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2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밝은 에너지, 싱그러운 느낌. 마치 신선한 야채를 만지고, 산뜻한 꽃향기를 맡을 때의 느낌이랄까. 생생하고 밝은 그 감성은 칙칙했던 마음을 화사하게 밝혀주었다.
세라믹 디자이너 구세나의 작품은 기운을 솟아나게 하는 봄처럼 다가왔다. 그의 작품은 낯익은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레몬, 브로콜리, 배추, 꽃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언제 보아도 기분 좋은 것들이다.
싱싱한 야채들은 생기 있는 색감과 그 풋풋함으로 활기를 주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을 만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다. 방전되기 직전의 상태에서 급속충전을 받는 듯한 느낌.
구세나 디자이너는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새로운 도예를 꿈꾸며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 왕립 미술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 레몬으로 레몬을 짜는 ‘레몬 스퀴저’를 만들면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답을 찾았다.
지난해는 그가 대학원을 졸업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찾은 자신만의 색은 어떤 색일까. 특유의 산뜻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레몬, 브로콜리, 새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작업을 하시는데요, 어떻게 이런 소재들을 사용하게 되셨나요?
자연물을 좋아해요. 꽃 시장 가는 것도 좋아하고 자연물의 형태를 관찰하는 걸 좋아하죠. 일 외에 유일한 취미생활이기도 하고요. 영국에 있을 땐 자연사박물관이나 꽃 정원에 가서 관찰을 많이 했는데, 아름다운 색감이나 형태나 촉감을 작업으로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런 아름다움을 많이 잊고 살잖아요.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면서 잊고 있던 감성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작업하게 됐어요.
시작은 도자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는 생각에서부터 였어요. 학부 때 도자기는 왜 항상 이렇게 생겨야 할까, 컵은 왜 원심력에서 나온 그런 형태여야만 할까, 도자기로 다른 것을 표현할 순 없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영국에 가서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자연물을 접목했죠.
영국 왕립 미술대학원 졸업 직후부터 큰 관심을 받으셨죠? 어떤 작업들을 하셨나요?
졸업쇼 때 많은 연락을 받고 폴스미스 콜라보, 콘란샵 전시 등 여러 기업 및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하면서 세라믹 디자이너로 알려졌어요. 디자인페어에 참여하고 유명 컬렉터들로부터 연락을 받아 이탈리아에서 작품을 선보이면서 유럽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됐죠.
최근 구호(KUHO) 한남 플래그십스토어에서 전시가 열렸는데 전시의 주제가 무엇이었나요?
전시의 제목이 ‘걸어.봄.’이었어요. 구호의 이번 시즌 콘셉트가 ‘산책’이었거든요. 저도 산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함께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꾸며보고 싶어서 공간의 중앙을 무대처럼 만들고 새와 꽃으로 상상 속에 있는 자연의 느낌을 연출했어요. 사람들이 함께 걸어볼 수 있도록요.
카펫 등 패브릭 작업도 선보이고 계시죠?
소재 자체가 따뜻한 소재라 흥미로워요. 상해에서 쇼케이스를 한 적이 있는데 중국의 한 업체와 협력을 맺어 제 작업 패턴으로 가방이나 카펫 등을 만들고 있어요.
1월에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셨고,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에서도 전시 중이신데 두 전시의 차이가 있다면요?
롯데 영등포 전시에서는 AR 증강현실을 이용해서 작업을 보여주었어요. 사람들이 패턴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면, 롯데 에비뉴엘에서는 저의 메인 컬러인 옐로를 최대한 많이 썼어요. 3, 4월에 열리는 전시라서 옐로의 기운을 느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올해가 개띠 해라서 개 패턴을 만들어 메인 작업을 했고 장소의 특성상 이미지 작업을 많이 선보였어요.
도자기와 AR이라니, 흥미로워요.
새로운 것들에 항상 관심이 많아요. 도자기에만 국한하지 않고 공간을 꾸미거나, 다양한 방법들을통해서 저의 색깔을 좀 더 보여주고자 해요. 새로운 기술이 있으면 알아가려고 하고 그걸 사용해서 새로운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늘 관심 갖고 있어요.
메인 컬러가 옐로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영국에서 졸업전시 때 주목을 받았던 작업 중 하나가 ‘레몬 스퀴저’예요. 레몬으로 레몬을 짜는 콘셉트로 작업을 했는데 레몬이 밝은 노란색이다 보니 사람들이 저 하면 노란색을 떠올리더라고요. 전 노란색과 함께 골드도 좋아해요. 어떤 생명이 탄생하거나 해가 떴을 때, 그런 분위기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깔이 노란색, 황금색이잖아요.
소재 선정은 어떻게 하시나요?
전 사물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렇게 관찰을 하다 보면 상상을 하게 만드는 형태가 있어요. 어떤 꽃술 같은 경우에는 콩나물같이 생기기도 하고, 또 어떤 건 도깨비방망이 같은 것도 있고요. 콜리플라워를 참 좋아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그 안의 형태들이 참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 같아서예요. 구름 같기도 하고 양떼 같기도 하고요.
또, 꽃들을 보고 관찰하다 보면 형태나 색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어쩜 이렇게 예쁠까 하는 생각이 들면 항상 사진을 찍어두죠. 그런 것들이 자료가 되고 언젠가 작업으로 표현이 되더라고요.
작업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으실 땐 무얼 하세요?
꽃 시장에 가거나 산책을 해요. 걷는 걸 좋아해서 걸어 다니면서 일상을 관찰해요. 역시 자연에서 답을 찾는 것 같아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자연물 자체의 촉감을 이용할 땐 최대한 텍스처를 살리기 위해 실제 자연물의 몰드를 떠요. 거기서 형태 변화를 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연물에서 봤던 형태적인 느낌을 나름으로 해석해서 모델링을 하고 그걸 다시 다듬고 계속 수정해 가요. 심플해 보이지만 손이 참 많이 가요.
일러스트레이터나 라이노 3D 프로그램도 많이 활용해요. 그래서 손으로만 낼 수 있는 형태는 손으로 만들고 3D 프로그램으로 했을 때 더 효과적인 것은 3D로 하면서 항상 그 밸런스를 잘 맞추려고 하죠. 너무 한쪽으로만 치중하고 싶진 않아요.
작업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요?
형태감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써요. 저만이 낼 수 있는 형태감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형태는 기본, 바탕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색이나 패턴 등을 잡으려고 노력을 해요. 결론적으로 두 가지의 밸런스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역시 ‘레몬 스퀴져’예요. 저를 처음으로 알려주기도 했고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가장 많이 담겨있는 작품이기도 하거든요. 앞으로의 방향 때문에 가장 고민을 많이 하다 만든 작품이었던 만큼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고요. 작품이 완성됐을 땐 사람들이 “딱 너 같다(Very you)”고 했어요. 최고의 칭찬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라서 만들 수 있는 것, 그런 게 좋아요. 유머도 있잖아요. 레몬 모자를 쓴 것 같은. 여러 가지로 저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감이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같이 즐기고 행복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들에게 밝은 기운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유년시절에는 사소한 것도 되게 재미있어 하고 그러잖아요. 별것 아닌 것도 신기해하고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것들이 다 친숙한 것들이 되고 새로운 자극을 주진 않는 것 같아요. 제 작품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생활 속에서 그런 동심을 느끼실 수 있었으면 해요.
도자기에 대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충분히 흙으로도 다양한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충분히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리빙숍과 콜라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고요, 전시 때문에 잠시 미뤄졌던 3D 출력을 이용한 도자 작업 연구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에요. 좀 더 따뜻한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어요.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구호, 구세나(senagu.com, instagram.com/senagu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