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3
집은 가옥이라는 단순한 건물의 의미와 삶의 가장 기본요소인 의식주의 바탕이 되는 곳, 뿐만 아니라 가정, 울타리, 안식처, 보금자리와 같이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보호받고, 휴식을 취하며, 안정을 찾는 공간임과 동시에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시간의 기록이 쌓여가는 곳이다. 이처럼 우리가 집에 다양한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중심에 바로 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사제공 | 디자인DB(www.designdb.com)
건축도자 전문 미술관인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이 지난 9월 30일부터 2012년 2월 19일까지 2011년 하반기 기획전 ‘집을 생각하다’展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0년 한국근대 벽돌건축을 다루었던 ‘BRICK’展 이후 선보이는 두 번째 건축전시로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바탕이 되는 집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히고자 기획되었다.
전시에는 국내 건축가, 사진작가, 현대도예가, 조각가, 설치미술가 16명이 참여하였고 집에 대한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건축적 또는 조형적 언어로 풀어낸 작품 58점(192피스)을 전시관 전관에 풀어놓았다. ‘집을 생각하다’展은 집을 짓고, 삶을 채우며, 자연을 품은 정원을 꿈꾸는 일, 누구나가 한번쯤은 그려보았을 법한 집에 대한 생각을 4인의 건축가와 12명의 현대미술작가와 함께 건축, 도예 그리고 현대미술의 다각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고 주거문화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전시는 ‘집을 짓다’, ‘삶을 상상하다’, ‘정원을 꿈꾸다’라는 세 개의 소주제로 나뉜다.
섹션 1. ‘집을 짓다’
건축가가 건축주로부터 집을 짓는 일을 의뢰받고 나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집이 지어지는 대지, 주변 환경과 건축물과의 물리적 관계, 그 안에서 살 사람들과의 인문학적 관계일 것이다. 첫 번째 주제 ‘집을 짓다’에서는 건축가 고(故) 정기용, 정기정, 조민석, 황두진의 주거(住居)를 위한 건축물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의 흔적을 기록한 이인미 작가의 사진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가 지금까지 개최한 다른 건축전시와 크게 대별되는 점은 바로 전시장 안에 실제 건물을 축소하거나 일부의 모습을 재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물을 전시장으로 옮겨올 수 없는 한계를 지닌 건축전시에서는 사진과 드로잉, 도면, 모형을 통해 실제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실물로써 건물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선택하여 작품의 규모, 형태, 건물의 외피 등을 관람객이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기획했다. 또한 전시에 소개된 건축물은 건축가들의 명성에 비하면 작은 규모의 집들이다.
조민석 ‘페이퍼 픽셀(픽셀 하우스 축소 모형)’
먼저 미술관 원형홀을 지나 로비에 들어서면 1만 개의 종이박스의 외피로 둘러싸인 대형 건물 모형을 마주치게 된다. 건축가 조민석의 ‘픽셀하우스(2003)’이다. 픽셀하우스는 헤이리에 위치한 1,2층 면적의 합이 25.8평인 작은 주택이다. ‘픽셀’이라는 이름은 건립 당시 건물을 짓는 공간과 녹지를 구분하는 경계선을 흐리는 과정에서 탄생하였으며, 이 아이디어는 건물의 외피에 동시에 적용됐다. 2만 개의 시멘트 파벽돌로 건물의 외피를 감싸 뿌연 표면의 효과가 생겼고 음영에 따라 그 표면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다양한 표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시관에 놓인 작품은 픽셀하우스의 2분의 1크기로 축소한 모형으로 실제 건물의 규모와 형태, 외피의 느낌 등을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정기정 ‘푸른숲 마을 모형(detail view)’
건축가 정기정은 퇴촌면 원당리에 위치한 ‘푸른 숲 발도로프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푸른 숲 마을의 주택 아홉 채 중 여섯 채를 설계했다. 건축가는 건축물과 대지와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며, 건축이 만들어내는 특별함보다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일상에 더욱 가치를 두고자 했다. 벽돌, 유리, 나무재질의 공통된 건축재를 사용함으로써 건물 전체의 조화로움을 추구였으며 각 개별공간마다 외부로 접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주거공간을 설계하여 전원주택의 장점을 살린 넓은 마당을 지닌 집을 탄생시켰다. 전시에 소개된 건물은 그가 설계한 여섯 채의 주택 중 7호와 15호로, 전시관 내 영상을 통해 설계 과정과 건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기용 ‘흙담 재현(구인헌)’
갤러리 중심부로 시선을 돌리면 황토를 다져 나지막하게 세운 옛 담장이 시간을 거슬러 현대의 공간 속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거푸집과 같은 담틀에 흙과 강회를 섞어 넣고 다져 쌓아올리는 판축공법이라는 흙 건축의 공법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고(故) 정기용(1945~2011)의 대표적 흙 건축인 ‘구인헌(求仁軒)’ 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구인헌’은 100% 흙건축은 아니지만 생태환경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흙이 시대의 건축에서 해낼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황두진 ‘공극의 구축(Built porosity)’
첫 번째 소주제의 마지막 건축가의 작품은 부드러운 크림색의 벽돌건물인 황두진의 ‘더 웨스트 빌리지’다. 경복궁 인근 서촌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의 복합건물로, 특징적인 부분은 건물의 남측면에 투시형으로 벽돌을 쌓아올려 외관에 변화를 주고 채광과 차면의 기능적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건축 외장 마감재로서 벽돌의 무한한 변신을 꿈꾸어 볼 수 있도록 하는 건물이다. 전시장에는 이 벽돌쌓기의 투시형 패턴을 공간에 맞게 일부 변형하여 재현했으며 그 위로 건물 내부의 모습이 담긴 시각이미지를 영사하여 실제 건축물과 그 안의 모습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다양한 패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인미 ‘집, 그 이후’
전시장 우측 벽면에는 건축사진가 이인미가 집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펼쳐진다. 작품 ‘집 그 이후’ 는 건축가의 손을 떠난 처음의 매끈했던 공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채워지고, 구석구석 손때가 묻고 낡거나 색이 바래지기도 하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점점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로 하여금 특별한 감흥을 일으키지 못할 집 안팎의 익숙한 풍경들을 흑백 사진 프레임에 담아 시간의 흐름 안에 스쳐 지나가는 삶의 순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섹션 2. 삶을 상상하다.
집안을 채우는 사물들은 공간과 공간을 나누고, 그 공간에 아이덴티티를 부여함으로써 집을 온전하게 사유(思惟)화된 공간을 형성한다. 그것은 사물을 선택하는 사람의 개인적 성향이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반추할 수 있는 매개물로써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제인 ‘삶을 상상하다’에서는 주거공간을 채우는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반영된 사물들을 통해 인간의 사유를 읽을 수 있는 도자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전시에는 이해정, 김지혜, 김하윤, 민세원, 이은, 신동원, 박경주 작가가 참여한다.
김지혜 ‘Pneuma(프뉴마, 성령)’
그 너머로 김지혜 작가의 둥그스름한 유기적 형태의 도자 스툴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스툴에 사람이 앉음으로써 물질과 대상이 상호 소통하는 감각으로서의 촉각성을 나타내고 있다. 신체적인 접촉뿐 아니라 타인과의 만남을 소망하면서 제작된 작업으로 이번 전시에는 총 11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김하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식탁), 커트러리 샹들리에 (조명)’
김하윤 작가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마치 전시장을 초현실주의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비뚤어진 테이블, 그 위에 쓰러져 나뒹구는 잔, 공중에 매달려 샹들리에가 된 수저들 등 기능성이 강조되었던 물건들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 쓰임에서 조금씩 벗어난 위치에 놓음으로써 관람객들은 이들이 지니고 있던 조형적 아름다움을 다시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신동원 ‘dreaming bottles(우), poking(중), dreaming objects(좌)’
신동원 작가의 ‘꿈꾸는 오브제(Dreaming Objects)’ 는 부엌에서 볼 수 있는 도구나 용기, 가구 등을 작품의 모티브로 한다. 이들이 모여 내러티브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모두 팽팽한 긴장감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민세원 ‘옷걸이’
전시장 왼쪽 벽면에는 동글동글한 형태의 걸이와 주전자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민세원의 작품으로 도자기 제작방법 중 하나인 이장주입기법(슬립캐스팅)으로 만들어졌다. 이장주입기법은 석고로 만든 틀 안에 흙물을 주입하여 제작하는 방법인데, 민세원의 작품은 석고 틀을 만들기 위한 원형을 풍선으로 만드는 점이 특징이다. 굳기 전의 석고를 풍선에 넣고 빠른 손놀림으로 다양한 형태와 선을 만드는데, 풍선의 신축성과 재료적인 특징으로 인해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형태들이 만들어진다. 이번 전시에는 걸이 점과 주전자 점을 선보여 기존의 형태와 용도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킨다. 신선한 표정이 담긴 물건들로 무미건조한 주변 공간들을 채워보길 제안한다.
박경주 ‘환•상•공•간’
두 번째 주제의 말미에는 아트 퍼니처와 조각, 영상물, 렌티큘라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환 상 공 간’을 구성한 박경주 작가의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현대 물질문명과 소비주의 속 현대인의 일상과 심리를 담고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일상과 주제로 한 영상작업을 함께 선보였다.
섹션 3. ‘정원을 꿈꾸다’
정원은 집의 외부이면서 담장 안에 속해 있지만 지붕이 없어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곳이면서 바깥의 자연을 개인의 공안 안으로 끌어들여 그 싱그러움을 가까이 두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나 그것이 지닌 자연식물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휴식이라는 순기능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만의 집을 상상할 때 가장 먼저 바라고 꿈꾸는 것이 바로 정원일 것이다. 세 번째 주제인 ‘정원을 꿈꾸다’에서는 자연, 휴식, 소통이라는 주제로 작업하는 설치미술가 김영섭, 김순임, 박성백, 안성희의 작품 네 점을 소개한다.
김영섭 ‘Awash- 소리를 키우자’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40개의 스피커 게이블로 만든 화분과 소리로 구성된 사운드 설치작업인 김영섭의 ‘Awash-소리를 키우자’이다. 일상생활에서 넘쳐나는 소리들을 수집하여 화분형태의 오프제와 함께 연출하였다. 일상의 소리가 우리에게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재해석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늘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듣는 소리들이 바로 우리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김순임 ‘The space 17- 김해 2011’
전시장 중앙에는 목화솜과 실, 돌멩이들로 이루어진 김순임 작가의 ‘더 스페이스 17 - 김해 2011’ 이 전시동선을 따라 길게 놓여있다.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가느다란 실 끝에 돌멩이들이 매달린 채 떠있고 그 사이 공중에 띄워놓은 크림색의 목화솜 덩이는 구름 같은 느낌을 준다. 자연물을 통해 힘겨운 우리네 삶을 반추하게 한다. 작품 옆에는 솜이불을 깔아 만든 낮은 자리가 있어 관람객들이 그 곳에 앉아 잠시 쉬면서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박성백 ‘생명의 숲- 우리는 서있다’
맞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세로 300cm, 폭 10m 이상 이어지는 박성백 작가의 대형 도판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멀리서보면 언뜻 자작나무의 색감과 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매쉬(mash) 위에 흙을 붙여 만든 원통형 막대로 이루어져 있다. 생성, 변화,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적 관계가 인간관계로 이어지는 확장된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가로세로 30cm 도판 50여장을 벽면에 설치한 이 작품은 숲속 나무 둥지들을 연상하게 만듦으로써 관람객들로 하여금 마치 숲속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안성희 ‘a Green House, 다시 봄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안성희 작가는 두 개의 온실로 구성된 하나의 작품을 전시장 끝 부분과 원형홀에 선보였다. 전시장에는 직사각형 몸체에 뾰족한 지붕의 전형적인 온실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원형홀에는 유리 돔을 지붕삼아 개방형 구조를 지닌다. 특히 후자의 것은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로 온실 속 모종을 화분에 담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관람객들은 전시종료 이후에도 계속해서 소통과 나눔이 이어지는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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