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달라 독일 통신원 | 2017-09-07
당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최소한의 본질은 무엇인가? 독일의 대표 기업 ‘브라운(Braun GmbH)’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산업 디자인계의 거목 ‘디터 람스(Dieter Rams)’는 최소주의, 즉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훌륭한 디자인의 기본이 된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비주얼(Visual)로 간단해 보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그의 엄격한 시각적 언어로 탄생한 디자인들은 우리의 일상에 속속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할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뛰놀던 예비 디자이너
그는 1932년 독일의 남서부 지역 비스바덴(Wiesbaden)에서 태어나 목수로 일하던 할아버지로부터 일과 공예, 조형에 대한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된다. 1947년 그의 나이 열여섯에 비스바덴에 처음으로 생긴 미술 공예학교에서 실내 디자인 실습을 시작하게 되면서 디자인의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건축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이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건축 디자이너 오토 아펠(Otto Apel)의 사무소에서 일을 하던 중 그의 디자인 인생의 정점이 될 브라운에 입사하게 된다.
디터 람스와 브라운의 섬세함이 만들어낸 디자인의 힘
독일의 엔지니어인 막스 브라운(Max Brown)이 1921년 프랑크 푸르트(Frankfurt)에 창립한 이 기업은 전기면도기, 주방 용품을 비롯해 레코드플레이어가 결합된 라디오 등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제품을 개발해 내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브라운은 회사 자체적으로 제품이 가지는 세분화된 모든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며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되고 우아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했다.
심지어 각 디자인 분야를 심층적으로 담당할 디자이너들을 뽑았는데 디자이너 한스 구에 롯(Hans Gugelot)은 라디오와 전화기를 디자인하는 책임을 맡았으며, 올트 아흘러(Olt Alcher)는 각종 박람회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작은 공간인 박람회 부스를 디자인하고 통신 시스템 디자인 연구에, 디자이너 프릿츠 아이힐러(Fritz Eichler)는 회사의 얼굴이 될 광고 디자인을 책임지며 모든 디자이너가 세분화된 시스템에서의 디자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흐름을 이어받아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로 30년간 지낸 디터 람스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브라운의 기업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이처럼 브라운에 몸담고 있었던 모든 디자이너들의 노력의 결과는 오늘날 세계 곳곳의 미술관들에 전시되며 디자인 파워를 뽐내고 있다.
디자인의 심미적 지속 가능성
그의 작업의 출발은 언제나 질서를 창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는 혼돈이라는 것이 없는 산만하지 않은 정리된 디자인과 절대 잃지 말아야 할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색을 입히는 대신 모양과 조화를 이룰 만한 단색을 선호했고 누가 보아도 한 번쯤 만져 보고 싶은 디자인의 표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형태와 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데에 중심을 두었다. 디자인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절대적인 가치를 위해 그가 강조하던 ‘디자인 십계명’은 오늘날까지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 바이블과도 같은 영향력을 지속하고 있다.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그가 강조하는 디자인 정신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면 그는 자신의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늘 주관이 뚜렷한 디자인을 할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 자신이 만들어 낸 디자인 십계명이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며 젊은 디자이너일수록 참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마음껏 분출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하기 위한 목적이 뚜렷하다면 누구나 현명하고 세심한 디자인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당부한 점이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3. 좋은 디자인은 아름답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한다.
5.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6.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
7.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8.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9. 좋은 디자인은 환경친화적이다.
10. 좋은 디자인은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최소한의 본질을 갖춘 영원한 디자인
디자이너로써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과 고집을 포기하고 한 기업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재료비를 아껴서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대량 생산에 대한 막대한 부담감으로 소비 중심의 디자인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디자이너가 마주할 숙명이 닥칠지라도 ‘무엇을 위한 디자인인가’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는다면 그 디자인은 최소한의 본질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중요시하는 디자인 10계명은 디자인의 초점을 그 안에 가두거나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수백, 수천 가지의 다양한 아이디어 안에서 마음껏 뛰놀면서도 기능에 충실한 그 본질을 잊지 않는 가치 있는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글_ 남달라 독일 통신원(namdalr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