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3
명지대학교 디자인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이대일입니다. 국민대학교 테크노 디자인 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여러분들과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이번 강의는 한국의 전통 문화물에 나타나는 한국 디자인의 특성에 관한 내용이며, 조형언어나 문법 등의 이론적인 잣대보다는 조형이 주는 느낌에 초점을 둔 한국 디자인의 특성에 대한 고찰입니다. 강의 진행은 한국적 특성을 이루어내는 주체에 대한 이해, 즉 한국인이 살아가는 자연적, 문화적인 환경을 설명하고,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형성된 한국인의 기질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 기질로 인해 만들어지는 조형 특성에 대해 설명하는 순서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사 | 이대일 명지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정리 | 김용진
1. 한국인에 대한 이해
한국적 특성을 이루어내는 주체에 대한 이해, 즉 한국인이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한국적 조형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전제가 됩니다. 한국적 특색이란 거기에 속해 있는 시공을 공유하는 집단이 만들어내는 광의의 문화적 특성으로, 다른 민족과는 다른 어떤 분명한 색깔을 말합니다. 이 특색은 조형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다시 말해서 조형 감수성은 한국인의 체질적, 기질적 특성에서 빚어져 나오는 것으로, 과거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낸 전통 조형물의 감수성과 구성력을 살펴보면 오늘날 한국적 디자인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형적 감수성은 몇 백 년, 몇 천 년 사이에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단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먼저 한국인의 종족적 특성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1-1 종족 다양성
한국인은 기질과 성품이 매우 다양합니다. 여러분은 한반도가 철원과 강릉을 중심으로 해서 두 지역의 지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몇 년 전에 뉴스에서 이 발견을 보도하자 북한이 남한 정부가 영원한 분단을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철원 이하의 땅이 적도 부근에서 밀려와 이 지역을 경계로 해서 그 북쪽과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땅이 이렇게 형성되었듯이 한반도에는 남방인과 북방인이 서로 섞여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한반도의 인종 특성은 고인돌 유적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한반도에는 전 세계 고인돌의 45%가 몰려 있다고 합니다. 저는 세계 고인돌의 반에 가까운 수가 쥐꼬리 만한 땅덩어리에 몰려 있다는 것에 우리의 인종적인 미스터리가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 살았던 종족 계열을 살펴보면 태국, 월남, 말레이시아, 화남 등의 농경민으로 구성된 남방계와, 흉노(돌궐), 여진족, 말갈족, 거란족, 선비족 등의 유목민으로 구성된 북방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족이 모여 살았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몽고인과 일본인들이 유입되었고, 임진왜란 때는 쌍기 2천명과 화산이씨 월남왕족들도 들어왔습니다. 이렇듯 한반도에는 자연적인 원인만이 아니라 전쟁 등의 인위적인 경로를 통해 여러 종족이 유입된 아주 복잡한 종족적 구조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DNA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에 몰려 살고 있는 인종의 수가 자그마치 40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동양의 미국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인종이 많으니 사람들의 기질과 성품 또한 다르며 조형 활동에서도 다양한 기질적 특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반도 종족의 다양성은 우리 조상들의 초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림1)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미수 허목의 초상화입니다. 허목은 동해 현감시절에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동해척추비를 세우면서 그 비문을 썼는데요. 그 비문의 초서체가 뱀이 기어가듯 꾸불꾸불 힘이 넘치며 조형미가 대단히 뛰어납니다. 그가 오늘날에 태어났으면 위대한 타이포그래퍼가 되었을 것입니다. 초상화에 나타난 허목의 생김새를 보면 갸름한 얼굴형에 가늘고 긴 코를 가진 전형적인 북방계입니다. (그림2)는 공재 윤두서입니다. 공재의 자화상은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해도 될 만큼 손색없는 명작입니다. 공재의 초상화에 나타난 얼굴형을 보면 남방계 중에서도 특히 일본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공재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종손으로 그의 아들은 윤덕희이고 외손자가 다산 정약용입니다. 윤선도의 집안에서 전해지는 그림을 보면 일본적인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며, 그림 또한 아주 힘차고 꼼꼼하고 치밀합니다. (그림3)은 신재 주세붕의 초상화입니다. 주세붕의 얼굴형을 보면 남방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두툼하고 넓적한 얼굴에 크고 동그란 눈 그리고 굵고 짧은 코, 이런 생김새를 가진 사람은 남방계입니다.
다음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종족적 특성과 이들이 한반도로 유입된 과정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원류를 보면 부여계로 그 조상은 퉁구스족 유목민입니다. 부여계인 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이며 두 아들이 유리왕(고구려)과 온조왕(백제)입니다. 이와 다르게 신라는 전혀 다른 혈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는 알타이계, 흉노족(훈족)유목민입니다. 훈족의 훈 Hun은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이 한반도로 유입된 것은 역사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BC3세기 진나라에서 유민 생활을 하던 흉노족 일부가 진시황의 노역을 피해 한반도로 들어왔습니다. BC2세기에는 한무제에게 고조선이 멸망 당하고 나서, 고조선을 구성했던 흉노가 서라벌 유민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AD1세기 낙랑에서 투항한 54명 정도의 흉노가 평양과 서라벌로 들어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알지는 알지가 아르치→알트→알튼으로 변해 왔는데, 알타이는 금을 뜻하는 흉노의 말입니다. 흉노족이 금을 좋아했듯이 신라 사람들이 금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렇다 보니 삼국의 문화 중에서 황금 문화는 신라에서 가장 찬란하게 꽃 피었습니다. 흉노족은 그 기질이 거칠고 영민하며, 용맹하고, 자유분방하며, 잔인한데다 강한 집단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의 자식이나 고모, 이모, 사촌자매까지 아내로 맞이하는 난혼풍습이 있습니다. 난혼풍습은 왕족의 혈통을 보존하고 국왕의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삼국 중에서 신라에만 존재하는 흉노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난혼풍습은 이후 고려에도 전해져 왕건도 개국 초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난혼풍습에 따랐습니다.
이렇게 삼국은 한반도로 유입된 각각의 독특한 문화를 지닌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졌습니다만, 그 중에 주류를 형성한 30~40%가 문화를 이끌어 갑니다. 소수가 문화 전반을 이끌어 갈지라도, 다시 말해서 소수 개인의 유전적이며 혈통적, 기질적 요인이 조형 특성을 주도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주류의 알 수 없는 집단적 에너지 장을 통해 확산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화적 동화현상이라 하는데, 그 예를 두 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영국의 루퍼드라는 생물학자가 특이한 실험을 했습니다. 도롱뇽의 알을 반으로 잘랐는데, 잘린 곳에서 머리가 생기고, 그 옆에서 꼬리가 생겨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루퍼드는 이러한 현상을 “형태발생은 DNA 즉 체내에 있지 않고, 그 장이 따로 존재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오늘날 생물학과 물리학은 감각적인 현실을 넘어 형상학적인 세계를 다루면서 때로는 증명할 수 없는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또 다른 예는 다음의 발견입니다. 라이언 라슨이라는 미국의 생물학자가 일본의 사치시마에 살고 있는 원숭이에게 우연히 고구마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의 원숭이가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른 섬에서 살고 있는 같은 종족의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 것이 발견됩니다. 라이언 라슨은 이것을 “100마리 속 원숭이 현상”이라고 명명하면서, 원숭이 무리 속에 페이스메이커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설정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 원숭이 세계에 제 3의 장, 즉 정보공유의 장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집합들이 이루어내는 에너지 장 내에서 새로운 정보들이 서로 교환, 분석, 공유되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수 천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이민족이 유입된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얽히고 설키는 과정 속에서 그 무리의 30~40% 주도층이 주류를 형성하고 이들 무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면서 열성이 우성에 의해 문화적으로 동화되었습니다. 오늘날 일상적인 한국문화 현상에서 특히 조형세계에서 나타나는 한국성은 이러한 문화적 동화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적 특성을 살펴보면 종족에 따라 손길이 달라지는 것을, 그 확연한 차이를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언어, 음식, 기예문화에서 상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신라는 딱딱하고, 백제는 온화하며, 고구려는 경직되어 있습니다. 신라에서는 주로 삼층탑을 만들었는데 비해, 백제에서는 오층탑을, 고구려에서는 7층 이상의 탑을 만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아직 학계에서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내물왕(마립간)과 지증왕(마립간)의 왕릉에서 많은 마구와 무기들이 출토되었는데, 알타이 파리지크 목곽분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합니다. 천마총, 금관총, 서봉총 등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에서도 이미 6세기 이전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기 전에 중앙아시아, 중동, 흑해,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거리에 있는 나라들과 교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 체질과 기질의 다양성
지금까지 삼국문화의 두드러진 특성을 살펴보았고, 다음에는 한국인의 체질적 특성을 사상의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체질적 특성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지역별로 뚜렷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안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태음인, 경기 중부와 이북은 소양인, 함경도와 제주도사람들은 태양인, 호남지역은 소음인이 주로 많습니다. 이러한 한국인의 체질적 특성은 기질적 특성을 이루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특히 우리 조상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북방계통은 지각 감각이 중요한 환경에서 유목민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체로 우뇌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우뇌적 성향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살펴보면 정서적으로는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며, 감정적인 면에서는 격정적이고, 쉽게 분노합니다. 그리고 직관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반면 통합적으로 인식하다 보니 분석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언어에서 보면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거나, 사물을 객관화, 대상화 시키지 못하고, 주어를 생략하기도 하며, 말이 끝나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특성이 그러한 면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기질적 특징은 조형의 세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2. 조형에 나타나는 한국 기질
한국인의 기질적 특성은 성격적인 면에서는 성급하고, 즉흥적이고, 임의적이며, 관념적이며, 주관적입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특히 조형에 나타나는 특징으로는 비규칙적이고, 비정제적이며, 비규격적이고, 파격적이며, 중심 일탈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폐쇄성과 집단(부족)성이 강해 획일적인 특성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국인의 체질적 기질적 특성이 조형세계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2-1 회화 부문
(그림4)는 삼실총의 주작입니다. 우리는 고구려 벽화가 민족 문화유산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 벽화의 세계를 들어가 보면, 조형이 얼마나 엉성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작의 날개를 보면 날갯죽지가 다 떨어져서 풀로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그림5, 6)은 고구려 고분 벽화와 고려 불화 아미타불도입니다. 이 두 문화를 비교하면 거칠고 정교한 극단적인 두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적 느낌은 선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럽고 생기 있는 맛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칠고 엉성한 고구려 벽화에 비해 고려 불화는 대부분 귀족들이 개인의 영생, 영화를 기원하는 기복신앙에서 기술이 좋은 장인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그리게 하여 꼼꼼하고 치밀한 것이 많습니다.
(그림7)은 단원 김홍도의 무동입니다. 단원의 그림은 참으로 임의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아쟁을 든 손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악기를 잡고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손의 표현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림8)은 윤두서의 낙마도입니다. (그림9)는 오원 장승업의 그림입니다. 김홍도, 윤두서, 장승업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각각의 선이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김홍도가 한국적 선이라면, 윤두서는 일본적 선을 닮아 있고, 장승업은 중국적 선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음은 민화의 세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화 세계에 들어가면 A에서 Z까지 작품 수준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10)에 대해 사람들은 해학적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해학은 남을 즐겁게 하거나 웃기고자 일부러 지어내는 언행을 말합니다. 이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아니면 웃기려고 그린 것이 아닙니다. 조형 교육을 받지 못한 거리 화가가 어디서 잘된 그림을 한번 보고서 따라 그리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습니다. 본 것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거나, 아니면 아이디어가 부족하거나 했던 것입니다. 이 그림은 호랑이를 그렸는데 오히려 허랑이에 가깝습니다. 안경 쓴 허랑이, 빗자루 같은 허랑이, 새끼가 엄마라고 등에 올라가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림11)은 조선 민화 연꽃입니다. 수염이 난 우스꽝스러운 물고기 그리고 연꽃과 연잎을 표현한 것을 보면 흉노의 거친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12)를 보면 제대로 된 민화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화의 세계는 그림의 세계가 아니라 언어의 세계입니다. 언어를 대신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그림입니다.
2-2 공예 부문
(그림13)은 조선 보자기의 세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카피문화가 없었던 시절인데, 비슷한 패턴의 보자기를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천이 아까와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조각을 이어 붙이다 보니 만들어진 형식입니다. 우리가 규방문화에 대해서 의미를 두고 생각해야 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조선의 남성 중심 세계관 속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던 여성이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조형교육은 커녕 문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형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한국 목조형의 세계입니다. (그림14)는 제례용으로 상여에 매달거나 순장에 사용했던 나무인형입니다. 장인이 만든 것이 아니 다보니 형태가 왜곡되거나 과장되어 배꼽이 빠지도록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딱딱한 나무에 조각하기가 힘들다 보니 오리보다 작은 사람이 오리에 붙어 있기도 합니다.
다음은 도자기에서 나타나는 조형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조형은 장인의 무명성을 강조해서 작품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백자의 품질 관리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나라에서 사인을 하도록 강제했습니다.
(그림15)는 고려청자 향로입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려 불화처럼 경제력이 이와 같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그림16)은 조선 분청사기입니다. 도자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그림들이 얼마나 많이 그려져 있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국수주의적인 관념이 분청사기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불러 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의 모든 도자기가 조형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례와 조형에서 세계적인 예술성을 자랑할 만한 것들도 있지만 모든 전통 조형물을 우수하다고 보는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청사기는 청자와 백자 사이 200년에 걸쳐서 잠시 나왔다 사라집니다. 청자는 장인들이 만들었지만, 분청사기는 서민들이 생계를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서민들이 서툰 솜씨로 만들다 보니 분청사기의 퇴토가 거칠고, 심지어 그릇에 돌이 박혀있는 것도 발견됩니다. 분청사기에 나타난 그림들을 소위 해학적이라 말하며 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청사기를 만든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줄 몰라서 이렇게 그린 것인데, 대단히 잘 그리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그렸다고 얘기하는 학자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그림17)은 호암미술관에서 1990년대 초에 전시한 국보 309호 백자대호 일명 달 항아리입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하면서 마치 도공이 의도한 놀라운 조형세계를 발견한양 칭찬하는 조선 백자입니다. 그릇에 유약을 바르는 것은 내용물이 세지 말라고 바르는 것입니다. 국보 309호 백자대호의 짙은 색 무늬는 유약을 제대로 바르지 못해서 내용물이 센 자국입니다. 조선시대의 생활용기를 마치 의도적으로 만든 예술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어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림18)의 백자대호는 잘 만들어진 것입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유약이 밑 부분까지 완전히 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한국적 조형의 특성
한국문화와 조형에 대해서 국내ᐧ외의 학자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논의에서 한국의 조형세계를 특정 대상이나 주제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그것을 한국미의 현상으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야나기 무네요시입니다. 그의 논문을 보면 한국적 조형세계를 자신의 불교적인 가치관과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예로 한국 조형의 특징을‘슬픈 선’이라고 표현했는데, 참으로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해석입니다. 무네요시의 수필
<남도기행>
을 보면, 생나무로 바가지를 깎고 있는 노인을 만난 장면이 있는데,“생나무로 바가지를 만들면 말라서 터질 텐데요.”하고 무네요시가 말을 걸자 노인이“그러면 그때 가서 꿰매지요.”하고 대답했답니다. 노인의 이 말을 종교적으로 해석한 무네요시는
<깨짐과 안 깨짐의 무관함, 이런 세계를 넘어선 선사 같은 사람이 여기 있구나.>
하고 감탄했답니다. 자신의 관념에 젖어서 보고자 하는 측면만 본 경우입니다.
이화여대에 계시는 최준식 선생은 자유분방성, 자의성을 한국적 조형세계의 특징으로 말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제일 타당한 해석입니다. 그리고 권영필 선생은 정적, 세련미, 소박, 단순미로 표현했는데, 이중에 소박과 단순미는 저 또한 공감하고 있는 특질입니다. 일본 사람들의 조형세계를 보면 인위성이 지독하게 배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사람의 의지가 철저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 예로 나카시마라는 세계적인 공예는 그 명성에 걸맞는 자연목 가구를 만드는데, 한국문화에 젖은 사람이 볼 때는 인위성이 너무 강해 정감이 가지 않습니다. 특히 가구의 다리부분을 보면 마치 사무라이 정신이 깃든 것 같은 날렵한 느낌을 받습니다. 반면, 한국 조형에는 그러한 인위성이 없습니다. 이러한 면에 대해 김원용 선생이 자연주의라 말했는데, 이 말은 인위적이지 않아서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자연주의라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의 조형세계에서 자연성은 두드러진 특색입니다. 그런데 자연성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동양 3국과 서양에서도 자기 나라의 고유 특성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성을 한국적 특색으로 개념화하는 문제는 조금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성은 과거 수공산업시대에서는 어디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는 특색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계획한 조형의 원형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산업 사회에서 자연성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 불가능해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적 조형세계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자연성은 조형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비규격성의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비규격성을 다양성이라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 역시 잘못된 표현입니다. 다양성의 기초는 규격인데, 같은 것이 하나 이상 존재할 때 비로소 다양성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성은 각각의 사물에서 나타나는 정제되지 않은 형태와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적 조형세계의 특징을 자연성이라 말할 때는, 임의성, 비규격성, 중심 일탈성 등의 감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량생산체제에서 한국적 조형세계의 특징, 즉 자연성을 찾아내는 것과 이것을 다시 학술적 개념으로 세우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다기 보다는 무의미하다는 데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적 조형세계의 특징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현대적 조형물에서도 녹아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민족은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수 만년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오늘도 이곳에서는 민족적 에너지의 장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생물들이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얻듯, 우리의 조형적 감성 또한 이러한“장”속에서 체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씨앗은 또다시 후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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