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정 밀라노 통신원 | 2018-01-05
12월 초와 중순이 넘어가는 시기가 되어 밀라노에 겨울이 찾아오면 상점마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게 된다. 겨울의 문턱에서 밀라노 사람들은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아티자노 인 피에라(artigiano in fiera)’로 발걸음을 향한다. ‘아티자노 인 피에라’는 ‘피에라의 장인들’이라는 말로 이탈리아 전역의 특산품을 선보이는 박람회이다.
지난 12월 2일부터 12월 9일까지 밀라노 외곽 지역에 있는 로 피에라(Rho Fiera) 지역에서는 다양한 지역의 장인들과 브랜드들이 자신들의 특산품들과 제품들을 선보였다. 연말 선물을 준비하고 가족들과 둘러앉을 새해 식탁의 재료를 구입하는 밀라노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이탈리아는 지역색이 매우 뚜렷한 국가로 각 지역마다 고유한 특징과 다양한 특산품들을 지니고 있으며 각기 다른 고유의 특색을 계속해서 개발해 나가고 있다. 박람회를 통해서 지역의 다양한 색을 느껴보자.
사르데냐(Sardena) 지역은 이탈리아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시칠리아 섬보다 더 큰 섬으로 한국에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손꼽히고 있다. 사르데냐는 ‘신이 처음으로 지상에 발자취를 남긴 곳’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기반으로 하는 수산업과 수산 가공업이 중심 산업이다. 바닷가 해산물 이외에도 석호 지역과 섬의 중서부에 위치한 유럽에서 가장 큰 소금기 있는 연못 지역에서 생산된 숭어 어란이 매우 유명한데, 고대의 페니키아 식민지 개척 시대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며, 그 당시의 고대 가공법에 토대를 두고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생산되어 온 어란은 파스타의 풍미를 더하고, 식욕을 돋우는 음식으로 오래 사랑받아오고 있다.
또 사르데냐는 고유한 전통적 생활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전통 공예품이 많이 발달되어 있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공예품을 계속 유지하고 현대적으로 발전 시키기 위해서 ‘사르데냐 수공예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디자이너들과 함께 작업하는 프로젝트들을 지역 주정부에서 연계 및 장려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 박람회에서는 다양한 직조물이 가장 두드러졌는데 장인들이 만들어 내는 모습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역 특유의 제품들을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자연스러운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박람회가 열어주고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지역인 시칠리아(Sicilia)는 음식이 유명한 이탈리아에서도 맛있는 요리가 많은 지역으로 손꼽히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들을 자랑하고 있다. 시칠리아는 과거부터 다른 대륙이나 국가에서 건너온 식재료와 요리법의 영향을 받아 특색 있게 변화했다. 현재 이탈리아 요리의 기본이라고 여겨지는 파스타 역시 중국과 아랍을 거쳐서 시칠리아에서 시작되었으며, 올리브의 경우 그리스에서, 토마토 역시 신대륙에서 건너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탈리아 음식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사랑받는 디저트인 카놀리(Cannoli)와 카사타(Casata), 젤라토(gelato) 역시 박람회장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예쁜 색감과 형형색색의 과일이 올라가 있는 카사타는 리코타 치즈(ricotta)를 기본으로 풍부한 과일들이 들어가는 달콤함에 한번 맛보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시칠리아 구역에서 또 시선을 끄는 부분은 바로 패키지 디자인이었다. 시칠리아 음식을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저장 방법으로 포장된 재료들이 중요하다. 과거의 병의 입구를 코르크 마개로 막고 촛농을 부어서 밀폐하는 통조림의 초기 방식을 활용하던 것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각각의 상점의 특성을 가진 모던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다른 제품들과 차별화된 브랜드들이 인기가 많았다. 음식의 맛과 역사와 전통으로만 승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비슷한 제품들을 어디서든 구할 수 다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차별화와 미적인 아름다움에서 나온다. 이를 통해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것을 잘 드러내는 피에몬테(Piemonte) 지역의 한 제품이 시선을 끌었다. 토리노(Torino)를 주도로 가지고 있는 피에몬테 지역은 벼농사와 낙농업, 임야 사업이 중심이 되는 프랑스 쪽 알프스와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탈리아의 식문화는 쌀 문화권과 파스타 문화권으로 나누어지는데 위에서 살펴보았던 파스타가 처음 시작된 시칠리아 중심의 남쪽을 파스타 문화권으로, 북부의 피아몬테 지방을 중심으로 쌀 문화권으로 분류하고 있다. 피아몬테에서 생산된 다양한 종류의 쌀과 레시피 등의 정보를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이미지화 시켜서 사람들이 쌀을 고를 때 다양한 정보를 쉽게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제품이 기억에 남았다.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송로버섯(트러플) 중에서도 이탈리아 북부 피아몬테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트러플(white Truffle)이 가장 유명한 종류 중에 하나이다. 트러플은 야성적 숲의 향기를 가지고 땅속에 숨겨져 있는 데다 인공재배가 되지 않고 생산량도 적어 희소성과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러한 트러플을 주축으로 하는 임야 생산물과 다양한 목공 제품들이 남부 지역의 생산품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아티자노 인 피에라 박람회’를 통해서 도시의 사람들은 다양한 지역의 상품을 만나 보면서 각기 다른 지역의 문화를 경험하며, 이탈리아 곳곳의 다양한 제품들을 즐기고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오늘날 산업의 구조가 발달하고 소비의 형태가 변화하였다고 하더라고 농업과 제조업의 다양한 제품들은 한 국가의 경제 구조를 유지하고 산업을 발달시키는데 기본이 되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장인들이 인정을 받고 소규모의 생산자들은 계속해서 전통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이를 이탈리아 문화의 전반을 구성하는 한 축으로 여기는 부분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나 그 의의가 전통에 배경을 두고 있더라도 앞으로의 그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대에 맞는 새로운 변형과 시도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새로운 콜라보레이션이나 또 다른 방향으로의 발전은 매우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현대적인 패키지 디자인이나 새로운 디자이너들과 장인들과의 연대를 통한다면 젊은 세대들이나 글로벌 마켓으로의 확대가 가능해지고 다양한 이탈리아 브랜드와 장인 그리고 이탈리아 곳곳의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조금씩 더 현대적인 색채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사진_ 손민정 밀라노 통신원(smj91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