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2
‘My Favorite 7’은 디자이너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일곱 가지를 소개하는 코너다. ‘소포 꾸러미, 아기 고양이의 콧수염, 사과 파이, 달밤에 높이 나는 기러기’처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로만 채웠다. 이처럼 아주 사적인 취향, 매우 개인적인 관심사를 매개로 디자이너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본다. 그 첫 번째는 디자인 스튜디오 ‘헤이데이’의 노동균 디렉터가 신나게 고른 일곱 가지 My Favorite Things!
에디터 | 이지영(jylee@jungle.co.kr)
글∙ 사진 | 노동균
1. 쳇 베이커(Chet Baker)
쳇 베이커는 재즈 트럼페터 겸 보컬입니다. 배우 제임스 딘을 닮은 외모에 천재적인 음악성, 문란한 사생활과 마약,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죽음 등 일반적으로 말하는 ‘전설적인 인물’이 갖출만한 자격은 모두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힘든 삶이 왠지 멋있게 보여 좋아하게 됐지만, 조금 더 알게 된 후부터는 점점 그의 음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쳇 베이커의 중성적이면서 흐느끼는 듯한 미성은 마이너코드의 연주 음 위에서 구름을 타듯 부드럽고 활기찬 것이, 마치 기쁨과 슬픔의 묘한 경계선을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알면 알수록 궁금하고 또 아이러니한 예술가입니다.
2. 영월책박물관
영월 시골 언덕에는 폐교를 개조해 만든 작은 책박물관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말부터 근 현대까지 출판된, 접하기 힘든 책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으며 책에 대한 연구와 세미나, 모임 등이 활발하게 유지되던 곳입니다. 이곳에 가면 『님의 침묵』의 원본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양인이 본 조선의 시각에 관련된 책, 근대 한국 물고기에 대한 연구 등의 서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 나라의 잃어버린 시대와 삶의 배경, 문화 등에 대한 소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역사를 느낄 수 있고, 좋은 작업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언제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3. 반 고흐(Van Gogh),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반 고흐의 그림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정도이고 그의 삶의 방식 또한 그림만큼이나 유명합니다. 그 이유는 그림에서 그의 삶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 고흐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은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어보면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에서 처절할 정도의 철저함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또는 예술가로서 혹은 어떠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여행
여행은 물론 리프레시(refresh)를 위한 대표적인 행위이자, 새로운 정보의 습득이 이루어지는 행위일 것입니다. 새로운 공간에서의 짧고 담백한 생활은 지루한 일상의 삶을 끊어주는 대신 인생에 리듬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 사고들을 접하면서 기존의 생각에 다채로운 리소스들이 머리 속에서 믹스되며 새로운 관심과 시각을 가지게 해줍니다. 개인적으로 여행은 일반적인 삶에서 가장 좋은 행위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5. 축구
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만큼 광적으로 축구를 좋아합니다.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로서의 삶보다도 성공적인 축구 선수의 삶을 더 동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 ‘축구에 목숨을 건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2005년에는 수소문을 한 끝에 K3클럽에 들어가 선수들과 뛰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여행이 인생을 크게 구분 지어 주는 역할을 한다면, 주말의 축구는 저에게 한 주마다 짧은 여행을 선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6. 사회/환경 문제
사실 사회 문제에 대해 의식적이거나 의무적으로 관심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어떠한 경우에는 명분과 대의를 갖춘 작업을 위한 소재로 쓰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렇게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겨우 흉내라도 내듯이 관심을 가졌던 문제가 이제는 꽤 의식 속으로 스며든 것을 느낍니다. 최근에는 사회 및 환경 문제들이 실제로 그 문제를 야기한 기업의 홍보 목적으로 쓰이며 의지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7. 경제/금융 공부
경제와 금융를 알면 자본주의 세상이 돌아가는 게 보인다고들 합니다. 특히 예술가나 디자이너 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좁은 시각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만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적으니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경험 또한 제한되는 것이겠지요. 때문에 경제와 금융을 공부하면 현재의 흐름을 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실적부터 각종 이슈와 각 산업의 동향을 알게 되면 세상의 큰 흐름이 보이고, 이것은 세상을 가꾸는데 일조하는 디자이너로서도 큰 자산이 됩니다. 꼭 자산이 된다는 생각을 제쳐두고라도, 그 흐름을 보는 것 자체로도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스스로의 경제력을 키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