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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세계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01

2008-04-15

제품의 형태는 변하게 마련이다. 자동차는 기술 진보 때문에 형태가 변하고, 패션은 유행의 흐름 때문에 형태가 변한다. 그러나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를 보면 대개 어떤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해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일관된 이미지는 제품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가족 구성원의 얼굴은 각기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이 한 가족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가족처럼, 명품 브랜드의 얼굴은 어떤 때는 제품으로, 또 어떤 때는 매장으로, 또 어떤 때는 광고로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어느 것에서나 그 브랜드의 ‘유전자’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한 브랜드의 이미지에 통일감을 부여하는 수석 디자이너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번 특집에서는 외국 브랜드들의 이러한 수석 디자이너들에 대해 다룬다.

기획/ 편집부, 글/ 정영호 기자, 최경원(디자인실험실 실장), 박영문(월간 자동차생활 기자), 김석희(시각문화 평론가)

일본의 디자이너들 중 많은 기업들 가운데 유독 시세이도(資生堂)를 거쳐가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유명한 디자이너가 시세이도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이 시세이도에 몸담았기에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디자인 전문 회사도 아닌 화장품 회사에 이러한 수식을 붙이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세이도의 광고 등을 내부에서 자체 제작하는 선전제작부(Advertising Creation Department)의 저력을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시세이도가 1872년 창업한 이래 130여 년에 걸쳐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1916년에 창설된 의장부(意匠部)가 있었다.
이러한 시세이도의 선전제작부를 지금 이끌고 있는 사람이 야마가타 토시오(山形季央)다. 1980년대에는 시세이도를 화장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도 명품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프랑스의 사진작가 세르주 뤼탕과 손잡고 원을 모티브로 하는 광고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가 지금 맡고 있는 선전제작부 디자인제작실장이라는 자리는 브랜드의 국내외 상품 광고, 기업 광고에 대한 아트 디렉션도 물론 포함한다.
하지만 그의 활동 영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패키지 디자인, TV CM을 포함한 광고나 그래픽 디자인, 윈도 디스플레이, 시세이도 각 지점의 디자인 및 공간 설계 등 시세이도 디자인의 모든 디렉션에 대한 책임을 포함한다. 도쿄 긴자의 ‘하우스 오브 시세이도’의 <미와 지성의 유전자, 시세이도> 전 등 전시 기획에도 관여했고, 시세이도의 신규 브랜드인 IPSA 등의 설립에도 참가했다.


인터뷰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의 소망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세이도의 철학과 전략은?
시세이도 브랜드의 철학은 사람들의 생활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의 근원에는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의 ‘모든 것은 윤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는 생각이 있다. 따라서 시세이도의 디자인 전략은 품격 있고 선진화된 디자인으로 사람의 마음과 피부를 아름답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화장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란 아름다워지는 것을 위해 존재한다.시세이도의 유전자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품격과 선진적 품질에 대한 엄격함이다.

광고 등도 모두 사내에서 자체 제작하는데 어떤 장점이 있나?
사내 크리에이티브 팀이 있기 때문에 기업 이념에 담긴 경영자의 철학을 계속해서 전달할 수 있다. 시세이도에는 마케팅의 중심에 디자인이 있다. 물론 그것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크리에이터 자신이 항상 자신의 감정을 새롭게 하고 미적 의식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공간 디자인에서 시세이도만의 특징이 있다면?
시세이도는 창업 이래 윈도 디스플레이에 관한 역사와 전통을 쌓아왔다. 시세이도의 역사가 시작된 긴자는 일본 유행과 스타일의 발신지이다. 그런 거리에서 시작된 기업인 만큼 세련된 윈도 디자인으로 거리를 활성화시키는 것도 시세이도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시대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현대 문화계의 상황은 후쿠하라 신조 회장의 시대보다 복잡해졌다. 20세기는 영상의 세기라고 불렸다. TV CM이 대두되었고, 시세이도에서도 수많은 명작 TV CM이 탄생했다. 그리고 현재 21세기는 인터넷이 대두되는 시대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떤 표현 스타일인가가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시각적인 세계가 넓어지고 있는 동시에 촉각 등 인간의 오감 또한 중요시되고 있다. 시대의 요구란 이런 것들에 대한 요구를 모두 포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면 기존의 아이덴티티가 흔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과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가는 일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는 항상 변화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항상 주시하고 있으면 그 변화의 근원에 있는 것이 보인다. 시세이도의 이념과 아이덴티티는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그 이념을 놓치지
않는 한 모순될 일은 없다.

시세이도가 일본 고유의 정체성을 반영한 부분이 있다면?
일본의 정신 속에는 ‘오모테나시’라는 것이 있다. 오모테나시란 상대방에 대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리고 세심한 배려를 의미한다. 시세이도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오모테나시이고, 이러한 마음을 상품, 광고, 매장 모든 것에 전반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시세이도 서체의 시초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달라.
시세이도 서체의 기본형은 1920년경 2대 회장이었던 후쿠하라 신조가 사내 디자이너를 통해 만들었다. 따라서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74년 제작실 초대 실장이었던 야마나 아야오(山名文夫)가 로고 마크에 사용한 글씨를 이용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서체로 완성시켰다. 현재는 일어체, 영어체, 숫자 등을 갖추어 상품, 광고 등에 사용하고 있다.

현재 추구하고 있는 시세이도의 여성상은?
시세이도는 피부의 아름다움에 관해 엄격하다. ‘품격이 있고, 피부가 아름다운 여성’이야말로 시세이도의 여성상이다. 하지만 메이크업을 하고 피부 관리를 하는 것이 아름다움의 모든 것은 아니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을 대하는 자세이지,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꼭 하나의 얼굴로만 대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광고 모델 또한 시세이도의 여성상을 반영하는 것인가?
광고 모델은 선전제작부에서 선정하며, 상품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 톱스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톱스타를 기용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표정이나 품행에서 단정함이 느껴지고, 피부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선정한다.

시세이도가 추구하는 여성상이 세계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러기를 희망한다. 아름다움을 원하는 마음은 나라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이고, 한 나라의 가치관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한국이나 유럽의 광고에도 관여하나? 기본적으로 한국, 유럽의 광고도 총괄한다. 다만 화장품의 고객이 달라지기 때문에 광고도 달라지는 일은 있다. 또 일본과 한국, 유럽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이 생기기도 한다.
글•인터뷰/ 정영호 기자

루이뷔통, 이 이름을 듣고 어느 나라 여성들이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황금색 로고가 패턴으로 찍힌 고동색 가죽 가방은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꿈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루이뷔통은 어디까지나 가방 브랜드. 100여 년 이상을 가방으로 쌓은 높은 명성은 여성복을 끌어안는 데에는 오히려 두꺼운 벽이 되었다.
이에 문제를 심각하게 느낀 루이뷔통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는 유럽이 아닌 미국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에게 과감히 회사의 운명을 맡긴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1998년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면서부터 루이뷔통은 마치 100여 년 동안 가방이 아니라 여성복을 만들어온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루이뷔통에 오기 전부터 마크 제이콥스는 다크호스로서 수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일명 ‘거지 패션’이라 불리는 그런지 룩(grunge look)으로 당대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일찌감치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해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루이뷔통에 등장하면서부터 루이뷔통은 트렁크로 고정되어있던 고전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마크 제이콥스 특유의 분위기로 완전 탈바꿈하게 된다.
고동색의 튼튼한 가죽 대신에 원더걸스에게 더 어울릴 것 같은 하늘하늘한 레이스와 밝은 색으로 재무장한다. 그렇다고 명품 특유의 우아함이나 귀족적 취향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젊은 미국적 취향과 고품격의 유럽 취향은 마크 제이콥스에 의해서 완전합체를 이루었고 그렇게 만든 독특한 패션 스타일은 전 세계 패션인들의 감각을 장악했다.
글/ 최경원(디자인실험실 실장)

아버지 사업의 실패로 패션에 입문하게 되었던 정치학도 크리스찬 디올은 1947년 첫 컬렉션으로 일약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반열에 올라 프랑스 패션의 혈맥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1957년, 5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함에 따라 크리스찬 디올은 이름만 남기게 되었다.
크리스찬 디올이 없는 크리스찬 디올은 그 공백기를 이브 생로랑(Yves Sanit Laurent),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e) 등의 디자이너들에 의탁해 전성기를 이어가려 했는데, 애석하게도 이들은 기존의 디올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디올은 오랜 기간 시대의 흐름과 상당한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런데 1997년 브랜드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면서 디올은 패션계의 악동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는 강수를 둔다. 30대라는 갈리아노의 새파란 나이와 영국인이라는 점은 디올을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을 술렁거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학창시절부터 유명했던 그의 외계인적 감각이 과연 디올과 궁합이 맞을지가 미지수였다. 실험성과 개성이 강한 디자인이라면 자칫 브랜드 이미지와 상충되거나, 비즈니스적 성과에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는 크리스찬 디올에 와서도 매 시즌 패션의 본고장을 시각적 스캔들로 들썩이게는 만든다. 그런데 전통을 바탕으로 한 그의 우아하면서도 도발적 실험으로 가득 찬 옷들은 희한하게도 디올에 짐이 되기보다는 디올의 해묵은 먼지를 털어내주었다. 그 결과 디올은 고전적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시대를 앞서가는 강렬한 생동감을 얻게 되었다.
글/ 최경원(디자인실험실 실장)

웬만한 명품도 에르메스 앞에선 평범한 가격(?)의 기성품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대량생산의 시대에도 대량생산을 거부하고 철저히 수작업으로 일관한 에르메스의 전통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최고급 명품을 책임지고 있는 디자이너가 바로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tier)다.
장 폴 고티에가 누구던가. 그는 조용하게 품위만 지키던 1980년대 파리 패션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앙팡 테리블이었다. 그런 그가 다른 브랜드도 아니고 럭셔리 중의 럭셔리 브랜드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3년부터 에르메스의 여성복 라인을 맡았는데, 신기하게도 이 천하의 악동을 영입함으로써 에르메스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매력을 덤으로 탑재하게 된다.
장 폴 고티에도 문제아가 마음을 잡으면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전의 스타일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안정감과 품위가 그의 개성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잔뜩 우러나오는데, 특히 색을 통해 발산되는 에르메스의 가죽 질감과 고동색에 치중했던 장 폴 고티에의 이전 스타일은 전혀 어색함 없이 하나가 되고 있다.
글/ 최경원(디자인실험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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