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30
요즘 들어 특히 젊은 디자이너들 중에는 ‘전시’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셀프 프로모션’에 나서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막상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공간을 찾기 시작하면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직 대부분의 갤러리는 순수 미술에 집중하고 있을 뿐 디자이너에게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자. 10여 년 전만 해도 사진 전시에 대해 호의적인 갤러리는 흔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최근 몇 년 사이 사진 전시회가 부쩍 늘어나고, 갤러리에서도 사진이란 분야가 환영받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대 앞 ‘더갤러리’가 공간 리뉴얼과 함께 디자인 전문 갤러리를 표방하게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더갤러리의 로고타이프를 디자인하기도 한 이기섭 씨는 “나 자신은 디자이너치고는 비교적 여러 전시를 선보일 기회가 있었던 편이었다. 하지만 다른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경우, 내 작업은 솔직히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팝아트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예술의전당에 있는 디자인미술관은 한 개인이나 스튜디오가 자유롭게 참여하기에는 너무 문턱이 높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의 행사는 일 년 중 단 며칠만 열릴 뿐이다. 즉 상설적으로 디자인을 전시하는 공간, 그중에서도 디자이너들이 먼저 나서서 대관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면, 의외로 그런 공간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것이 더갤러리가 디자인 전문 갤러리를 표방하며 리뉴얼한 것에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더갤러리 공간 리뉴얼을 담당한 ‘건축공간 사이’의 임태병 소장은 “전체적으로 텅 빈 그릇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건물에 붙어 있던 많은 장식을 걷어내고, 건물 본래의 콘셉트와 시스템을 좀 더 명료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공간 속에 숨어 있는 여러 잠재성을 전시하는 사람이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갤러리 공간 리뉴얼의 뜻을 설명했다. 본래 더갤러리는 지하 1층에 한정된 작은 공간이었다. 같은 건물 1층과 2층에는 스파게티 요리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리뉴얼에서 스파게티 집이 사라지고, 지하 1층과 지상 2, 3층이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지하 1층은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방, 그리고 새하얀 벽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에 대한 감상과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갤러리 공간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디자인은 순수 미술과 다르다. 독자적인 가치를 주장하는 순수 미술과는 달리, 디자인 결과물은 태생부터 다양한 환경과 맥락 속에서 대중에게 보일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디자인 전시 공간 또한 그런 다양한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 또한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2층은 여느 갤러리 공간과 조금은 다르게 디자인했다.
2층은 본래 식당이었던 만큼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나 식당과 조리실을 분리하던 벽돌로 된 벽 등 좀 더 일상적이고 다양한 질감의 벽이 혼재되어 있어 ‘멀티큐브(multicube)’라고 이름붙였다. 그런가 하면 ‘오픈큐브(opencube)’라 이름 붙여진 3층은 사실상 층과 층 사이에 있는 열린 공간이면서, 일종의 테라스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일반적인 갤러리에서라면 약간은 산만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디자인 갤러리라면 오히려 이러한 다양한 느낌의 공간들 속에서 디자인의 여러 맥락을 더욱 잘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홍대 앞의 새로운 디자인 아이콘으로 탄생한 더갤러리. 그곳이 자신의 작업을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여러 디자이너들의 갈증, 그리고 여느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이나 디자인 탄생의 뒷이야기를 알고 싶은 관람객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정영호 기자, 사진: 이재희 기자
관람시간 11:00~19:00(화요일~토요일), 13:00~ 19:00(일요일), 월요일은 휴관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7-13 W&H빌딩 더갤러리
가는 길 서교동 사거리(지하철 2호선 합정역 3번 출구, 홍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보보호텔 끼고 홍익대학교 방면으로 직진, 상상마당 부근
웹사이트 www.galleryth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