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5
일러스트레이터 홍세인은 꿈의 세계를 현실로 가져왔고, 리소그래프는 상상 속의 색을 종이 위에 그대로 재현해준다. 리소그래프와 홍세인이 어쩐지 닮은 이유다.
상상 속 색이 실제가 되는 곳
‘포푸리’는 일러스트와 그래픽 작업을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리소그래프 인쇄를 전문으로 하는 인쇄소다. 홍세인이 혼자 운영한다. 처음 시작한 건 2015년 5월인데, 그때는 서교동에서 5명의 동기와 작업실을 함께 사용했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망원동의 한적한 골목에 새롭게 혼자만의 공간을 꾸몄다.
“일단은 일러스트 작업을 기반으로 하는 스튜디오예요. 하지만 그냥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자니 이미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저만의 무기가 필요했는데, 그게 ‘리소그래프’예요. RP3700이라는 리소 인쇄기를 구입했고, 제 작업물은 대부분 이걸로 인쇄해요.”
리소그래프 인쇄의 가장 큰 장점은 머릿속으로 상상한 색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잉크가 별색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CMYK 체계의 오프셋 인쇄와 달리, 한 번에 한 가지 색상만 인쇄하는 방식이라, 형광색이나 금색도 소량 인쇄가 가능하다. 오버프린팅이 가능해 표현할 수 있는 색채가 다양하고, 콩기름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색상이 선명하고 화려한 것도 장점이다.
현재 포푸리는 총 24가지의 색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파스텔 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홍세인의 개인 작품도, 의뢰받은 작업도 대체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꿈의 시간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꿈 기록기의 역사>는 리소그래프로 인쇄한 홍세인의 대표작이다. 대학교 졸업작품으로 출품했던 책으로, 작년 언리미티드 에디션 기간에 수정 후 (이번엔 직접) 다시 인쇄했다. 제목처럼 ‘꿈 기록기’에 관한 이야기다. 꿈의 세계를 현실에서 이용할 수 있다면 현실의 한정적인 시간이 무한해지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꿈의 내용을 완벽하게 기록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뭐, 그런.
“<꿈 기록기의 역사>는 구매해주시는 분들이 꽤 많아요. 지금 재고가 없어서 재인쇄해야 할 것 같아요. 해외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올해 5월에 영국에 갈 일이 있었거든요. 혹시 몰라 책을 몇 권 챙겨 갔는데, 운이 좋게도 4~5군데 서점에 입점했어요. 흥미로웠던 지점이, 책에 한국어와 영어가 같이 표기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한국어를 모르니까 또 다른 이미지로 인식을 하더라고요.”
홍세인은 <꿈 기록기의 역사>의 연장선상으로 ‘미래 상품 시리즈’ 다섯 개를 기획했다. 하나만 미리 이야기를 해보자면, ‘벼를 재배하는 개인용 키트’에 관한 것이다. 대학 시절 제작했던 것인데, 이 키트로 직접 벼를 재배하고 밥을 만들어 먹는 내용이다. 소스만 그대로 가져가고 그림은 다시 그려서 새롭게 출간할 계획이다.
“계획한 것은 많은데 작년엔 클라이언트 작업이 많아서 대부분 못했어요. 10월에 도쿄아트북페어에 참가하는데, 그때까지 새로운 책을 만드는 게 우선이고요. 장기적으로는 개인 작업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누가 뭐래도 저의 본질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이니까요.”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