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2
우리나라만큼 아파트를 선호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부족한 주택을 해결하기 위해 지어졌던 아파트는 여전히 바쁘게 건설되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아파트로 뒤덮힌 새로운 풍경으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의 삶도 변화했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우리는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아파트가 만들어낸 특수한 문화를 경험하며 살고있다. 그것은 건설, 분양, 청약과 같이 아파트에 입성하기 위한 작업부터 층간소음, 관리비 고지서, 가깝지만 무심한 이웃 등 아파트에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것들이 될 수 있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 비슷한 환경을 갖는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특색이 있다. 그중에서도 노원구 상계동 신시가지는 1980년대 신군부 정권 시절 인구급증에 의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하에 계획된 대규모 공동주택 프로젝트였다.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강남, 과천 신시가지보다 규모가 크고 불수사도북(불암, 수락, 사패, 도봉, 북한)산으로 둘러싸여 수려한 자연 경관을 지닌다. 상계 신시가지의 준공 3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2017 서울 포커스 [25.7]’전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아파트라는 공간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삶을 말하고 있다.
상계 신시가지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위치한 곳으로 ‘2017 서울 포커스 [25.7]’은 노원 지역의 아파트 커뮤니티에 포커스를 둔 전시다. 전시명의 ’25.7’은 공동주택에서 세대의 소유자가 독점으로 사용하는 전용면적인 25.7평(85m²)을 뜻한다. 1972년 박정희 정부의 ‘주택건설촉진법’에 의한 국민주택 저액의 일환이자 4~5인 기준에 맞춰진 ‘가장 보편적이고 표준적인 면적기준’으로 상계 신시가지는 이를 기준으로 설계됐다.
상계 신시가지의 주거사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을 탐구하는 이번 전시는 신도시를 이루는 지역생활권의 상업시설, 학군 등의 인프라 연구를 통해 아파트 공동체 커뮤니티의 주거 생태계를 파악하고, 아파트 단지의 전용면적과 공용면적 등 내외부의 분할된 세계 속에서 장소에 대한 의미를 찾는 아파트 키드의 시선을 관찰, 그 의미를 추적한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상계동 재개발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김성수 작가, 도시에서 발생하는 모순에 관심을 갖고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대단지 아파트의 미래를 고민하며 뉴타운으로 해체되어가는 도시의 모습을 담은 감독들을 만난 시각 디자인·영상 그룹 리슨투더시티, 디자인 리서치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의 다채로운 문화 현상을 응시하고 그 결과를 지도, 공간구조물, 설치작업 등으로 시각화한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인터넷에서 정보를 취하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아파트 키드’가 그리는 이 시대의 풍경화를 선보이는 추미림 작가 등이 참여하여 상계 주공아파트의 역사적, 장소적 특징을 배경으로 아파트 문화를 영위하는 베이비붐세대의 삶의 특징을 조망한다.
2부에서는 도시 풍경의 스펙타클로 아파트를 다루는 곽이브 작가, 획일화된 아파트의 공간 규모에 맞게 제작된 인테리어 가구들을 추상적인 조형 요소로 활용하는 최고은 작가, 엑스포가 온 국민의 화두였던 시대, 대전의 엑스포 아파트에 거주했던 작가의 경험을 선보이는 김웅현 작가, 에코세대가 부모세대와 갈등을 빚으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선보이는 조익정 작가 등이 참여, 대도시의 아파트 생태계에서 나고 자란 에코세대의 시선으로 아파트의 조형적, 서사적 위치를 가늠한다.
우리를 둘러싼 아파트와 그 안에서의 삶은 새로운 생각과 시선을 가져다 주었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을 떠나 아파트는 우리의 모습이 되었다. 아파트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017 서울 포커스 [25.7]’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3월 11일까지 열린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