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평론가(jina@jinapark.org) | 2015-06-29
매년 두 차례 열리는 파리국제에어쇼(Paris International Air Show)의 제51회 행사가 6월 15일부터 21일까지 세계 항공계의 메카 르부르제(Le Bourget) 공항에서 열렸다. 일주일 동안 열린 이 세계 최대 항공박람회를 다녀간 항공업계 인사들과 일반방문객 수는 삼십오만 명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 항공우주 산업의 대중화 추세가 역력해 보였다.
글 ㅣ 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평론가(jina@jinapark.org)
정체된 박물관과 미술관 시대는 그만, 이제는 박람회 시대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 아프리카 북서쪽 여러 국가에서 번진 에볼라 바이러스에 이어 올 5월 말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 바이러스 같은 신종 감염 질병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항공업계는 대중관광산업의 중추적인 글로벌 산업의 하나로 깊숙이 뿌리박았음을 입증했다.
항공 테크놀로지는 어렵지 않다! - 새로운 대중 엔터테인먼트로 떠오른 항공쇼
이번 행사에서 대중 관람객들의 가장 큰 관심을 받은 비행기종은 역시 국방 방위 및 수비에 쓰일 전투기종들이었다. 이 기종은 예나 지금이나 남자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모형장난감들의 영감이 될 뿐만 아니라 최첨단 실험적 기술이 응축된 총집결체가 국방용 전투기이기 때문이다.
또 머지않아 아마존을 비롯한 온라인 소매업계가 드론(drone)을 이용한 물품 배송을 본격 상업화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유독 올해 파리 에어쇼를 방문한 업계 인사들은 미래 무인 항공기 디자인과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은 지속적인 대중 항공소비자 확보와 이윤추구를 향한 새로운 여러 통로 모색이 한창이었다.
무엇보다 올해 행사는 대중 관객들에게 혁신적이고 놀라운 미래 항공서비스를 미리 맛보여준 현란하고 경이로운 볼거리와 엔터테인먼트를 안겨준 축제와도 같았다. 유가가 많이 떨어진 현재, 21세기 대중 엔터테인먼트로서 항공쇼에 담긴 잠재력을 일깨워준 행사라고 평가할 만하다.
세계 항공사들 민간항공기 구매 트렌드에서 본 항공관광업계 판도
‘누가 더 비행기를 많이 팔고 갈 것인가?’
행사의 본격적인 막이 오르기 전부터 유럽과 미국을 대표하는 에어버스사와 미국의 보잉사 두 항공사는 각자가 새로 내놓은 비행기 영업 경쟁을 펼쳤다. 그렇다면 올해의 영업왕은 누굴까? 승리의 영광은 에어버스에 돌아갔는데, 총 421대 주문으로 우리 돈 약 62조7천억 원(미화 5백7십억 달러)에 수익을 올렸다. 에어버스사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A320을 비롯해 넓은 동체형 첨단형 A350 XWB, 중거리 지역형 A330이 여전히 인기를 끌었다.
작년 카타르항공, 에미레이트항공, 대한항공 등에서 대거 구입한 세계최대 크기의 더블데커 A380기는 한 대도 팔리지 않아서 대다수 항공사는 여전히 이 수퍼점보 비행기에 선뜻 투자하길 꺼렸다. 그러나 향후 20~30년 대중 항공여행자수는 계속 증가할 거라는 전망과 함께 여러 대의 비행기편을 운행하기 보다 한 대에 가능한 한 많은 승객을 운송해 이윤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수년 내에 A380기가 중장거리 여객기의 대세가 될 거라고 에어버스 측은 느긋한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각 항공사는 에어버스 A380 대신 어떤 항공기를 주문했을까? 민간항공사 업계에서 A380 같은 초대형 기종이 화끈한 화젯거리로 회자된 것은 사실이나, 실제 매출의 75%를 차지한 비행기종은 중앙통로가 하나 있는 단일통로식 중소형 모델. 대한항공사도 787드림라이너기를 올해 10대 구입했다. 중앙단일통로식 중소형의 장점은 동체가 작고 가벼운 합성소재를 사용해 기체가 가볍고 연료 효율성이 높은 것이다. 아무리 저유가 시대라 할지라도 마진율이 낮은 항공업계에서 연료 효율성은 결정적이다.
올해 약 55조2천여억원(미화 5백여억 달러) 매출을 올린 보잉사가 대항마로 내세운 보잉사는 총 331대 주문량 중에서 장거리 비행용중형 787 드림라이너(787 Dreamliner)와 737맥스(737Max), 넓은 동체형 777 제트여객기, 좁은 동체형 737기를 다수 팔았다. 반면, 캐나다에 본사를 둔 봄바르디에(Bombardier)사는 올해 C 시리즈 단거리 소형 항공기 두 대 SC100과 CS300을 최초로 공개했으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수주면에서는 부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객 입장에서 보면, 늘 그렇듯 봄바르디에는 중간에 낀 좌석 없이 창가석과 통로석 두 좌석만을 제공해서 한결 쾌적하고 안락한 탑승경험을 안겨준다.
근시일 내 실현될 민간 여객기 기내 디자인 트렌드
① 올 4월 독일 함부르크 시에서 열린 항공기 인테리어 엑스포(Aircraft Interiors Expo 이상 AIX)에서도 큰 쟁점이 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항공사들’은 한정된 기내 공간에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일반석을 배치하는 데 관심이 높았다. 그렇다 보니 더 얇고 폭이 좁은 좌석 디자인과 다리 뻗을 공간을 빈틈없이 바듯하게 재정렬하는 혁신적인 공간 디자인 아이디어에 투자 비율을 높이고 있다. 최근 새로 나온 항공기 인테리어는 화장실 공간과 승무원 취사공간 실평수는 줄이되 다용도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융통성을 높이거나 어깨 이상 공간을 늘려 심리적 공간을 넉넉히 느껴지도록 재배치하는 식이다.
② 어떻게 하면 그처럼 바듯한 일반석 승객들의 탑승공간을 가능한 한 편안하고 지루하지 않게 만들 것인가? 전체 비행기 탑승자수 94%가 일반석 이용자라는 사실과 장차 저가 항공사의 수가 더 증가할 거라는 미래 전망을 감안하면, 장거리편 비행기일수록 기내 승객의 탑승 경험이 항공사의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승객들의 오감을 긍정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 조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항공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보잉사의 7XX 시리즈 항공기들은 휴대 수하물 저장 공간을 더 넓히고 디지털 벽면과 천장에 LED를 투사, 무드조정으로 승객 기분과 시차 적응을 돕는다. 에어버스는 기내 환기와 에어컨 기술을 높여 자칫 전염병 압력저장고가 되기 쉬운 기내 공기를 보다 청결하게 유지한다.
③ 2015년 함부르크 AIX 행사에서도 대거 소개되었듯이, 미래 민간항공기들은 승객들을 위한 오락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종 개인용 전자기기와 모바일 기기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좌석마다 부착되어 있는 개인용 디스플레이 단말기 외에도 개별 탑승객들이 가져온 스마트기기, 태블릿, 라디오, 시계, 신용카드 등 각종 지불수단 등과 바로 연동해 일과 오락을 자유자재로 즐길 날이 머지않았다.
④ 가까운 미래의 여객기 조종실은 비행기 맨 앞 코끝 머리에 위치하던 기존과 달리 비행기 맨 뒤편에 배치하는 디자인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미 시중 운용 중인 대중 여객기들은 장거리 비행 시 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 포함, 조종사 3명, 중단 거리 비행 시 조종사 2명이 타고 운항을 총지휘하지만 사실상 항공센터에서 주도하고 이륙-비행-착륙까지 컴퓨터가 책임져주는 자동비행(autopilot)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우세한 기술력이 뒷바침된다면, 조만간 무인조종 여객기 등장도 가능할 전망이다.
⑤ 3D 프린팅 기술로 항공기 부품을 100% 생산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항공기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예로 올 12월 에어버스사가 카타르항공사에 납품하기로 한 A350 XWB 기종에 내장될 부품들 약 100여종은 에어버스사와 이스라엘 업체 스트라타시스(Stratasys)가 합작 생산한 첨단 부품이다. 최초 민간항공기에 응용될 3D 부품들은 안전할까? 물론이다. 이미 군사용 항공기에 활용한 기술을 ULTEM 9085 수지로 만들어 가벼우면서도 안전하고 연료 효율성까지 높였다.
시대마다 다양하게 발생하는 독특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다 보면 그에 따른 창의력과 혁신이 탄생하게 된다. 비즈니스 전문가들에 따르면 향후 50년은 항공여행의 대중화와 더불어 교통 디자이너와 항공우주 엔지니어의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사이버안전 전문가, 데이터과학자, 디지털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도 더 많이 필요할 전망이다. 이번 파리 국제 에어쇼 박람회는 업체와 바이어, 제품과 서비스 아이디어, 전시자와 관람자, 현재의 문제점과 미래의 혁신적 해결책이 만나 서로 충돌하고 조화를 이룬 하이테크 장터이자 역동적인 전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