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진의 사진은 직설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녀 사진에는 연약하지만, 결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청춘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망각의 시간을 붙잡다
“살아있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경계하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캄캄한 갈망을 마음속에 지닌 채 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 한없이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이들이 있어서, 나의 세계는 외롭고 또 충만하다.”
정예진의 사진을 보면 〈세븐틴〉 속 황경신의 문장이 떠오른다. 사실 감성을 자극하는 말랑말랑한 글과 감정을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사진들 사이에서 어떤 연결고리를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녀 작업을 마주하면 사진들이 내뿜는 시각적 강렬함에 저절로 양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또한, 몸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사진 탓에 이성이 잠시 마비되기도 한다. 게다가 그녀 작업은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것들을 모아놓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스토리텔링이 빈약하다는 의미다. 이런 연유로 단시간에 그녀 작업에서 무언가를 읽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정예진의 사진들을 하나씩 넘기다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시쳇말로 ‘요즘 애들’이다. 불안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불완전한 청춘의 모습이랄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이 과격함으로 전치된 모양새다. 시종일관 어두운 톤을 유지하는 사진에선 죽음의 그림자도 느껴진다.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안쓰러움이 먼저 차오른다.
하지만 정예진과 그녀 주변 ‘요즘 애들’은 ‘미운 청년 새끼’가 될지언정 현실에 순응하지는 않을 작정 것 같다. 아픈 청춘이라고 달관하기보다는, 되레 아픈 청춘이라고 낙인찍는 세상을 향해 반항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무엇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청춘을 주셔서 고맙다고 말하는 한 장면의 짐노페디를 보는 것 같다.
내성적이면서 대담한
정예진이 ‘반항’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사진이 단순히 감정 배설에만 치중하고 있지 않아서다. 손대면 터질 것 같이 연약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사라질 것 같진 않은 청춘, 이것이 앞에서 말한 그녀 작업과 황경신의 글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정예진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인물이다. 남들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수많은 ‘나’가 적극적으로 표면에 드러날 뿐이다. 어쩌면 내성적이면서 대담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청소년기에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늘 마음이 불안했고 무기력했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조절되지 않기도 했다.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고 패션학교에 입학했다.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지만 평온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어릴 적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니 마음에 병이 난 것이다.
하지만 친구로부터 구입한 중고 카메라 한 대가 그녀 인생을 바꿔놓았다. 사진이 마음에 위안을 얻는 도구가 됐다. 패션 디자인 공부도 포기하고, 무작정 주변 사람들을 찍었다. 겉으로 잘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사람들에게 투영했다. 촬영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내성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다. 내면의 욕망도 과감하게 드러냈다. 상상에 그쳤던 에로틱한 장면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탄생한 독특한 사진들은 그녀를 상업 사진가의 길로 인도했다. 패션사진 촬영 의뢰가 들어왔고, 가수들의 티저 사진도 촬영했다. 사진이 그녀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것이다. 사진이 현실을 극복하게 해준 동력이 된 셈이다.
추(醜)를 통한 추의 해소?
현재 정예진은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국 사진계에 균열을 내는 것이 목표다. 그녀는 전시장을 돌아다닐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작가들의 초기 작업에선 자유로움이 묻어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이 정형화된 틀 안에 갇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진학과를 나오고, 기성 사진가 밑에서 어시스턴트 생활을 한 뒤 데뷔하는 전형적인 과정이 낳은 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도제식 교육을 받지 않은 자신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했다.
분명 정예진은 참신한 시각을 가진 사진가다. 하지만 아직은 특정 마니아층에게만 어필하는 것이 사실이다. 노골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신체 묘사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추의 예술을 통한 추의 해소가 또 다른 추의 창조 혹은 축적을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녀 사진에는 렌항과 아라키 노부요시, 쿠사마 야요이의 향이 배어 있다. 가끔은 오마주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는 보는 이의 시각적 피로도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자신만의 고유 언어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이런 유형의 작업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각인시키기가 수월할 테니까 말이다.
정예진 @yejinjung0415(인스타그램)
패션 화보와 가수들의 티저 등 상업사진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녀는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내면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해 표현한다는 의미다. 개인전과 단체전에 각각 두 번씩 참여했다.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서바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