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1
말없이 한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묵묵히 하는 가구는, 있지만 없는 듯 그러나 없으면 그 빈자리가 너무 큰 우리의 ‘생활’이다. 앉고 눕고 물건을 수납하는 기능과 목적을 떠나서라도 가구의 존재는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사람을 안락하게 보듬어주는 집처럼 가구는 우리의 삶을 껴안는다. 우리의 일상은 가구를 배경으로 펼쳐지니 말이다. 우리는 가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몸과 마음을 기대며 인생을 바라본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 | 키미아트 제공
가구는 분명한 목적을 지니지만 그 기능보다 더 많이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사소한 움직임이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하기위한 그 기능에는 한 인간의 삶을 감싸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보았던 오래된 나무 가구는 내 할머니 냄새만큼 친근한 것이었다. 손으로 만졌을 때 나무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좋았고 코를 댔을 때 나무의 냄새가 나는 것이 좋았다. 나무의 느낌이 살아있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편안한 느낌이다. 가구에도 유행이 있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좋은 것이 나무 가구다. 그냥, 나무가 재료로 쓰인 가구가 아니라 진짜 나무 가구 말이다.
‘느림’의 미학이 거론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사회에서 나무 가구의 의미는 더 커졌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드는 나무 가구는 더 나무스럽다. 나무를 선별하고 디자인을 하고 제작을 하기까지의 시간은 나무를 보는 눈과 만지는 손을 통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과정이다. 사람의 마음을 담은 가구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가구의 기억’은 이러한 가구를 이야기하는 전시다. 누군가의 기억을 담고 새로운 기억을 담아갈 가구. ‘느리고 어눌하고, 오래’라는 주제로 이루어지는 ‘가구의 기억’은 사람과 사람이 더해져 쌓여갈 무수한 시간들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강태영, 김정현, 신철민, 전형민, 최윤필 등 5인의 작가가 참여한다. Mobel+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말레비치의 사각형, 까마귀의 날개짓, 고요한 휴식, 곡선과 직선, 섬 등을 소재로 한다. 그들이 만든 가구는 실용성과 심미성을 겸미한 테이블, 책장, 스텐드, 의자, 책상, 침대 등이다.
작가들은 모두 나무의 결이 살아있는 가구들을 선보인다. 하나같이 나무로 이루어져있지만 모두 무늬가 다르고 색도 다르다. 이 가구들은 제각각의 목적에 충실하게 생활 속에서 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과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되는 가구들은 다섯 작가들이 가구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 고요함과 존재, 사각형의 형태와 독립적 생명력, 균형, 직선과 곡선의 조화, 외롭고 고요한 정원 등으로 표현된 ‘느리고, 어눌하고, 오랜’ 것들.
‘가구의 기억’은 2월 15일부터 3월 15일까지 키미아트에서 만날 수 있다. 가구작품들과 함께 하늘로 피어나는 나무뿌리를 형상화한 박영주 작가의 작품도 전시된다.
www.kimiar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