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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는 초현실의 도트

2013-09-12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를 이야기 할 때 대부분의 관객이나 비평가들은 그녀의 나이를 논한다. 실제 그녀가 80세를 훌쩍 넘긴데다 지난 60여년 간 활동해왔지만, 그 영역의 범주와 결과물은 놀라울 만치 올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을 넘나드는 드라마틱한 표현력과 모노크롬의 강렬함, 반복되는 패턴은 그녀가 살고 있는 세계이자, 무한대를 향해 달려가는 쿠사마 스타일의 정점이다.

에디터 l 김미주 (mjkim@jungle.co.kr)
자료제공 l 대구미술관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한계를 넘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비범하다고 표현한다. 이 비범함이 무한대로 증식해 누구와도 교감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로 완성될 때 우리는 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쿠사마 야요이는 대중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스타 작가다. 그의 이런 베이스는 비단, 예술가의 삶이 꽤 길었다거나, 어려서부터 앓았던 정신적 강박증상에서 비롯된 병리성 질환효과는 아닐 것이다. 단순히 이런 작가의 배경차원을 넘어 그녀의 작업이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마도 현실을 앞서가는 그녀의 무한한 에너지와 탁월한 감각 때문일지 모른다. 그녀의 작품 속 모든 크리에이션 간에는 모세혈관같이 미세한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아마도 그 보이지 않은 끈끈함이 작품을 통해 드러남과 동시에 보이는 이로 하여금 큰 울림을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작품은 장자의 ‘호접지몽’의 그것처럼 나와 나의 존재에 대한 끊임 없는 확장으로 현실세계에 있으면서도 초현실을 경험하는 이탈적 상황을 맞닥뜨리게 만듦과 동시에, 그것의 경계와 구분을 두는 것에 커다란 의미가 없음을 느끼게 한다. 그녀는 실제로 밀려오는 공포에 대한 병적 증상을 자가 진단 하에 그림으로 치유했다. 공포의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공포(또는 현실)에게 도망가지도 싸우지도 않은 채 그녀는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가가 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고 곤혹스런 병, 신경불안증, 강박신경증과 편집증이 원인이었다. 똑같은 영상이 밀려오는 공포, 어둠 속에 벽면을 타고 뻗으며 증식하는 하얀 좁쌀 같은 것이 보이면 정신이 둥둥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그것을 스케치북에 늘 그렸다. 똑같이 반복하는 평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정신을 몽땅 뒤덮어 버렸고 나는 스케치북에 옮겨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것을 내 몸에 붙여 보았다. 오늘까지 나는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었다”

쿠사마의 정신적 장애와 트라우마는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쿠사마의 환각은 현재까지도 어떠한 시각적인 영감으로 작업의 토대가 되었으며,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이 자동기술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녀는 환영에서 본 모든 것을 뒤덮고 있는 그물망과 도트무늬, 식물 형상 등을 평면 위에 펼쳐놓았고, 강박증에 대한 반복적인 패턴은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오브제 작업으로 전개되어 자연스럽게 설치미술, 환경미술을 넘어 거리의 해프닝과 퍼포먼스로,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까지 확장됐다.

대구미술관 기획으로 국내에선 처음으로 열리는 그녀의 개인전 < A Dream I Dreamed>에서는 조각, 설치, 회화,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118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작업된 <점에 대한 강박 dot obsession> , <튤립을 향한 내 모든 사랑, 영원히 기도하리라 with all my love for the tulips, i pray forever> 는 작가의 오랜 시각 언어인 도트 무늬로 뒤덮인 대형 설치 작품이다. 평면에서 반복되는 도트가 입체적 회화로 전이되어 무한 반복과 변주로 끝없는 세계를 만들어내며, 전시장에 들어서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점에 대한 강박> 의 거대한 풍선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쿠사마의 대중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고 경쾌한 장식성을 넘어서,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보여준다. 바닥에 놓인 풍선 안으로 들어가면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 도트가 끝없이 반복되는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고, 공중에 매달린 풍선은 마치 우주의 행성이 자전하는 듯 공기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움직인다.

<튤립을 향한 내 모든 사랑, 영원히 기도하리라> 는 형형색색의 도트가 튤립과 공간 전체를 뒤덮는다. 관람자를 압도하는 튤립이 공간을 점령하고, 관람자들은 사방이 흰색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그 규모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된다. 공간 내 모든 사물의 표면을 뒤덮는 화려한 색상의 도트는 오브제와 공간을 하나의 작품 요소로 끌어들여 공간과 뒤섞임으로써 현기증이 이는 듯한 혼돈을 일으킨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무한한 우주의 가능성, 끝을 알 수 없는 확장된 공간감은 고립된 감정과 동시에 오롯이 나를 직면하도록 이끈다. 작품 속에서 발견한 ‘나’, 작가가 표현한 ‘나’, 이 모든 것은 쿠사마의 무한한 반복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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