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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과연 아트 페어는 ‘모두의 리그’가 될 수 있을까

나태양(tyna@jungle.co.kr) | 2015-10-27


‘그림의 떡’이라 하던가.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는 그림 속 떡이 탐이 났겠지만, 현대를 사는 교양인들의 테이스트(taste)란 그렇지가 않아서 떡보다는 그림에 군침을 삼킨다. 전체 인구에서 ‘예술 애호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가는데 예술이라는 요물은 어째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진다. 나도 우리 집 거실에 인상주의 화풍 모작 대신 마크 로스코의 숭고함을 걸어놓고 싶지만, 가능성은 ‘글쎄’. 슈퍼 리치가 즐기는 고상한 취미생활의 ‘끝판왕’이자 검은돈이 굴러다니는 재테크 수단, 미술이라는 독점 시장에는 이미 생산계급에 나눠줄 파이가 없는 탓이다. 이렇게 예술이 클래스나 우월감과 연결되다 보니, 해외에서는 자칭 ‘심미가’의 허세적 애티튜드를 빈정거리기 위해 ‘예술 속물(Art Snob)’이라는 호칭까지 만들어냈다. ‘당신이 예술 속물이라는 몇 가지 신호’ 류의 글들은 실없이 우습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자본주의 사회의 예술 소비란 속물근성과 야합했다는 오명으로 얼룩진 지 오래다.

에디터 | 나태양(tyna@jungle.co.kr)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현대에 이르러 ‘하이 컬처(High Culture)’와 ‘로우 컬처(Low Culture)’의 경계가 사라질 거라는 주장은 무구한 낙관론이 됐다. 결벽증자의 방처럼 티끌 하나 없는 화이트 큐브의 호위를 받아온 예술은 여전히 고급문화의 울타리 안에 있다. 파인 아트의 엘리트적 태도에 반발해 자발적 하강을 시도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파격성으로 인해 ‘난해함’이라는 또 하나의 장벽을 건설하고 말았다. 아직 뭇 사람들에게 ‘잘 그린 그림’이란 전원생활을 그린 풍경화처럼 보기에 쾌적하고 박진(迫眞)하며 장인의 터치가 느껴지는 무언가인 탓. 이 보수적 기준에 한참이나 함량 미달인 현대미술은 언젠가부터 ‘사기꾼’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 시작한다. 이 같은 논조에 질리지도 않고 소환되는 단골손님이 이우환의 〈조응〉이다. 빈 캔버스에 붓 자국 하나 찍어 놓고 작품이라고 17억 원을 호가하다니, 이런 게 미술이라면 “나도 그리겠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도 하겠다’는 말만큼 무의미한 작품 평가도 없다. 특히 현대 미술에 관해서라면, 물감이라는 피지컬한 층위는 물화 되지 않은 관념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놓인 맥락과 그것이 품은 철학을 떼어놓고 작품을 논하는 것은 옷가지만 늘어놓고 인격을 평가하는 격이다. 결국, 현대미술의 가치를 알아보려면 미술 이론을 공부하거나 공신력 있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이 골 깨지는 난상토론에 끼어들기엔 먹고 살기 바쁜 데다 전문 감정사를 고용할 여유는 더더욱 없다. 이렇게 아트 컬렉팅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철저히 구조적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다. 상류층의 재력과 교양을 과시할 요량으로 오고 가는 천문학적 액수에는 넘지 못할 위화감의 강이 흐른다.

나도 예술 참 좋아하는데, 가질 방법이 없네

한 마디로 ‘부담스럽다’. 찰스 사치 같은 스타 컬렉터가 되기는커녕 좋아하는 작품 한 점 사는 것도 분에 넘치는 듯하다. 옥션 하우스건 아트 딜러를 통해서건, 예술 작품을 백화점처럼 진열해 놓고 사라고 외치는 아트 페어에 가도 마찬가지다. ‘아트 바젤(Art Basel)’이니 ‘프리즈(Frieze Art Fair)’니 ‘아모리 쇼(Armory Show)’니,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인데 내가 먹을 음식은 없다. 물론 이 상대적 박탈감을 새로운 흐름으로 옮긴 치들도 있다. ‘어포더블 아트 페어(Affordable Art Fair, 이하 AAF)’의 설립자 윌 램지(Will Ramsey)와 ‘서지 아트(SURGE art)’를 기획한 톰 패틴슨(Tom Pattinson)’이 그렇다.

윌 램지는 말 그대로 ‘감당할 수 있는’ 아트 페어를 제안하고자 했다. 그래서 AAF의 작품 가격은 4만 파운드로 상한된다. 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에 가격을 명시하고 작품 정보를 제공하는 등 ‘뉴비(Newbie)’에게도 제법 친근한 환경을 조성했다. 초창기만 해도 아트 신(scene)에서 ‘그런 콘셉트의 페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회의 섞인 조롱을 받았던 AAF는 120만 파운드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2011년 기준), 런던에서만 매년 2만 5,000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이고, 이제는 전 세계 열네 지역에서 개최되는 메이저급 아트 페어로 성장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권의 세 번째 진출 시장으로 낙점된 한국에서도 지난 9월 ‘AAF 서울’이 성황리에 개최된 바 있다.

‘서지 아트’는 전망 있는 신진작가의 작품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2006년 베이징에서 출발한 작품 매매 플랫폼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작가부터 독립 아티스트, 지역 소규모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동명의 아트 페어 ‘서지 아트 페어’는 통상적으로 페어 주최 측에 할당되는 25%의 수수료를 제거해 가격 거품을 덜고, 단돈 몇백 위안에서 최대 3만 위안(한화 약 550만 원)에 이르는 가격대에 작품을 판매한다. 아트 페어 시즌에 맞춰 현장에 가기 어렵다면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작품 카탈로그와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는 ‘서지 아트’ 공식 홈페이지는 실제로 일 년 내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아트 쇼핑몰’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고무적인 현상들이지만, 그래서 아트 페어는 정말 ‘어포더블’ 해 졌을까? 예술 작품 매매라 하면 베일 뒤에서 알 만한 사람끼리 치르는 비의(秘儀) 마냥 취급되던 분위기는 다소나마 옅어졌다. 그러나 몇백만, 몇천만 원의 가격대를 ‘어포더블’ 하다 말할 거라면, 전통적 파인 아트 시장에 형성된 가격대는 도대체 어느 수준인지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원대하고 순진한 대안적 아트 페어의 꿈

어쨌든, 엘리트주의의 첨단에 놓인 아트 페어도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는 지속해서 확산되어 왔다. 다만 뾰족한 수가 없을 뿐이다. 미술 시장의 구태에서 탈피하려는 나름의 시도들은 전체 판을 흔들기엔 소소했거나, 뭇매만 맞고 물러나는 ‘흑역사’를 쓰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아트 페어 ‘공허한 제국’(2015. 9. 4~9. 13)이 대표격. 기획전시와 아트 페어의 개념을 결합한 ‘공허한 제국’은 “상업화랑 및 컬렉터의 손이 미치지 않은 작가들의 자생적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동시에 “시대성을 함유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통해 아트 페어를 기획전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며 꽤 야심 차게 등장했다. 포부대로 신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대안적 아트 페어’로 자리매김했다면 참으로 훈훈했겠으나, ‘공허한 제국’은 좋지 않은 의미에서 주목받는 행사가 됐다.

일단 김기라, 변웅필, 홍순명 등 중견급 작가 선정은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 지원’이라는 행사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 정도 삐걱거림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시 오픈일이었던 9월 4일, 한국화랑협회에서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다. 관내 판매 행위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정의한 미술관의 기능이나 박물관 종사자의 임무에 위배된다는 입장이었다.

미술관 측에서는 일단 전시를 강행했는데, 불과 며칠 뒤 8일에는 민중화가 홍성담의 〈김기종의 칼질〉 철수 사건으로 구설에 오른다. 〈김기종의 칼질〉이 올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를 영웅적으로 묘사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놀랍게도 전시 도중 작품을 철거한 것이다. 미술관 측에서는 홍 작가가 작품을 자진 철수했다고 발표했으나, 정작 작가 본인은 미술관의 철수 결정조차 들은 바가 없다고 대치한다. 더욱이 홍 작가는 지난해 〈세월오월〉로 광주비엔날레 측과 마찰을 빚었던 터라 미술관은 표현의 자유를 탄압했다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었다.

홍역은 전시 종료 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23일,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이 한국화랑협회를 상대로 표명한 공식 사과 입장은 참여했던 작가들에게마저 치욕을 주는 처사라며 공분을 샀다. 더군다나 미술관이 “해당 행사에서 단 한 점의 그림도 판매되지 않았다”고 발표하면서 다시 한 번 행사의 처참한 성과에 대한 여론에 불을 지피는데, 황당하게도 해당 보도 이후 실제 구매자가 등장한다. 오갈 데 없이 민망한 처지가 된 서울시립미술관의 김 관장은 ‘공허한 제국’은 직거래 방식의 아트 페어였고, 미술관에서는 일절 판매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라고 설명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제목 그대로 ‘공허하게’ 막을 내린 ‘공허한 제국’의 행보는 미술 시장에서 작가의 위치가 어디인지 생각하게 한다. 아트 페어는 누구를 위해 차려진 밥상인가? ‘공허한 제국’의 사례로 미루어보건대, 컬렉터, 중개인, 작가의 삼각 구도에서 작가가 ‘갑’은 결코 아닌 듯하다. 실제로 판매를 경험해본 작가들은 구조의 단절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판매가 성사된 작가 본인조차 작품이 누구에게 팔려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은연중에 그런 질문 자체가 실례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배 아파 낳은 자식만큼이나 귀중한 작품이 어느 지천을 떠도는지 알 수가 없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니 자기애가 강한 작가라면 선뜻 작품 판매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법도 하다. 이에 화랑 전시나 아트 페어에 참여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작품 가격을 높게 책정해 판매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작가들도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때로는 미술계 내부에서조차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작가가 작품 판매의 길을 개척해보려는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자본에서 자유로워야 할 예술이 왜 시장 논리에 영합하려 하느냐’며 무욕의 미덕을 강요한다. 그러나 대다수 군소 신진작가들은 최저 생활비라도 보장받고 싶을 뿐이다. 쌀 살 돈으로 재료 사서 작업하기엔 인생 참 팍팍하다. 창작 활동이 경제적 생산 활동과 엄격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면, 예술가는 절대로 ‘풀 타임 잡’이 될 수 없다. 운 좋게 거물급 작가가 되든지, 투 잡을 뛰든지, 애초에 ‘금수저’로 태어났어야 한다. 혹은 정부가 하는 이런저런 예술 사업의 보조금 지원에 기대야 하는데, 계획된 ‘사업 방향’에 맞춰야 하니 작업을 해도 가시방석이고 한두해 살이 사업이 종료되면 지원도 끊긴다. 상황이 이러한데, 노동은 하되 돈 벌 생각은 말라면 앞으로 오십 년은 더 살아야 젊은이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청춘은 열정 기계가 아니다.

신생공간과 신진작가들의 기묘한 오일장

웬만큼 ‘신박’ 해서는 본전도 못 찾을 판국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씩씩하게 출사표를 던진다. 지난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일대에서는 현대미술 페어 ‘굿-즈’가 열렸다. ‘공간사일삼’, ‘괄호’, ‘교역소’, ‘구탁소’, ‘지금여기’, ‘커먼센터’ 등 현대미술계에서 독자적 흐름을 형성해 온 신생공간 15곳과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젊은 작가 및 기획자 5명은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아트 페어를 표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안적’이라느니, ‘문턱을 낮췄다’거나 ‘열려 있다’ 하는 수식어도 이제는 상투적인 미사여구가 돼버린 지 오래. 이들은 도대체 무엇이 새로워서, 왜 굳이 아트 페어라는 살벌한 전장에 뛰어들었을까? 14일 오전, ‘굿-즈’의 기획자들은 개막에 앞서 기획자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했다.

작가로서 살아가려면 돈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작가가 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작품 판매가 가장 이상적인 수단일 텐데, 신진작가에게는 상업 갤러리 진출도 쉽지가 않다. 이런 이유로 자체적인 판매 플랫폼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굿-즈’의 돈선필 대표가 최초에 그렸던 그림은 동료 작가 너덧 명 정도 모여서 여는 소규모 판매 행사 정도였다고 한다. 이 소박한 구상이 80명의 작가를 한 자리에 앉혀놓은 현대 미술 아트 페어로 거듭나는 데는 ‘교역소’ 김영수 작가의 행동력 덕이 컸다. 이들은 발품을 팔아 비슷한 열망을 가진 기획자들을 섭외하기 시작한다. 돈선필 대표의 롤 모델이 일본의 ‘원더 페스티벌’이었다면, ‘교역소’의 정시우 작가는 ‘E3’처럼 비물질적인 콘텐츠를 판매하는 행사를 꿈꾸고 있었다. 미술계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작가들을 위한 플랫폼을 고민해 온 ‘공간사일삼’의 김꽃(김윤희) 작가, 신생공간들의 에너지가 소진되기 전에 뭔가를 남기고 싶었던 권순우 작가도 뜻이 통했다. 화랑이나 갤러리 대신 SNS를 독립적인 판로로 개척해 온 노상호 작가의 경우 신생공간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모인 ‘굿-즈’ 기획자들은 작업을 판매해 본 경험이 없거나 적는 20~30대의 ‘진짜 신진작가’를 위주로 리스트업 했다. 신생공간과 신진작가가 모였으니 재정적 지원이 가능할 리가 만무했다. 적잖은 인원이 ‘갈증’을 유일한 동력으로 무일푼 봉사했다. 그러면서도 늘 서로에게 상기시켰던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우리끼리 공회전하지 말자’는 것. 강정석 작가는 “사실 요즘에는 미술 소비자가 미술 생산자 아닌가. 관람객이 작가고, 팬이라고 해봐야 미술학도다. 새로운 관객이나 소비층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거다. 공간 운영자 입장에서도 정말 그림을 사는 사람이 존재는 하는지, 누구도 소비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의문이 들더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미술계에 존재하는 질량 보존의 법칙 같은 것이다. 품앗이 차원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듯, 작가들끼리 서로 전시를 돌고 도는 분위기. 이를 전환할 방법이 있다면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미션 임파서블: 팔리지 않는 것들을 팔아보자

‘공간사일삼’의 김꽃 작가는 처음으로 ‘굿-즈’ 참가 제안을 받던 당시를 회상하며 현대미술을 판매해보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더라고 표현했다. 공간을 운영하는 그에게도 현대 미술 판매는 애초에 논외의 이슈였던 듯했다. 팔리지 않는 상품, 비물질적인 무언가를 판매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신선한 자극이 됐다. 시작은 산뜻했지만,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올해 8월, 전시를 두 달 앞두고 작가들에게서 건네받은 첫 번째 기획안은 실용적 굿즈로 가득 차 있었다. 작가들은 아트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굿즈들, 쉽게 말해 고흐 우산이나 클림트 파우치처럼 예술의 ‘이미지’를 덧입힌 공산품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아무리 ‘굿-즈’가 판매 마켓이라고 한들 뮤지엄 숍과는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굿-즈’의 정체성에 대한 토론이 전개된다.

단순히 전시장을 아트 상품으로 채우느냐, 작품으로 채우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품과 아트 상품의 모호한 경계를 인지한 순간, ‘굿-즈’라는 행사의 성격은 물론이고 예술과 상품의 본질적 정의에 대한 의문까지도 제기됐다. 가령 ‘상품은 단순한 작품의 파생물인가?’, ‘2차 생산물도 어떤 의미에서는 작품이 아닌가?’, ‘그렇다면 파생물도 작품이 아닌가?’, ‘작품인 것과 작품 아닌 것을 가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문 물음표들. 아웃풋은 기준이 될 수 없었다. 작가의 의도와 관점이 투영되었음에도 그 외양이 상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판매 방식에 대한 고민의 여부였다. ‘굿-즈’는 작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작품으로 소통되는 자리여야 했다.

참여 작가 80명의 저마다 다른 온도도 또 하나의 변수였다. 말 그대로 ‘생계에 도움이 안 될 거라면 왜 하느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애당초 팔릴 거라는 기대가 없으니 팔리지 않을 작업을 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저 재미로 참여하는 작가도, 판매를 고려해본 경험이 전무한 작가도 있었다. 작가들에게 지나친 압박을 주고 싶지도 않았지만, ‘굿-즈’가 아트 상품으로 도배되는 것도 원치 않았던 기획자들은 80명을 조율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작품을 권장하되, 그것이 어렵다면 작품과 상품의 중간 영역을 개척해보고, 정 안되면 이미지 장사라도 해보자는 가닥을 잡았다. 그럼으로써 작가들도 작품 판매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뭘 파는데?

기획을 반려하고 재협상하는 다난한 과정에서 작가들은 ‘굿-즈’를 위해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들고, 영상이나 퍼포먼스를 판매 가능한 형태로 파생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큐브, 엽서, 배지(Badge) 같은 소품부터 제법 큰 규모의 설치 미술까지, 적게는 500원부터 최대 1,500만 원에 이르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작품 옆에는 작가들이 오픈 직전까지 가격을 내린다 만다 하며 고심 끝에 책정한 가격표가 붙어 있다. 현금 판매를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재량껏 카드 단말기를 준비해오기도 했다고. 별도의 수수료 없이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직거래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작가가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작가들에게도 관객과 인간적인 거리에서 대면하고 심지어 직접 수금(?)까지 하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이었으리라.

조익정 작가는 본인의 퍼포먼스에 사용했던 굴렁쇠를 판매했다. 사실상 갤러리 내에 바퀴가 달린 소품을 들어오려면 상당한 제약이 있기에 세종문화회관 측과 협의 및 조율을 거쳤다. 전시 기간에는 조 작가가 직접 굴렁쇠를 타고 달리는 퍼포먼스를 시연했다.

유난히 북적였던 노상호 작가의 부스에서는 제법 큰 규모의 페인팅을 조각으로 판매했다. 관객은 프레임 모양의 자로 사이즈를 측량해 페인팅의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만큼 오려 가질 수 있다. 1cm x 1cm당 500원.

김웅현 작가는 1998년 ‘정주영 소 떼 방북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의 뼈와 살점을 조각으로 해체해 당일 소고기 시가에 판매한다.

작가가 실제로 수년간 사용했던 이불 조각을 떼어 관객에게 판매하는 김대환의 〈그 이불〉은 일종의 관계 미술 작품이다. 구매 시 관객은 미술품 매매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며, 이후 작가가 구매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 판매액과 동일한 가격(15만 원)에 이불 조각을 되산다는 것이 조건이다.

강재원 작가는 울고 싶은 사람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눈물 장치’ 조립설명서와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수건 등을 키트로 구성한 〈아 울고 싶다〉를 판매했다. 원하면 눈물 장치를 직접 착용해볼 수 있다. 단, 장치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관객이 개인적으로 구해야 한다.

이 외에도 이준용 작가는 〈이준용과 악마의 젗꼭紙〉를 통해 ‘수제 드로잉’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모든 드로잉은 수제일진대 왜 굳이 ‘수제 드로잉’이라 부르냐 하면, 팔기 아까운 원본 대신 원본을 수작업으로 본딴 ‘복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가격은 그리는 시간 등 복합적인 요소를 시급으로 계산해 책정했다. 가격은 1천 원에서 1백만 원에 이른다.

‘굿-즈’ 개장 이후 행사 진행의 미숙함에 대한 지적이나 취지의 진정성에 대한 비판도 왕왕 눈에 띄었지만, 젊은 작가들이 소소하게 시작한 판이 이 정도 반향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최소한 ‘굿-즈’가 그들만의 동네 잔치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트페어가 종료되고 나면 늘 매출 규모가 행사의 성패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처럼 인구에 오르내리곤 한다. ‘굿-즈’의 경우 17일 오전 기준 8,000만 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상업적인 행사로서의 성공 여부는 판단하기 나름이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굿-즈’는 작품 구매를 ‘건강한’ 행위로 비치게끔 만드는 축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만큼은 성공한 듯 보인다.

일 년간의 마라톤이 끝난 지금, ‘굿-즈’ 기획팀은 내년에도 ‘굿-즈’를 지속할 수 있을지, 지속한다면 같은 형식을 유지할 수는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각기 다른 아이덴티티와 철학을 가진 신생공간이 모여서 ‘아트 페어’라는 목적성 분명한 형식 아래 80명의 신진작가를 큐레이션 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을 테다. 강정석 작가는 준비 기간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굿-즈’가 뭘까?’라는 질문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 판매는 작가에게 무슨 의미이고, 관객에게 작품 소비는 무슨 의미일까? ‘굿-즈’는 해결책이 아닌 물음표를 남기며 막을 내렸다. 그 질문의 바통은 ‘굿-즈’ 관계자를 비롯한 모든 작가와 관객이 이어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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