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우 | 2018-03-16
보이지 않는 실체를 언급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더욱 난해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리 즉, 사운드(Sound)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일상에서 듣는 소리들, 거리의 소음, 올림픽의 환성, 카페의 찻잔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고요한 숲의 빗방울 소리…. 소리는 참으로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으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 보이지 않는 소리를 디자인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사운드 디자인 에이젼시 라쟈(Radja, www.radja.se)는 스웨덴 말뫼(Malmo, Sweden)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북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기업들과 사운드 디자인 및 오디오 브랜딩에 관련된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오고 있다.
*Radja studio 소개: “Sound affects you more than you think”
필자가 근무했던 기업들도 사운드 디자인 부서가 별도로 있어서 간접적으로나마 이 분야를 경험해 볼 수 있었는데, 휴대폰 벨 소리라든지 온·오프 사운드(on & off sound), 냉장고 문 개폐시 흐르는 웰컴 사운드(welcome sound) 등 세심한 부분의 작업을 통해 사용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상당히 매력적인 부서로 기억하고 있다.
반갑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회사소개를 부탁한다.
만나서 반갑다. 사운드 디자인 스튜디오 라쟈를 운영하고 있는 마틴 할버그(Martin Hallberg)다. 현재 글로벌 기업들의 오디오 브랜딩(Audio branding) 및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이 바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을 두고 있으며, 2004년 회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수많은 기업들의 브랜딩을 돕고 있다. 이와 동시에 오디오 브랜딩 아카데미(Audio branding academy)를 운영하며 다양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어떤 계기로 사운드 디자인이라는 특별한 분야에 일하게 되었나?
어린 시절부터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어서인지 몰라도 음악을 많이 들으며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법을 배워왔고, 스스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처음엔 뮤지션, 극장 음악 설치, 무비 관련 사업, 광고 관련 작업들을 많이 해왔다. 스웨덴 말뫼로 옮긴 후 보다 직접적인 환경에 적용되는 사운드 디자인 작업을 해오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특별한가?
주로 기업과 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사운드라는 무형의 결과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사운드 데커레이션(sound decoration) 작업은 음악과 환경소음을 적절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그곳의 배경으로 흐르게 하는 특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운드는 개개인의 헤드폰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에 배경 음악처럼 흐르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운드 디자인의 경우 항상 주변 환경을 고려하는 섬세한 디자인 작업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숲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 푸르름에 대한 색감들, 그리고 평화로움에 대한 감성적 경험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환경으로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흡사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타이포 그래픽이나 비주얼 보이스 디자인과도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영감을 얻고 프로젝트에 적용시키는가?
그것은 마치 브랜딩 프로세스(branding process)와도 유사하다. 협업하는 브랜드의 기본적인 정보를 비롯해 역사, 사회적 평판, 가이드라인 등을 통합, 취합한 후 사운드의 영역으로 트랜스폼 한다. 이제 사운드는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닌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코카콜라, 맥도날드, 인텔 등의 브랜딩이 하나의 좋은 예이다. 그들의 고유한 사운드만 듣고도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인지하고 떠올리게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는다면?
스웨덴 논쇼핑(Jönköping) 지역의 에이시스 쇼핑몰(Asecs Shopping Centre)의 사운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사운드 스케이프라는 특수 장비를 사용했으며, 쇼핑몰 지붕에 대형 스피커 3개를 치밀하게 설계 후 설치, 소리의 스펙트럼을 확보한 뒤, 그곳에 흐르는 배경음악의 리스트는 상당히 다양한 관점으로 시도해보았다. 가령 거리의 스트리트 뮤지션의 음악을 모아 작업하여 적용하기도 하고, 코펜하겐 중앙역(Copenhagen central station)의 공간을 녹음한 사운드를 재생함으로써 방문객들에게 익숙하며 친숙한 소음을 경험시켜주기도 했다. 화장실의 공간에는 뉴욕의 지하철에서 녹음한 색소폰 연주를 흐르게 함으로 언더그라운드의 느낌을 주어 다양성을 꾀했고,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안내 멘트 사운드까지도 디자인의 영역으로 설정하고 작업했다.
특히 쇼핑몰 프로젝트의 경우, 그 공간의 흐름을 먼저 리서치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공간과 혹은 스쳐가는 구역, 약속 장소로 만나는 구역 등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연구한 후, 각 공간의 음향을 디자인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사운드의 템포라든지 음향의 크기, 비트의 흐름 등이 그 공간 특성에 맞도록 적용되는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방문객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오래 머물게 되며 재방문하게 되는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운드 스케이프(Sound scape): 소리의 풍경화 즉, 자연적인 그리고 환경적인 소리들, 다른 말로 '소음'을 녹음하고 조합하여 만들어내는 음악이다. 작곡 방식의 음악보다는 여러 환경적 요소에서 이를 리코딩하고 재배열하여 공간감을 확보하는 음향에 가깝게 보인다.
한가지 더 예를 들자면 스웨덴 남부의 소피에로 공원(Sofiero place)의 사운드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는다. ‘스피킹 트리(Speaking tree)’라는 주제로 진행됐는데 5개의 나무에 스피커를 설치해 나무 자체가 스피커의 울림통 역할을 하게 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용자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그것도 숲속 한가운데서. 바로 진동을 보내 소리를 전달하는 테크놀로지가 활용됐는데 이는 나무가 전통적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훌륭한 소재이며, 음향도 깨끗하고 좋기에 가능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마이타운(MyTown in Kuala Lumpur) 프로젝트
그동안 작업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도전이 되었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사운드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장면에 흐르는 사운드보다는 등장인물의 움직임과 대화에 더 집중하게 되므로 사운드 자체를 어필하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세심하게 디자인된 사운드의 향은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쇼핑몰의 경우 릴랙스 한 사운드가 흐르는 공간에 사람들이 좀 더 머무르는 경향을 보이며, 이러한 공간에 소파나 의자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배경음악에 따른 유동인구의 흐름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는 쇼핑몰 특정 공간에 좀 더 머물게 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사운드 디자인 분야를 언급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는 무언가에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가령 적당한 소음이 있는 카페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특정 공간을 더욱 풍부한 에너지로 채워주는 사운드 데커레이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라이브러리 이펙트(library effect) 등이 있다.
최근 기업들이 투자하고 있는 오디오 브랜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서 언급한 인텔, 코카콜라, 맥도널드, 노키아 등의 사운드 브랜딩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뇌리에 스며들게 된다. 모든 브랜드는 이 분야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 분야는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브랜드 자체의 인식을 심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 문을 열었을 때 운전자를 인식하고 흐르는 고유의 웰컴 사운드도 최근 들어 적용되는 오디오 브랜딩의 좋은 예시이다.
소리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운드는 철저하게 사용자의 경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흡사 조명 디자인(lighting design)과도 유사하다. 과거에는 조명 자체에 그 목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컬러, 톤 모든 것이 사용자의 경험을 만든다. 원하는 경험을 정하고 하드웨어를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집이나 사무실 공간을 알맞은 사운드로 꾸미기 위한 팁을 준다면?
먼저 오피스는 조금 환경이 다르다. 개인에 따라 다른 작업 환경 제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방문객이 많다면 그 기업의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한 메모러블 사운드(memorable sound)의 제공도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개인 공간인 집에서는 항상 음악만이 최선의 사운드 디자인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환경이 주는 적절한 소리들과 적막함, 때론 부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소음들이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사운드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다양한 음악 장르를 듣고, 사운드 디자인을 훌륭하게 활용한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아트와 사운드 디자인의 차이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운드 디자인은 항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피고 그에 따른 정확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프로젝트로 확장시키는 것을 추천한다. 유튜브(Youtube), 비메오(Vimeo), SNS 등의 소셜 네트워킹이 활발한 지금이다. 어디서든 기회는 오픈되어 있다.
쇼핑몰 사운드 디자인에 관한 소개영상(앞서 언급된 대부분의 사운드 디자인 작업들은 시각화에 한계가 있으므로, 직접 접속하여 프로젝트 예시들을 확인해보길 추천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하다
이들은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여 많은 대중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하며, 이 일련의 작업들을 지속하고 있을까. ‘무형의 것’을 기업의 매출 혹은 마케팅 요소로 채택하여 적용시키는 것은 상당히 난해하고 접근하기 까다로운 과제로 보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그만큼 디자이너 스스로에겐 모험이기도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시각화, 비주얼이 전부인 디자이너에게 무형의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사회와 문화 흐름의 방향은 경험과 스토리, 그리고 공감이라는 단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지금의 우리들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필요한 것을 취하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경험을 동반하고 우리는 그 경험이 주는 스토리에 공감하고 만족하게 된다. 결국 단순한 한두 가지의 요소가 아닌, 통합적인 접근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시대인 것이다. 사운드 디자인의 영역은 이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이미 해오고 있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공간에 스며들어 있었을 뿐, 그곳에 사운드는 어떠한 형상으로든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수치화하여 적용하는 작업들도 함께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가령 사운드 디자인이 적용된 공간과 미적용 공간의 방문객이 머무는 시간, 경험의 만족도와 재방문의 여지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방법으로 결과를 수치화하고 빅데이터 화하여 순환 적용하는 방식이다.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운드, 즉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일상 속에서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던 어떤 요소들이 누군가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에게 확연히 다른 경험을 선사해 준다면 정말 선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디자인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하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눈치채지 못하게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멋진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글_ 조상우 스웨덴 Sigma Connectivity사 디자인랩 수석 디자이너(sangwoo.cho.0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