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작품이 한국에 왔다. 일상의 오브제를 회화의 기본요소로 사용하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과 조각·사진·설치 등 매체를 넘나들며 대중문화에 도전하는 폴 매카시(Paul McCarthy)다. 70대가 된 두 거장은 여전히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달리 보며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Commonplace(with mouse)〉, 2017, Acrylic on aluminium, 200x250cm,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 폴 매카시, 〈White Snow head〉, 2012, Silicone (flesh), fibreglass, steel, 140x160x185cm, Photo by Genevieve Hanson, Courtesy of the artist, Hauser & Wirth and Kukje Gallery
평범한 일상과 예술의 경계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오래전에 봤던 퀴즈 중에서 이런 것이 있었다. 사물을 엄청나게 클로즈업해서 찍은 후, 이 사물이 무엇인지 맞추는 거였다. 퀴즈의 취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거였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가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회화는 앞서 말한 퀴즈와 닮아있다. ‘예술이란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라 말하는 작가는 아이폰, USB, 우산, 선글라스 등을 확대하고, 잘라냄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일상의 사물을 예술로 변모시킨다.
〈Untitled (lightbulb fragment)〉, 2016, Acrylic on aluminium, 195x195cm,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Untitled (memory stick fragment green)〉, 2017, Acrylic on aluminium, 90x90 cm,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크레이그 마틴은 현대 개념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작가 본인 자체가 현대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게리 흄 등 YBA(Young British Artist) 그룹을 키워낸 스승으로서 현대 미술의 새로운 세대를 발굴하는 데 일조했다.
갤러리 현대에 전시된 그의 최근작은 76세의 거장의 것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모던하다. 뚜렷한 윤곽선으로 간결하게 표현된 오브제의 형태와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는 마치 젊은 아티스트의 작업처럼 활기차다.
크레이그 마틴은 한 손에 들어오는 사물(예를 들어 선글라스, 와인 따개, 음료수 캔)을 커다란 캔버스보다 더 크게 확대하여 표현했다. 이러한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사물을 사물로써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화면을 나누는 선과 면으로서 보게 만든다. 또한, 사물의 실제와 전혀 관련 없는 색의 조합은 크레이그 마틴만의 세련된 색의 사용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Commonplace (with chaise)〉, 2017, Acrylic on aluminium, 200x250cm,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관객은 작품 속 오브제를 유추하거나 캔버스 바깥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이는 모두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대중문화에 숨겨진 우리의 초상 - 폴 매카시
폴 매카시의 대표 작품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를 재해석한 〈White Snow(WS)〉 연작이다. 작가는 백설 공주를 미와 성적 소비 대상으로, 일곱 난쟁이를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파괴하는 주체로 표현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 속 내용과 달라 처음에는 흠칫 놀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묘한 작품이다.
폴 매카시는 정서적, 시각적으로 친숙한 소재와 이미지를 비틀면서 매스미디어와 대중 심리의 어두운 이면을 밝힌다. 괴이하면서도 파격적인 이미지로 언제나 화제에 오른다. 10월 말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폴 매카시 개인전은 이러한 작가의 세계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White Snow Head〉 연작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K2관)
〈Picabia Idol〉, 2015-2017, Silicone, 162.6x76.2x58.4cm / 〈Picabia Idol Core〉, 2015-2017, Silicone, 156.8x50.8x69.9cm, Photography ©2017 Fredrik Nilsen,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Hauser & Wirth and Kukje Gallery
조형 작품인 〈Picabia Idol〉과 〈White Snow Head〉 연작은 실리콘 조각 주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주형의 뼈대인 코어가 고스란히 전시된다. 추상적인 외형을 가진 코어는 작품이라고 하기엔 앙상하고 뭉개져 있다. 하지만 작가는 코어야말로 진정한 내면이자 의미라고 말하며, 표면적인 이미지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작가 본인의 나신을 조형으로 본뜬 〈Cut up〉 시리즈는 최초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절단된 작가의 몸은 괴상하게 재배치되어 관객을 낯설게 만든다. 슬래셔 무비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지하에 숨겨진 고문실에 온 듯한 느낌도 든다. 빨간색과 검은색, 노란색으로 비속어가 쓰여있는 드로잉들은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신체를 잔인하게 다룬 〈Cut up〉은 세계 곳곳에 만연한 폭력성을 표현한 것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특징인 신체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인간성의 상실도 느껴진다. 작품 소재가 대중매체의 아이콘에서 작가 자신으로 변했지만, 폴 매카시는 여전히 세상에 감춰진 진실을 말하고 있다.
〈Cut Up A〉, 2015-2017, Urethane resin, 182.9x76.2x61cm, Photo by Walla Walla Foundry, Courtesy of the artist, Hauser & Wirth and Kukje Gallery
〈Cut Up〉 연작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K3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개인전 - All in All
2017.09.21 - 11.05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
폴 매카시 개인전 - Cut Up and Silicone, Female Idol, WS
2017.09.14 - 10.29 (월요일 휴관)
국제갤러리 K2, K3관
자료 제공_ 갤러리 현대(
www.galleryhyundai.com), 국제갤러리(
www.kukjegalle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