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미술사가 • 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 2017-09-18
첨단 과학기술은 더 이상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시력조정용 의학용품이나 패션 액세서리만으로 보지 않는다. 아이웨어(eyewear)는 인간 신체의 일부로 밀착된 인공 기관 혹은 보철물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현재 테크 업계에서 경쟁적으로 연구개발이 한창인 구글 글래스, 스냅 스펙터클(Spectacle) 등은 외부 세상을 잘 내다보게 하는 시력 교정 기기가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외부의 현실 세계 대신 색다른 가상 세계를 보여주는, 안경 개념 자체의 대전환을 제시한다.
미래 트렌드세터가 선택한 스마트 안경
콘택트렌즈와 라식/라섹 시력교정 수술로 신체적 약점을 손쉽게 수정할 수 있게 된 요즘, 현대인은 패션 선언의 방식 또는 사회적 표현 수단으로 안경을 쓴다. 약 반 년 전 우리나라를 들끓게 한 대통령 선거를 떠올려보자. 후보에 대한 다각도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정치가들의 안경 패션과 브랜드가 언론의 관심 주제로 떠올랐다. 그들이 사용하는 특정 안경테와 렌즈 브랜드가 시사하는 사회문화적 의미가 정치가들이 착용하는 의류 및 액세서리 브랜드 선택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정도로 안경은 인간과 사회 사이 의사소통의 매개체가 되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테크를 거침없이 수용하는 개방적인 현대인 사이에서는 스마트 안경이 유행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현대인의 손과 주머니에서 떠나지 않고 존재의 일부가 된 스마트폰이 핸드셋(handset)이라고 한다면, 스마트 안경(smart glasses)은 얼굴에 쓰는 옵티컬 헤드셋(headset)이다. 구글이 개발하여 2013년 출시한 구글 글래스는 스마트폰과 같은 핸즈프리 형태의 유비쿼터스 컴퓨터였다. 구글 X의 구글 글래스는 본래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 용구로 개발됐지만 스마트폰으로 수행할 수 있는 각종 통신 기능, 카메라, LED 디스플레이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두 손을 자유롭게 해준다. 때문에 오늘날 생산공장, AR/VR 엔터테인먼트, 의료보건 분야에서 차세대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로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구글은 최근 이 원조 구글 글래스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한 업무용 구글 글래스의 시장 출시를 앞두고, 물류서비스 회사 DHL과 농업기기 제조 및 유통기업 AGCO의 생산라인에 응용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 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전 세계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은 기능도 개선되고 디자인적으로도 우수한 새 스마트 안경 개발에 속속 뛰어들었다. 스마트 안경은 단지 안경에 부착된 카메라의 도움을 받아 작동하는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기일 뿐만 아니라, 길을 찾을 때 필요한 안내용 지도,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보고하는 생체정보 측정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알려주는 생활 속의 전반적 도우미가 되어 줄 날이 멀지 않았다. 스마트 안경에 장착될 여러 센서 및 첨단 정보기술이 발달하고, 다소 투박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디자인이 세련돼지고, 부품은 초소형화 돼 패션용품으로도 부족함 없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재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일상품으로 변신 중인 스마트 안경
그리고 그같은 징후는 이미 일부 기업들이 내놓은 프로토타입과 소량, 한정으로 출시된 스마트 안경 제품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현재 IT 언론계와 AR/VR 매니아들 사이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제품은 뷰직스(Vuzix) 사의 뷰직스 블레이드 3000(Blade 3000) 스마트 안경이다. 2017년 7월 기준 개당 미화 1천 달러 대로, 겉으로 보기에 일반 선글라스와 다름없는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한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로 연결돼 이메일, 카메라, 유튜브 비디오 촬영 및 상영이 가능해, 패션과 IT 기술이 겸비된 소비자용 스마트 안경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소비자 가전 전시회에서 소개된 바 있는 ODG 7R AR 안경도 기본 통신 기능, 총 시야(FOV) 37도 각도 8ofps 비디오 상영 기능, 컴퓨터 게임 오락기능, 4MP 디지털 카메라, 목소리 인식 기능을 두루 탑재한 와이파이/블루투스 스마트 안경을 소개했다. ODG 사는 이 모델에 이어 시야 각도를 40도로 개선하고, 보다 우수한 위치 추적 기술과 스냅드래곤 835 프로세서를 탑재한 R8과 R9 모델을 소개할 예정이다. 스마트 안경이 눈으로 체험하는 기기인 만큼 스마트 안경 제조업체들이 늘 주목하는 신기술은 단연 더 진보한 비디오 카메라, 최첨단 3D 비디오 캡처 기술, 보다 광범위한 시야를 날렵하고 가벼운 안경테 디자인 속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앞으로 이 작업은 스마트 안경 업계의 승패를 판가름할 기술적, 디자인적 설계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엡슨 사의 무베리오 BT-300 모델은 증강현실 AR 스마트 안경을 일상생활 속의 실용품으로 활용한다는 컨셉이 돋보이는 스마트 안경 제품이다. 현재까지 시중에 나와 있는 AR/VR 안경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괴짜스러워 보이는 외형을 버리지 못한 것이 단점이지만, 하이테크 분위기를 풍기되 가볍고 날렵한 안경테 디자인으로 경쟁 스마트 안경보다 실용성을 높여서 주로 여러 업무로 바쁜 비즈니스맨이나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는 직장인을 겨냥하여 기획됐다. 안경 렌즈에 720 픽셀 고해상 OLED 디스플레이와 5 메가픽셀 정면 카메라가 장착되어 동영상 이미지 촬영과 재생이 가능하며, 인텔 아톰 콰드 코어 프로세서가 탑재돼 각종 안드로이드 롤립팝 소프트웨어 기반의 앱 실행이 가능하다. 소니도 이와 유사한 컨셉의 스마트 안경 어태치(Attach)를 개발했으나 아직 가격이 책정되지 않아 상용화까지는 더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너무 비싼 스마트 안경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시각 경험을 사용자가 느끼도록 해 효과를 높이는 스마트 안경은 본래 군사적인 용도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첨단 군사 산업에서 개발된 제품을 일반 대중을 위한 소비자 상품으로 전환한 것인데, 대중화하기까지 여전히 스마트 안경의 가격은 비싼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특수 목적을 겨냥한 스마트 안경은 군사용 외에도 스포츠 업계나 컴퓨터 게임 업계 같은 특수 분야에서는 이미 마니아들 사이에서 적극 활용 중이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첨단기술 스타트업 에브리사이트(Everysight)가 개발한 랩터(Everysight Raptor)는 이미 첨단 분야에서 축적해온 기술에 기반하여 프로 자전거 선수들을 위한 AR 스마트 안경을 개발해 보급한다. 체력의 극단을 시험하는 자전거 선수들에게 OLED 기반 매핑 정보를 제공하여 최대한의 집중력과 기록 향상을 유도하는 이 제품은 곧 보다 저렴한 가격대로 대중화될 예정이라 한다.
소비자와 디자이너들에게도 안경은 서서히 새로운 의미를 띤 사회문화적 선언 수단 또는 더 나아가 사소한 일상 용품으로 변신할 날이 멀지 않았다. 첨단 IT 업계는 전 세계 현대인의 일상 활동과 직업 세계를 두루 관리해주는 스마트폰을 대신할 더 첨단의,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매력적인 IT 디바이스(device)를 시장에 소개하는 데 한창이다. 애플을 위시로 한 스마트 워치(smart watch)가 그 예이며, 약 5년 전부터 구글이 시도한 구글 글래스(Google glass) 스마트 안경도 마찬가지다. IT와 정보 통신 디자인은 우리의 경제력, 사회적 지위, 세심한 패션 센스와 감각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럭셔리 패션 액세서리 아이템으로 우리 생활에 들어오고 있다.
디자인으로 대중화 꾀하는 스마트 안경
일반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대신 스마트 안경을 개인용 커뮤니케이션 디바이스로 포용하게 될 시점은 스마트 안경의 디자인에 달려 있다. 작년 연말부터 미국에서 시판에 들어간 스냅챗(snapchat: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트위터 또는 우리나라의 카카오톡과 유사한 소셜미디어) 스펙터클 선글라스는 10초간 원형 비디오 촬영 기능이 탑재된 선글라스다. 짧은 영상 기록 기능 말고는 스마트 안경이라고 하기에는 기능이 부족하지만 이 패션 액세서리를 시작으로 스냅챗은 향후 증강현실 게임이 가능한 AR 스마트 안경을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 제품의 장점이라면 역시 저렴하다는 점(개당 미화 130달러)과 사용자나 피사체의 생체정보나 온라인 정보를 채집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문제 없이 소비자들과 쉽게 친숙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첨단 스마트 안경 업계는 인간의 생체정보에 깊숙히 파고들어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첨단 기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웨어러블 테크 업체인 인터액슨(InterAxon)과 이탈리아의 사필로 그룹(Safilo Group)은 사용자의 뇌파를 감지하는 사필로 X(Safilo X) 스마트 안경을 공동개발하여 패션 액세서리로서의 선글라스에서 하이테크 기능성 선글라스로 재탄생을 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안경은 아름답고 패셔너블한 액세서리를 넘어서 사용하는 자의 각종 신체 상태를 실시간 파악하고 분석하고, 두뇌 훈련 및 명상, 수도 훈련을 돕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인드 컨트롤 지원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Lift) 가상현실 헤드셋과 닮은 가상현실 안경(VR glasses)은 2015년에 공개돼 전 세계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은 화재의 IT 기기가 되었지만, 당시 가격이 고가인데다 현실적 시야감에 부족함이 있고 착용 및 휴대에 불편할 정도로 부피가 크다는 점 등 때문에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미 삼성과 합작 생산을 시도한 바 있고 차세대 개인용 이동 기기가 될 것이라는 잠재력 덕분에 오큘러스 가상현실 안경은 지금도 VR 하드웨어로서 개발을 멈추지 않고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와 대중화에 대비하고 있다.
글_ 박진아 (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