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 2015-09-17
공예를 두고 그것이 순수미술이냐 디자인이냐 했던 것은 온전히 옛일이 됐다. 조형예술의 한 부분인 그것을 순수미술로부터 구분 짓기 위해 ‘공예’라는 이름으로 불렀든 아니든 이젠 공예와 공예가 아닌 것의 경계 혹은 그 정의가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진 않다. 9월 1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열리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공예’가 지닌 통념에서 벗어난 공예의 미래를 새로운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 | 최유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제공
공예, 그 이상의 것, ‘HAND+ 확장과 공존’
1996년부터 시작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올해로 9회째를 맞이했다. ‘HAND+ 확장과 공존’이라는 주제는 ‘공예,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손으로 하는 것에 무언가가 더해져 확장시키고 나아가 공존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확장’과 ‘공존’에 대해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바로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다. ‘실생활에서 쓰이는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물건들’의 모습보다는 순수한 예술작품에 가까운 설치작품들은 장르의 붕괴를 넘어 확장, 그리고 새로운 매체와 섞여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손이 만들어내는, 손을 통한, 손에 의한 더 넓은 세계와의 만남을 기대하게 하는 포인트다.
이번 비엔날레의 기획전시는 <잇고 또 더하라 : The Making Process>로 ‘인간의 손과 공예’의 관계를 ‘제작 과정’이라는 맥락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새로운 기술과 재료의 창조적 활용을 통해 공예의 진화 현상을 설명하고 현대 공예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기획된 것.
바로 ‘진화’를 거듭해온 현대사회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방식의 21세기형 현대 공예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만나 전통적 모습에서 탈피, 타 장르와 소통하면서 물리적, 개념적으로 확장돼가고 있는 시점에 공예가 서 있다고 보고 ‘하이브리드(Hybrid)’의 관점에서 공예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공예는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하고 융합하며 새롭게 만들어진 가치들이 공존하는 것인데 전통에서부터 현대까지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모해 온 이러한 공예를 ‘제작 과정’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단순히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making의 의미로서의 제작이 아닌, 대량생산, 디지털 기술의 발달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해온 작가의 작업방식, 작가의 삶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공예뿐 아니라 순수미술, 그중에서도 지극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제작이 이루어진 작품들까지, 그 범위가 확장됐다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공예비엔날레가 공예 영역의 잔치를 넘어 미술 분야 전체의 축제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지만 특히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작가들의 설치방식 및 디스플레이를 통해 공예의 또 다른 면모를 느끼게 했다.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작업방식을 채택한 작가들의 작품 설치는 지극히 이 시대와 어우러지는 작업들로 ‘제작과정에 포커스를 두었다’는 이번 기획전시의 의도가 잘 반영되어있다.
과거와는 달리 변화하는 현대사회와 공예의 만남, 그 접점에서 현재와 미래의 공예의 모습까지도 예측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낸다는 것이 이번 기획전에서 가장 주목할 점이다. 이는 모두 새로운 시대에 변화하는 공예, 그리고 공예가 지닌 의미와 가치의 확장을 나타내며, 소통하고 공존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기획전 <잇고 또 더하라 : The Making Process)>
기획전 <잇고 또 더하라 : The Making Process)>는 총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 국내작가를 포함, 일본, 싱가포르, 영국, 미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 12개국 46팀의 작품 599점을 선보인다.
첫 번째 섹션, ‘도구 HAND+ ‘예-술 그리고 노동’’은 공예의 도구가 망라, 작가들 개개인이 작업을 하면서 쌓아온 자신들만의 제작 방식과 제작 과정에 의해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받으며 작가들의 또 다른 손이자 제작 과정으로서의 공예의 도구를 보여준다.
두 번째 섹션, ‘유산 Inheritance ‘전통 : 가치의 재발견’’에서는 전통적 가치의 유지와 지속, 앞으로의 모색에 대해 말하고자 전통 유지를 넘어 오늘날의 미감을 더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또한 한국나전칠기박물관, 박을복자수박물관, 한국자수박물관, 재단법인 예올 등 한국 근현대 주요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다.
세 번째 섹션, ‘확장 Expansion ‘혁신: 경계를 넘어서’’는 시대의 흐름과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예의 현모습을 진단하고 미래의 또 다른 변화에 대비하고자 기획됐다. 첨단 과학 기술과 새롭게 제시되는 재료들이 어떻게 공예에 사용되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또 공예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이야기 거리를 끌어낸다. 벨기에의 언폴드, 미국의 너버스 시스템, 뉴질랜드의 필 커튼스, 제프리 사미엔토, 하지훈, 이규홍, 주세균 등이 참여한다. 특히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아도 공예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현대작가들의 최첨단 스킬이 적용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네 번째 섹션, ‘공존 Coexistence ‘대화 : 물성-개념-표현’’은 현대미술, 디자인과 만나 서로 섞이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며 공존하는 공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조형성과 실용성을 오가며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관계 속에서 오랜 시간 다툼을 해왔던 공예를 확장된 차원에서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섹션으로 디자이너 패브리커, 유리 프로젝트팀 소피에타, 네덜란드의 보케 드 브리, 싱가포르의 토마스 청, 손몽주, 노경조, 김규태 등이 참여한다.
예술감독 알랭 드 보통, 공예를 통한 행복을 말하다
이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특히 더 주목을 끄는 것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작가이자 철학자,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유명한 알랭 드 보통이 이번 행사의 예술 감독을 맡은 부분 때문이다. 그간 다양한 분야를 다루어온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글을 통해 삶에 대한 사색과 철학이 더 나은 개인을 만들고 나아가 행복한 삶과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해왔다. 철학을 알기 쉽게 풀어놓은 그의 책은 많은 사람들을 철학의 세계로 초대했고 우리의 삶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러한 그는 이번 비엔날레에 대해 “공예가 가진 유용성과 아름다움이 개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각자가 처한 심리적 상황과 맞물려 독특한 심리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제안하며 삶 속에서의 예술, 예술을 통해 우리가 얻는 행복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알랭 드 보통 특별전 ‘아름다움과 행복 Beauty and Happiness’>은 그가 청년 작가 15팀과 함께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얻은 결과물이자 공예와 인문학의 만남을 선보인다. 작가들은 사랑, 강인함, 노력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난 8개월 간 현장워크숍과 이메일 등을 통해 알랭 드 보통과 창작을 진행해왔으며 심리학적 측면에서 공예의 효용을 재발견하고 총 49점의 작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일상 속에서의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한다.
알랭 드 보통은 공예에 대해 “장인의 손길이 곳곳이 닿아있는 아름다운 성전이 심리적 위안을 가져다주는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잘 만들어진 목침베개가 자기성찰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도구가 되고, 나아가 주변을 둘러싼 각각의 공예 사물들이 모여 우리를 충만한 삶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설명처럼 전시장 곳곳에서는 인간성을 치유하는 공예의 힘도 찾아볼 수 있다.
관람객이 주인공인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공예작가들의 실험성과 도전정신을 펼치는 장이 되어오고 있는 청주국제공예공모전은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와 창작욕구를 고취시키는 행사다. 그러한 취지에 걸맞게 설치 작업이나 시리즈 작업들과 3D프린팅 등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다채로운 제작과정 및 표현방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올해의 특징이다. 미국, 대만, 중국 등 총 31개국 871점의 작품이 접수됐으며 이번 공모전에서는 16개국 107점의 작품이 선정, 전시된다.
미디어프로젝트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다. 총 308,193장의 폐CD를 수거해 시민과 함께 연출한 시민주도형 공공예술작품인 CD프로젝트는 비엔날레가 열리는 연초제조창 3면을 덮는 CD파사드로 설치됐으며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또한 야간에는 LED를 설치, 시민들의 꿈에 대한 메시지를 노출하기도 한다.
실용적인 일상 물건을 활용하여 아름다운 공예를 연출(Beauty+Utility)한다는 콘셉트로 1,000명의 청주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진 주제영상은 비엔날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진정한 시민의 비엔날레를 실현하고자 기획됐다. 1,000명의 시민들의 1,000개의 우산이 각각 픽셀이 되어 다양한 공예 문양과 비엔날레 로고를 형상화해 완성됐다.
첨단산업과 공예의 만남에 포커스를 둔만큼 이번 행사는 로봇기술과 미디어 기술의 결합을 보여주는 요소들이 많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행사장 안내 로봇과 공연로봇, 간단한 스케치 작업으로 살아 움직이는 영상을 보여주는 ‘스케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등과 독창적인 융합 문화콘텐츠를 선사할 전시로봇도 만날 수 있다.
미디어 공예월은 디지털과 아놀로그가 결합된 독특한 영상매체 ‘플립닷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정보전달매체로 비엔날레, 연초제조창, 전시내용 소개 등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전반적인 정보를 소개한다.
이밖에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백남준 특별전, 청주국제공예페어, 거리마켓, 청주국제아트페어, 알랭 드 보통 특별강연 ‘공예와 충만한 삶’, 국제공예워크숍, 키즈비엔날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공예는 더 이상 손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자본주의, 과학, 스마트 기기들과 연계되어 있으면서 우리의 삶을 이끄는 철학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사회의 공예가 머물 자리이자 이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