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6
영화를 보면 수많은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로 CG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효과를 주고, 영화를 보는 재미는 더욱 커져간다. 특히 3D 애니메이션이나 VFX 영화에서는 이러한 기술이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과거엔 컴퓨터를 다루는 스킬만 좋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CG의 효과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과정이 있었다. 바로 프리비즈/레이아웃이다.
김아름 디자이너는 현재 캐나다에서 프리비즈/레이아웃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러 애니메이션들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한국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애니메이션 영화의 시네마토그래피에 감명을 받아 마침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기까지,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Sony Pictures Imageworks)에서 시니어 프리비즈/레이아웃 아티스트(Senior Previs/Layout Artist)로 일하고 있는 김아름입니다. 그전에는 애니멀 로직(Animal Logic)과 더 서드 플로어(The Third Floor, Inc) 같은 회사에서 다양한 영화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프리비즈/레이아웃 아티스트는 어떤 일을 하나요?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3D 애니메이션, VFX 영화의 CG에서 촬영감독과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가장 근접하게 이해하실 수 있어요. 최근 영화의 CG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할리우드에서는 빠질 수 없는 영화 제작 과정의 하나로 점차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부서이기도 해요.
제가 하는 일은 대부분 영화의 감독, 슈퍼바이저, 에디터와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스크립트, 스토리보드를 어떻게 영상화할지 가장 처음 디자인하는 작업이에요. 카메라를 통해 화면의 구도를 잡고 캐릭터, 이펙트, 조명 등을 제작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잡아보는 영화의 블루프린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영화학과를 졸업하신 후 어떻게 지금의 일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한국에서 영화학과에 재학하던 중 다양한 영화제들에서 신선한 해외의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당시로서는 아직 국내에 드문 분야이었던 3D 그래픽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미술이나 애니메이션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책과 인터넷을 통해 어렵게 정보를 찾던 중 프리비즈/레이아웃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게 CG 영화에서의 시네마토그래피라는 것을 깨닫고 이걸 꼭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당시 픽사의 〈인크레더블〉이나 드림웍스의 〈쿵푸팬더〉와 같은 영화의 시네마토그래피에 큰 감명을 받았던지라 미국 유학을 통해 이 분야를 더 배워보기로 결정했고 자연스럽게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UCLA 대학 영화학과 석사과정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현업에 종사 중인 여러분들과 만날 기회도 얻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졸업 후 제가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셨나요?
2017년 초 소니에서 영화 〈스파이더맨〉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팀을 꾸리는 중이었는데, 그동안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워낙 재미있게 보았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바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 심사와 인터뷰를 통한 일반적인 과정을 통해 입사하게 되었어요.
프리비즈/레이아웃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작업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영화를 제작할 때 대본 작성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나면 감독은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2D 스케치로 옮기게 됩니다. 그 후 프리비즈/레이아웃 아티스트들이 개입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저희가 하는 일은 스토리보드를 보고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3D 입체공간 속 영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이때 3D 세트(set) 내부에서 로케이션 스카우트를 하고 화면 구도를 잡기 위해 카메라 렌즈 선택 및 카메라 배치, 3D 캐릭터와 프랍(prop)을 배치하게 돼요.
애니메이션 영화의 경우 레이아웃에서 카메라를 잡고 나면 그 후 다른 부서들이 그 위에 애니메이션, 조명, 이펙트 등을 더해가면서 영화의 장면들을 완성해 가요. VFX 영화의 경우에는 감독이 프리비즈(pre-visualize) 작업을 통해 촬영 계획을 세우게 되죠.
특히 CG의 비중이 높은 영화일수록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데, 예를 들어 현장에서 실제로 촬영하는 부분이 그린 스크린과 배우뿐이고 그 외 CG 캐릭터, 배경 등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 프리비즈가 감독의 아이디어를 실체화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작업한 프리비즈를 통해서 감독은 시각 자료를 가지고 현장 스태프 및 배우들과 더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고 촬영 이후 VFX 아티스트들에게도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게 되죠. 이 때문에 십여 년 전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리비즈/레이아웃은 CG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최근 영화의 트렌드와 함께 영화제작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어요.
가장 중요한 작업과 가장 어려운 작업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작업은 역시 감독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카메라는 감독에게 소설가의 펜과 같은 도구이기 때문에 감독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찍어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고, 저희들은 그들의 비전을 찾아내어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이러한 감정을 전달하려면 어떻게 찍어야 할까를 수 십 번 고민해야 하고, 그만큼 다른 부서와 비교해도 수정 및 변경이 가장 많은 부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또 그래서 재미있는 작업이죠. 제가 이 분야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예요. 이야기와 영상을 연결하는데 있어 가장 최전방에 있는 부서이기 때문에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직접 손댈 수 있다는 부분에서 아무리 어려운 프로젝트라도 항상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실 때 본인만의 노하우나 특별한 방식, 스타일 같은 것이 있다면요?
시퀀스를 할당받은 후 감독과의 회의를 마치고 나면 일을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을 적어보는 편이에요.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의 좋은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 작업계획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부서 특성상 빠르게 결과물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질문을 하는 편이기도 해요.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또 그 아이디어가 영화에 반영되기도 하나요?
네. 프리비즈/레이아웃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분야예요. 때때로 영화의 감독이 이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명확하게 알지 못할 경우 저희들은 다양한 해결책 및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되죠. 할리우드 영화감독의 일은 자신의 머리에서 모든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스태프들의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해요. 저희들은 감독의 비전 아래에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각자의 전문 영역 내에서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이죠. 따라서 일주일에도 몇 번씩 있는 감독과의 회의는 수직적 명령보다는 수평적 상호작용에 가까운 시간이에요.
일을 할 때 감독, 슈퍼바이저 등과의 관계가 중요할 것 같아요.
아티스트의 일은 감독과 슈퍼바이저의 비전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고 그들이 만들고 싶은 영화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매우 중요해요. 따라서 감독이 신뢰할 수 있고 함께 일하기 편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비판도 수용하는 유연한 자세, 강도 높은 업무환경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긍정적 자세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땐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물론 일을 하다 보면 때론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장면과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장면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감독이 원하는 버전과 내가 생각하는 좋은 버전을 준비한 후 브리핑 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죠. 하지만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감독이고 저도 그 부분을 수용하게 돼요.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영화가 딴 길로 새지 않고 한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감독의 비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동안 어떤 작업들을 하셨나요?
〈스몰풋(SMALLFOOT)〉, 〈레고 무비 2(The Lego Movie Sequel)〉, 〈레고 닌자고 무비(The Lego Ninjago Movie)〉,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Power Rangers)〉을 작업했었고, 지금은 올 12월 북미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에 참여 중이에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졸업 후 가장 처음으로 참여한 작품이 바로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 이었는데요, 촬영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직접 감독과 배우들을 만나 소통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특히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대부분 신인들이었기 때문에 같이 점심도 먹고 뒤풀이 파티에서도 스태프들과 거리감 없이 대화하곤 했었는데, 최근 데이커 몽고메리는 최근 〈기묘한 이야기 시즌 2〉에 등장했고 나오미 스콧은 디즈니의 실사판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로 캐스팅되는 등 그들이 점점 유명해져 가는 것을 보면 당시를 회고하며 응원하게 되네요.
올해 개봉될 영화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올해는 제가 참여한 영화가 두 편이나 극장에 걸릴 예정이에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스몰풋〉인데요, 스파이더맨은 시리즈 중 처음으로 극장판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화예요. 흑인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가 주연을 맡는다는 사실로도 많은 관심을 모았어요. 12월 개봉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스몰풋〉은 빅풋의 관점에서 엮어가는 이야기로, 워너 브라더스 애니메이션(Warner Bros. Animation)의 신작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작업하신 흔적을 느끼려면 어떤 것들을 보면 되나요?
영화를 보실 때 그 카메라를 잡고 찍은 사람이 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화면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보시면 영화 속 저의 고민을 함께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프리비즈/레이아웃 아티스트가 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팀이 구성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3D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사람들이에요. 그중에서도 프리비즈/레이아웃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를 볼 때 시네마토그래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프리비즈/레이아웃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해 주신다면?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는 자세를 잃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술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이 접목된 분야인 만큼 기본적인 시네마토그래피를 항상 숙지하고 새로운 업계의 변화에 유연하게 맞추어가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그들을 대하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해요.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협동해 일해야 하기 때문에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아티스트라도 팀 내에서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은 다음 프로젝트를 구성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어요. 하지만 본인이 하는 일을 언제나 즐겁고 긍정적인 자세로 바라보는 사람은 함께 일하고 싶은 아티스트로 뽑히게 되죠.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우선 지금 당장의 목표는 앞으로 더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많은 사람들과 일하는 거예요. 최근 몇 년간 주로 애니메이션 영화에 참여해왔는데 앞으로는 실사영화 쪽으로도 참여하고 싶고, 현재 제작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들려오는 다른 장르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에도 욕심이 생겨요. 매번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큰 산을 넘는 기분이지만, 동시에 배우고 성장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또한 영화 제작이 북미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여러 나라와 도시들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요.
더불어 프로페셔널로 일하게 된 최근 몇 년 간은 개인작업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올해는 꼭 그 부분도 다시 구상하고 싶네요.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김아름(arem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