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벨(label)은 알고 보면, 디자이너의 작품이자, 더 나아가 예술 작품까지 될 수 있는 존재다.
〈Contemporary Still life with Selly Belly Candies〉, 김기라, 2009
어렸을 때, 라벨을 떼서 책받침에 붙이는 친구가 있었다. 나름 수집이었는지, 손상되지 않고 잘 뜯어진 라벨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굳이 저걸 왜 힘들게 떼나, 모아서 어디에다 쓰려고.’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그 친구의 심정이 이해된다. 라벨에는 디자이너의 노력이 담겨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라벨의 중요성은 마트만 가도 알 수 있다.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라벨 디자인이 예쁘면 손이 먼저 간다.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면서 구매욕을 자극하는 라벨(Label)은 상품에 관한 정보를 표시한 서식을 일컫는 말이다. (상품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은 공간 안에 상품명, 상품 정보, 브랜딩까지 아울러서 담아야 하기에 디자인하기가 까다롭다. 그래도 어려운 조건 안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휘한 라벨이 있다. 심지어 재질까지 다르게 하면서 말이다. 이런 라벨들은 디자이너에게 좋은 예시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레이블 갤러리는 앞서 말한 아름다운 라벨 디자인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국내 최초로 점착 라벨 소재를 생산한 ㈜세림에서 2013년에 세웠다. 원래는 충무로에 있었는데 2017년 6월, 서울 성수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널찍한 갤러리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중심이 되는 공간은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다. 이곳에서 라벨은 상품의 정보를 알려주는 ‘이름표’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 레이블 갤러리는 설립 초기부터 꾸준히 라벨을 시각적 이미지로 차용한 미술 작품을 전시했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열렸던 개관 기념전 ‘라벨과 미술의 연결고리’는 이를 잘 보여주는 전시였다. 김기라, 김신혜, 노선미, 서지선, 유용상 등 한국 현대 작가의 회화 중에서 라벨이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작품 속 라벨은 작가의 감성을 알려주는 힌트가 되거나, 상상 속 세계로 가는 문이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실과 달리, 예술 속 라벨은 현대 사회와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창으로 작용한다.
레이블갤러리 개관 기념전 ‘라벨과 미술의 연결고리’는 예술에서 라벨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라벨과 미술의 연결고리’에 전시한 작품. 〈My Coco Beach〉, 김신혜, 2015 / 〈풍경을 그리다〉, 이주은, 2017
갤러리 옆, 작은 공간에는 라벨 디자인이 독특한 상품이 전시되어 있다. ㈜세림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서 모은 것이다. 갤러리가 시야를 넓혀주는 공간이었다면, 이곳은 디자이너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공간이다.
좋은 디자인의 예시로 책에 소개된 라벨이 있는가 하면, 아예 처음 보는 신기한 라벨도 있다. 때로는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의 라벨도 발견할 수 있다. 라벨에 숨겨진 이야기와 디자인 트랜드를 동시에 알 수 있는 라벨 아카이브는 무심코 지나쳤던 라벨 디자인의 우수성을 알려준다.
최근 들어 디자인 전시가 많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간혹 일상과 먼 내용을 다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이럴수록, 레이블갤러리처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의 가치와 역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덕분에 익숙했던 라벨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자료 제공_ 레이블갤러리(
labelgalle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