 세밀한 작업을 하는 수도승이나 목수는 근시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독교 중세시대까지 승려나 전문 사무직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식자층의 수가 매우 적었다. 하지만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종이 인쇄물이 증가하면서 식자층 또한 많아졌다.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공공 교육제도가 시행되면서 대중의 문자 가독율도 증가했고, 눈이 나빠지는 인구도 덩달아 늘어났다.
19세기까지 서구에서는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안경을 쓴 사람이란 글을 대하는 식자층이라는 사회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귀족층들은 안경을 쓰는 것을 꺼려했다. 문자를 읽고 쓰는 일은 전문 비서나 집사가 하는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안경을 쓴다는 것은 시력의 나쁨 즉, 신체적 결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위층 숙녀들 역시 안경은 얼굴을 흐트러뜨린다고 여겨 안경 착용을 꺼렸으며, 오로지 극장과 스포츠 관람을 할 경우에만 망원경 대신 수공 디자인된 렌즈를 액세서리처럼 눈에 대었다 떼었다 하며 사용했다. 그 덕분에 마치 스파이웨어를 연상시키듯 만년필, 목걸이, 로니에트 안경테(손에 쥐는 테가 달린 안경), 단안경테(한쪽 눈에만 대고 보는, 렌즈가 하나뿐인 안경) 등 속에 교묘하게 숨긴 장신구형 안경 디자인이 크게 유행했다.
시력 교정 도구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인의 전통과 사고방식을 전격적으로 뒤바꾼 20세기가 되자 안경의 지위도 완전히 달라졌다. 안경은 더 이상 신체상 결함의 흔적이 아니라 개인의 특출난 직업적 전문성, 정치적 신념이나 사상, 패션 선언 같은 개인성의 차별화 도구이자 매체로 활용된다.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특유의 투박한 장마릴(Jean Maryll) 안경을 당당하게 쓰고 다니며 안경을 지성인 계층의 특권으로 재정의했고, 존 레논의 가늘고 동그란 안경테는 1970년대 히피문화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얼굴은 검정 선글라스를 빼놓고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 인물과 안경이 단일적 아이덴티티가 되어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경우다.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를 비롯한 시각 교정용 렌즈가 발명된 이래 안경의 역사는 사실상 안경테의 변천사나 다름없었다. 렌즈를 감싸주는 안경은 누가 사용하는가? 안경을 숨길 것인가 착용할 것인가?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이 지닌 디자인을 통하여 어떤 의도와 신념을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가? 안경은 어떤 모양과 기능으로 변화하며 보다 저렴해지고 대중화되었는가? 이제 안경은 디자인, 소재, 제조법의 발달로 전에 없이 착용이 편해져 우리 얼굴의 일부가 되었다. 나아가 스마트폰, 시계와 더불어 웨어러블 테크(wearable tech)의 하나가 된 안경은 최근 또 다른 디자인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안경이 인간의 신체와 지닌 밀접한 물리적 관계는 물론, 인간의 지각 판단의 90%에 이르는 시각을 좌지우지하는 감각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첨단 과학기술은 더 이상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시력조정용 의학용품이나 패션 액세서리만으로 보지 않는다. 아이웨어(eyewear)는 인간 신체의 일부로 밀착된 인공 기관 혹은 보철물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현재 테크 업계에서 경쟁적으로 연구개발이 한창인 구글 글래스, 스냅 스펙터클(Spectacle) 등은 우리가 외부 세상을 잘 내다볼 수 있도록 시력을 교정시켜주는 기기가 아니라, 우리의 눈에 보이는 외부의 현실세계를 우리의 시야로부터 차단시키고 그 대신 색다른 가상세계로 바꾸어 보여주는 안경 개념 자체의 전격적인 대전환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 안경부터 19세기 착용을 꺼려했던 안경, 20세기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는 안경까지, 안경 디자인의 과거를 알아보았다. 현대의 안경 디자이너들은 어떤 모양과 개념을 개발하여 테크 제품 디자인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대해서는 ‘안경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 2편에서 다루기로 하자.
글_ 박진아 (미술사가 · 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