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미술사가·디자인 칼럼니스트 | 2018-01-30
우리나라에선 올 겨울철 유독 큰 화재와 건설현장 안전사고가 많다. 크리스마스 직전 충북 제천시에 있는 한 큰 피트니스 스파 건물에서 난 화재에서 30명 가까이 생명을 잃었고, 크리스마스 당일 수원 광교의 한 대형 건물 건설현장에서 크레인 붕괴와 화재가 일어나 건설인부들이 부상을 당했다. 엊그제 밀양의 한 종합병원에서 화재가 일어나 40명 가까이 숨졌고 전국 전통시장 여러 곳에서도 크고 작은 화재가 끊이질 않는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기온이 급강하하자 수도관 동파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인간에게 유익하게 활용되어야 할 불과 물이 재앙의 불씨가 되는 것은 왜일까?
수많은 사상자와 재난을 부르는 안전사고는 더할 나위 없이 악화된 상태 속에서 여러 가지 악재 요인들이 한꺼번에 겹겹이 갖추어진 순간(perfect storm)에 터진다. 런던 서부에서 작년 6월에 발생한 24층짜리 그렌펠 타워 아파트 화재 사고는 소방관 250명과 소방차 70대가 동원된 3일간의 진화와 구조작업에도 불구하고 70여 명이 사망하고 130여 명이 실종된 대참사다. 고층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비상계단 통로가 하나뿐이었다는 점, 가스관이 방화제 마감 없이 노출된 채 방치됐었다는 점 그리고 고층 건물 구조에 가연성 높은 건물 외장 자재를 쓴 것이 화재를 더 걷잡기 어렵게 번지게 했다. 대체로 그러하듯, 건설 토목 대참사는 예산 부족과 비용 절감을 핑계 삼아 건물 안전 규제가 느슨해지고 안전 관리와 정비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발생한다.
건물 안팎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재정된 건축법은 일찍이 인류 고대 문명의 태동기부터 있었다. 그 인류 최초 건축법의 예는 약 4 천 년 전 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에 나타나 있는데, 집이 무너져 사람이 죽으면 그 집을 지은 건축가와 목수를 사형에 처해 벌했다. 그런가 하면 구약 성서 속 ‘신명기(Book of Deuteronomy)’에는 아예 건물벽과 지붕이 만나는 건물 난간을 반드시 설치해서 건물 무너짐을 방지하라는 건축 지침을 명시해 놓았다. 그럼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와 중세를 포함한 근대기 이전의 인류 역사 속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과 거리는 잦은 전쟁 때문 외에도 오밀조밀 밀집해 지어진 수많은 건물과 벽, 그 사이사이로 난 꼬불꼬불하고 비좁은 거리, 화재에 약한 자재(예컨대 목재나 지푸라기)로 인해 자주 화재와 파손 피해를 입었다. 그렇다 보니 과거 인류 문명 속 인간들은 소 잃은 뒤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주로 큰 사고나 재난을 겪고 많은 사상자를 낸 후에야 비로소 방지책을 강구했다. 특히 1631년 보스턴 대화재, 1666년 런던 대화재, 시카고 대화재 같은 대사고가 전환점이 되어 미국과 유럽에서는 건축 자재로 초가지붕과 목조 굴뚝을 불법화하기 시작하는 등 건축 물 안전과 관련된 규제 법안이 생겨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근대 이전 과거 유럽에서 15살부터 집짓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는 도공은 20살 즈음이 되면 직업적 도편수로 일할 수 있었고 건물 짓기와 디자인 사이의 구분도 없었다. 19세기와 20세기 근대기를 거치면서 건축가라는 전문 직업이 탄생하며 건설과 디자인이 분리되고 건축가가 건물의 미적·예술적 측면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래서 근대시대의 이상적인 건축가란 건축물이 지어지기까지 관여되는 법적, 기술적, 문화적 전문지식을 두루 갖춘 건설 총감독 역할을 할 수 있는 자, 그리고 건설규제와 관련된 시행법, 시공기술, 건축 재료에 대한 지식에 두루 정통하고 지역 특수 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통찰하여 건축으로 반할 줄 아는 르네상스적 소양을 갖춘 자였다 하겠다.
근대 시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정부 행정처가 주도되어 건축가, 토목, 배수 및 전기난방 관련 설비 업계가 새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규, 규칙, 준수 사항 등 일체의 건설 규정(Building code)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의 경우, 각종 표준화된 건축법과 건물 규제 지침은 1930년도부터 ‘사회적 약자로서 시민’의 안전과 보호를 목적으로 제정·시행되었다. 예를 들어 과거 유럽 역사주의풍 건축물에 즐겨 지어졌던 계단 디자인이 안전을 이유로 현대 건축에서 사라진 경우다. 특히 1990년대부터 계단 디자인에 대한 국제적 안전 조치가 엄격해지자 과거 전통 건축에서 극적인 조형요소로써 설계되던 계단은 보일러실과 다름없는 순수히 기능적이고 주변적 서비스 공간으로 퇴화해 일부 건축가들이 아쉬워했다.
건축 안전 법안과 규제 덕분에 일상생활 환경 전반은 안전도가 높아지고 사고도 많이 줄었다. 무조건 안전을 내세운 건설 규제를 불만스러워하는 일군의 건축가들도 생겼다.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는 2013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행사에 출품한 현대 건축 사례 연구를 통해서 창문의 크기, 지붕 각도 계단의 깊이, 조명 스위치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과하게 심하고 많은 건설 안전 법규가 건축가의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만사 구석구석에 경고판과 울타리가 너무 많아지고 자녀 활동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헬리콥터 부모들로 들끓는 과잉보호의 사회가 되지는 않았는지, 또 안전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자립적인 개인은 사라지고 모든 웰빙과 불상사를 정부와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문화도 만연해졌다.
건축가들은 ‘오늘날 자유로운 건축 구상은 종이 냅킨 위에서나 가능하다’는 진담 섞인 농담을 하곤 한다. 건축가들이 착상하고 설계한 건축물 디자인을 실제 건물로 실현하기까지 제약이 많고 공상으로 끝나는 일도 많다는 말이다. 오늘날 유럽의 웬만한 국가에서 건축가들이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100~200개 조항에 추가 규율이 따른다고 하니 건축가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전에 법 조항의 무게에 짓눌릴 만도 하다. 글로벌화·보편화된 국제건축법, 연방정부, 지방관청이 각각 지정한 법률, 법령, 지침, 기준을 모두 지키면서 건축가의 창조적 자유를 다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건설 규제와 규율로 인한 제약이 오히려 창조적 감을 자극하고 혁신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 모더니즘 건축 천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20세기 미국 중세기 까다로운 건축적 규율을 비웃듯 태평양 바다, 펜실바니아주 베어런 폭포수, 영국 브리스톨 호수 등 자연을 배경으로 해 캔틸러버 공법으로 건축적 장관을 실현시켰다. 그런가 하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LA 디즈니 콘서트홀을 설계한 현대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는 매 건축 프로젝트에 임할 때마다 주어진 지역과 환경의 제약 및 건설 규율을 먼저 파악한 후 설계를 시작한다고 한다.
현대 거장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는 ‘“형태는 이윤을 따른다”가 우리 시대 미학적 원칙이 되었다’고 말하며 오로지 영리만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건설과 도시개발 산업을 비꼰 적이 있다. 요즘 건축가들은 스케치와 청사진을 손수 그리는 대신 컴퓨터로 3D 모델링과 렌더링으로 건물 디자인을 산출해낸다. 전 세계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건설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시공이 효율이라는 점 때문에 모듈화된 조립식 건설공법을 채택하여 쉽고 빨리 표준화되고 천편일률화된 건물들을 양산해 낸다. 그래서 오늘날 새로 지어지는 신건물들은 전 세계 어딜 가도 비슷비슷 해졌다.
건축은 훌륭한 비전을 구현할 줄 아는 건축가가 지은 혼이 담긴 공간이 될 것이며 또 그러한 공간은 역으로 거주자를 행복하게 해준다. 안타깝게도 20세기 후반 모더니즘의 국제 양식화 이후 지어진 수많은 신건물은 대형 고층 상자 모양의 기능 위주의 서비스 공간이 되어 부동산 개발업자에게는 이윤, 주택 소유자에게는 투자 대상으로써 거래되고 있다. 건물주, 건축가, 건설업자, 안전 관리담당자가 준수해야 하는 합리적이면서도 엄격한 법규 제정과 표준화 정책이 제도화되어야 함은 두 말할 것 없는 잔소리다. 덧붙여서 이제는 부동산 구매자나 건물 이용자들이 건물의 안전 요건과 정비관리를 건축 및 건설업계에 적극 요구하고 그에 대한 준수 여부를 부동산 자산의 가치와 매매가격에 반할 때가 되었다.
글_ 박진아(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