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1
일반적으로 디자이너에게 전시란, 대학 졸업 전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회사에 들어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반문하다 보면 어느새 기력이 다해 전시는 한낱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가진 디자이너들은 윗사람이 시키는 일,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일이 전부인 환경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전시는 욕구를 분출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더불어 전시는 디자이너에게 비즈니스를 주선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며, 사교의 장을 마련하는 등 광범위한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에 세계 전시를 돌며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는 디자이너들을 통해 ‘오늘날의 전시’가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기획•글 | 최태혁 기자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각 디자이너들에게 있음(copyright ⓒ by each of designers)
슈타우파허벤츠는 슈테판 슈타우파허(Stefan Stauffacher)와 니콜 벤츠(Nicole Benz)가 2003년 스위스 취리히에 세운 제품 디자인 전문 스튜디오다. 이들은 지난해 <100% 디자인 런던>, 도쿄에서 열린
<디자인 타이드>
와 서울 한가람 뮤지엄에서 진행한
<디자인 메이드>
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유럽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에 참가하고 있다. 최근 ‘아티카(Attika) X 시리즈’가 ‘분데스리퍼블릭 도이칠란트 2008’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2007년 레드돗 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디자인 어워드를 통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www.stauffacherbenz.ch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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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슈타우파허와 니콜 벤츠 | 전시의 이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홍보 범위의 확장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작품을 만드는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대부분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에 비해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같은 스위스 디자이너들에게는 스위스라는 시장이 매우 작기 때문에 세계에 나가 전시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다른 점으로는 미디어의 힘을 들 수 있다. 그들의 도움으로 지난해에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울의 한가람 디자인 뮤지엄으로부터
<디자인 메이드>
에 초청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여러 제한적 요소들은 전시회를 하고 나서 시장에 진출하기까지는 또 다른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런던은 많은 기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장소이지만 많은 제작사까지 만난 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해 참여한 벨기에의 인테리어 비엔날레
<코르트레이크(kortrijk)>
와 도쿄에서 열린
<디자인 타이드>
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도쿄에서는 언어 문제가 있었음에도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몇몇 좋은 제작사와 만나기도 했는데, 현재 우리 디자이너들 중 2명은 이미 일본 제작사와 함께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고, 다른 여러 제작사들도 함께 일하자는 연락을 보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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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트레이크(kortri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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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실험디자인연구소(Hers Experimantal Design Laboratory Inc.)의 디렉터인 무라타 지아키는 2005년 ‘메타피스(Metaphys)’를 설립해 여러 제조사들과 함께 ‘컨소시엄 디자인 브랜드’라는 새로운 형태를
<밀라노 살로네>
에서 처음 선보였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 밀라노, 런던, 도쿄의 각종 전시를 통해 꾸준히 알리고 있으며, 올해 4월에 열리는
<밀라노 살로네>
에서도 메타피스의 신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라타 지아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X 박스 360’을 디자인했으며, 지난해 일본에서 발간된
<제품 디자인의 가타치와 고코로(katachi & cocoro of product design)>
에 일본 10대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www.metaphys.kr
제품>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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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지아키 |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들어간 산요(Sanyo)에서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디자인이 아닌 다른 일만 주어졌다. 그러나 나 역시 디자인 구상뿐만 아니라 디자인 결과물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외부의 디자인 공모전에 지원하며 내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뒤에는 회사를 나와 내 디자인을 선보일 방법을 모색했고 그 답을 전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설립한 메타피스는 일반적인 디자인 회사와 달리 여러 중소기업이 모인 컨소시엄 형태를 이룬다. 예를 들어 진공청소기 ‘유주(Uzu)’는 중소기업 실버세이코와, ‘플랜터’는 또 다른 중소기업 그루만디스와 작업하는 방식이다. 전시를 통해 이러한 컨소시엄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협력 기업과 연결하고,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다.
이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일반적으로 디자인 사무소에서 하는 것처럼 클라이언트와 만나서 제작하는 아이템만으로는 새로운 유통 창구를 개설하기는커녕 괜찮은 숍에 상품을 들이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나 메타피스라는 브랜드 공유 시스템에 많은 제조사가 참가해 유통망을 넓히면 좋은 디자인 제품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전시회에 선보여 많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했다. 또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영업 행위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전시회에서 상품 판매를 위한 홍보에 약하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 내 제품의 기획, 디자인, 브랜딩, 광고 홍보, 판매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에 그 모든 분야를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메타피스의 비즈니스 모델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자인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기업 사정과 시장의 흐름에 민감해야만 하는 나에게 전시는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는 ‘리얼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를 기반으로 하는 아우스 디자인팀(Aws Designteam)의 디렉터 아담 베슬리는 어쿠스틱 기타 ‘마다 케임스(MADA Caimes)’를 가지고 지난해 <100% 디자인 도쿄> 내 유럽 디자인 전시관인 ‘블릭팡(blickfang)’을 찾았다. 그가 디자인한 기타 ‘마다 케임스’는 마섬유와 오가닉 소재로 제작됐으며, 합성수지를 완전 배제해 재활용도 가능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아담은 기타의 핵심인 소리 역시 다른 기타에 비해 월등히 좋다고 설명했다. 또한 스프레이식 몰딩 방법으로 생산하는 등 소재나 제작 방법에서 기존의 것과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웹사이트에서는 ‘마다 케임스’로 직접 연주해 올린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이 또한 디자이너의 사이트이기에 접할 수 있는 재치 있는 장면이다. www.madaguitars.com
아담 베슬리 스비친스키 | 일본은 악기와 관련된 모든 면에서도 전통을 자랑하는 디자인 강대국이다. 따라서 우리의 ‘마다 케임스’를 선보일 첫 장소로 일본의 <100% 디자인 도쿄>를 결정했고, 그것을 통해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사람들이 디자인 전시에서 수제로 만든 최고급 기타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물론 제작자들과 기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판매를 생각했기에 물품 정보 등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었다. 특히 ‘100% 디자인 페어’에서는 오스트리아 디자인 부스에 자리를 잡고 우리의 ‘마다 케임스’를 사려는 사람들이 바로 주문할 수 있게 계약 서류까지 준비해놓았다.
너무 상업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러한 준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유럽의 많은 학교에서는 디자인 제작 방법이나 홍보에 대해 가르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점차 그런 것들을 디자인 수업에 넣기 시작했고, 요즘은 디자인 제작과 홍보에 대해 다루는 디자인 스쿨, 마케팅 스쿨 등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이다.
조이바이멜림은 디렉터인 멜림(Mellim)과 함께 조 케일론(Joe Keylon), 라니 바우티스타(Lani Bautista)로 이루어진 팀이다. 이들은 독자적인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벽지, 베개, 문구류, 유아복 등 환경
친화적인 소재로 만든 상품에 적용시켜 주목받고 있다. 2005년 1월을 시작으로
<캘리포니아 기프트 쇼 2005>
<내셔널 쇼 2005 & 2007>
<버블 뉴욕(buble new york) 2006>
<뉴욕 인터내셔널 기프트 페어 2007>
<100% 디자인 도쿄 2007> 등 10개 이상의 박람회와 디자인 쇼를 통해 꾸준히 자신들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크고 작은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으며, 올해 출간을 앞두고 있는
<디자인 악동들(the devils in design)>
의 첫 페이지에 실림으로써 세계의 톱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www.joybymellim.com
디자인>
뉴욕>
버블>
내셔널>
캘리포니아>
멜림 | 전시는 디자인의 상품화를 갈망하는 디자이너에게 제품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계약을 따낼 수 있게 해주는 시장이다. 따라서 전시에 참여하기 전 그러한 것들에 대한 대비 역시 필수라고 하겠다. 내가 참여한 대부분의 전시회는 ‘트레이드 온리(Trade
Only)’의 성격을 지녔다(사실 그런 전시를 찾아다녔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바이어나 제작자 또는 유통업 관계자를 만나 내 작품이 상품화되는 것과 미디어를 만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만의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해 제작자들로부터 계약이나 호감을 끌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2005년
<캘리포니아 기프트 쇼>
에서 새로운 제품인 ‘그리팅(Greeting) 카드’ 라인을 선보였다. 그 당시 15가지 그리팅 카드를 선보인 후 30명 이상의 리테일러들에게 판매하고, 6달 동안 150개의 디자인 숍에서 나의 디자인 카드를 진열했다.
이처럼 전시는 특별한 매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만약 전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디자이너 개인이 제작자, 바이어, 건축가, 디자이너, 판매자, 기자 등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렇기에 전시라는 좋은 기회를 잘 이용해 자신의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또한 수많은 미디어가 좋은 디자인을 발굴한다는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나 역시 그들에 의해 미디어에 몇 차례 소개되기도 했는데 세 번째 전시를 끝냈을 때쯤인가부터 사람들이 내 작품과 이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이 나의 디자인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같은 전시에 대한 이점들로 인해 나는 언제나 전시에 참여 하는 것이 기다려 진다.
캘리포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