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4
어디선가 본 듯한 제품들과 가구들이 정갈하고 깔끔하며 군더더기 없다. 조선시대의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 사랑방가구와 신기능주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디자인들을 생산한 디터람스가 디자인한 제품이 함께 있는 모습이다. 꾀나 조화로운 이 느낌은 대림미술관에서 3월 27일까지 진행되는 디터람스전의 한국실에서 전해진다.
글, 사진 | 이아름 정글리포터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랑방 가구의 어떠한 점이 디터람스의 디자인과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한 것일까? 사랑방 가구의 일부와 디터람스가 디자인한 제품이 함께 구성되어 있는 모습에서는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장식이 적고 간결한 디자인, 기능성과 조형미가 드러나는 것이 그것이다. 디터람스의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절대 가치를 추구한 우리의 선비정신이다. 이 두 가지가 만나 표현된 사랑방과 가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유리관에 따라 남녀의 생활공간이 사랑방과 안방, 부엌 등으로 분리되어 사용되었다. 그중에서 사랑방은 조선시대 한 집안의 남자 주인인 가부장의 생활공간이었다. 이곳은 학문을 연마하는 서재이자, 남성손님을 접대하는 장소였다. 따라서 사랑방은 주인인 사대부나 선비의 높은 안목과 세련된 취향에 맞도록 꾸며졌다. 이들은 사회지배층으로서 청빈을 덕목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는 가구도 검소하고 격조가 높은 것을 선택하였다.
한옥의 좁은 실내와 낮은 천장, 목가구는 각 공간의 특성에 맞게 대부분 작고 단순하게 만들어졌다. 사랑방 아랫목에는 보료를 깔고 그 정면에는 책을 얹어 놓고 읽기 편하도록 서안을 배치하고, 그 옆에 종이, 벼루, 먹, 붓 등을 담아두는 연상을 두었다. 벽면에는 키가 낮은 문갑을 창 밑에 배치하고 그 내부에 귀중품을 수납했으며 위에는 붓통이나 장식물을 얹어 두었다. 윗목의 한쪽 구석에는 사방에서 투시되는 사방탁자를 두고 도자기나 장식물을 올려두었으며 벽면에는 두루마리로 된 서화나 편지 등을 끼워 보관하는 고비를 두었다. 그 밖에 의거리장, 책장, 지통, 평상, 병풍 등이 사랑방의 가구로 쓰였다.
여인들의 공간인 안방이 자개, 화각, 금구장식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것과 달리, 선비들의 청빈, 검소함을 짐작케 하는 사랑방 가구들은 광택이 없으며 시각적으로 부드럽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가구들은 판재를 끼워 넣는 짜임과 이음의 방법을 이용하여 견교하게 제작되었고 꼭 필요한 부분에만 접착제나 대나무못을 사용하였다.
디터람스가 한스 구겔로트와 함께 디자인한 일명 ‘백설공주의 유리관’이라 불리는 SK4. 이 스테레오 장비는 당연히 장식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는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 백색 금속판을 ‘ㄷ’자 모양으로 꺾어 양옆에 나무판을 붙이고 플렉스글라스로 뚜껑을 달았는데, 장식장의 무게감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기술적인 목적을 숨기기 위해 굳이 가구처럼 보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작동하기 쉬워 보이는 조절장치들이 질서정연하게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SK4에서 보이는 것처럼 디터람스는 개인적 미의 취향에 근거한 장식 성향에 반대한 기능주의 미학을 굿 디자인의 기표로 사용하여 조형적 정직성에 근거한 비장식적 특성을 보여준다. 미학적 내구성과 기능성을 합리적으로 추구한 그는 고품질, 단순성 및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발산시키고 있다. 이것은 디자인 과정을 통틀어 모든 세부사항에 대한 꼼꼼한 배려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디터람스의 제품들은 현대에도 뛰어난 조형미를 인정받고 있으며 애플, 무인양품 등의 기업과 후대의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사랑방가구 역시 재료의 본질을 드러내는 정직성, 간결한 선과 명확한 면 분할을 특징으로 하며 장식이 적고 간소하면서도 건실한 구성미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과 함께 짜임 방법을 통한 보이지 않는 내부 구조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부사항에 대한 꼼꼼한 배려로 고품질의 가구를 제작하였고 그중에서도 사방탁자의 비례미는 현대사회에서도 뛰어난 조형감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디터람스의 디자인 제품들과 사랑방 가구가 추구하는 기능주의 미학에서는 비장식성, 단순성, 정직성, 세부사항에 대한 꼼꼼한 배려 등의 구성에 대한 공통적 조형특성과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생활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만드는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구의 문물이 유입되고 좌식에서 입식으로 생활이 변하면서 우리의 실내 환경과 그에 따른 가구의 모습도 많이 변화하였다. 기능적으로나 조형적으로 뛰어나고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우리의 사랑방 가구를 비롯한 전통가구는 이제 전시관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지만 그 멋과 가치는 최근에 더 많이 각광을 받는 추세이다. 간결한 선과 명확한 면 분할을 특징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과 보이지 않는 내부 구조를 함께 고려하고 있는 사랑방 가구는 현대사회에서도 뛰어난 조형감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랑방가구는 장식이 적고 간소하면서도 건실한 구성미를 통해 사치스러움이 없이, 그렇다고 누추한 느낌도 없이 정갈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