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5
'얼굴도 샤방샤방 몸매도 샤방샤방 얼굴은 브이라인 몸매는 에스라인 아주 그냥 죽여줘요' 이것은 유명 대중가수의 노래 가사 중에 한 대목이다. 대중가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어디서든지 들어보았을 히트송이다. 가사 내용은 줄곧 통속적이며, 단순하게 얼굴도 몸매도 너무 예뻐서 죽여준다는 표현으로 이어지는 어느 여성에 대한 찬사인데, 그녀에 대한 묘사 중 하나는 ‘S'라인의 몸매란다. 그렇다면 S라인은 패션 역사상 변함없는 미인의 기준이었을까?
글 ㅣ 윤예진 패션 디자이너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언젠가부터 여성의 아름다운 체형을 일컫는 말은 S라인으로 대체되었다. 말 그대로 여성들의 체형을 알파벳 'S'자로 나타낸 것이다. 이는 잘록한 허리와 곡선을 이루며 튀어나와 강조된 가슴과 엉덩이를 묘사한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몸을 생각하였을 때 기본적으로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그에 비해 잘록한 허리선은 어찌 보면 당연히 아름답다 평할 수 밖에 없는 여성미의 기본 체형이다. S라인이라는 이상적 여성몸매의 대명사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호리병 몸매' 라든지 '모래시계 체형', '개미허리' 같은 식의 표현은 잘록한 허리에 대한 미적 표현으로 쓰여져 왔다. 그러나 패션 역사상 언제나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가 이상적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인식 되었던 것은 아니다.
15세기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아르놀피니의 약혼(The Arnolfini Portrait)'을 보면 예비남편의 손을 잡은 약혼녀가 마치 임산부와 비슷하게 배가 불룩하게 나온 듯한 모습으로 서있다. 하지만 약혼식이란 것을 상기해볼 때, 그녀가 임신을 한 상태는 아니며 당시 납작한 가슴과 긴 허리에 불룩하게 나온 배가 보여주는 ‘D'라인은 당대 부유하고 귀족적이며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이상적인 여성의 체형으로 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 시대라고 여기는 16세기 경, 여성들은 상의를 납작하고 잘록하게 조이고 대비적으로 허리 아래를 풍만하게 보이기 위해 상의에는 코르셋을 착용하기 시작했고, 파팅게일(farthingale, 16세기 후반에 스커트를 부풀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속치마의 일종)을 스커트 안에 받쳐 입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여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이 시작된 근대문화의 선구로도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의복에서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몸이 아닌 이상적 몸의 극대화를 표현하기 위한 보정, 보형물을 사용하여 종모양의 'A'라인 하체, 또는 부풀린 어깨와 거대한 러프(ruff, 16~17세기에 유럽에서 남녀가 사용한 주름진 옷깃)를 착용한 'X'라인과 흡사한 인위적인 몸의 형태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17세기 중반, 잠시 평범한 허리라인을 찾고 둥그런 배의 형태를 유지하였던 시절 이외에, 여성의 잘록한 허리와 납작하게 눌린 가슴을 만들기 위한 코르셋과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파니에(panier,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허리받이 형식의 속치마.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여성들이 착용) 착용은 18세기까지 계속 되었다.
19세기에 들어 산업혁명과 함께 변화의 주기가 빨라진 패션은 직사각형의 엠파이어 스타일(Empire style, H라인), 드롭숄더(drop shoulder)의 로맨틱 스타일(Romantic style, X라인), 스커트를 크게 부풀린 크리놀린 스타일(Crinoline style, 볼(bowl)라인), 말 안장 모양의 버슬 스타일(Bustle style, b라인) 그리고 명칭 그대로 S자형 스타일까지 한 세기 동안 여러 라인을 가진 스타일의 유행들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얇은 모슬린(muslin, 평직으로 짠 무명)이나 실크로 제작된 마치 잠옷 같은 엠파이어 드레스가 유행할 당시 여성들은 한겨울에 폐렴에 걸리기 일수였고, 볼륨 없이 슬림한 ‘H'라인의 몸매를 만들기 위해 배와 허리, 엉덩이를 모두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코르셋을 착용했다.
‘X'라인의 로맨틱 스타일은 가는 허리와 대비되는 풍성한 어깨를 만들기 위해 원래의 어깨보다 아래로 떨어진 넓은 어깨 선을 만들어 부풀린 소매와 함께 커다란 상체를 만들었다. 역시 부풀은 스커트를 위해 여러 겹의 페티코트(petticoat, 속치마 일종)를 스커트 안에 착용하였다.
크리놀린은 말총이나 고래수염으로 만든 마치 새장 모양의 버팀대를 말하며, 이 스타일은 볼(bowl)이나 접시처럼 넓은 스커트 도련 때문에 응접실이나 무도장에 단 몇 명만 모여도 자리가 꽉 차고, 화재 시에 작은 출입구로 빨리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착용을 법적으로 제지하였으나 사실상 법도 패션의 유행을 이기지는 못하였다.
마치 켄타우로스(Kentauros)같이 엉덩이 부분을 뒤로 튀어나오게 만든 ‘b'라인의 버슬 스타일은 그 체형을 만들기 위해 엉덩이 부분에 커다란 러플이나 쿠션이 달린 보형물을 허리에 둘러 볼륨을 만들었고, 드레스의 엉덩이 부분 역시 장식을 이용하여 더욱 풍성하게 강조하였으며 스커트 버슬 아래 부분에 트레인(Train, 스커트 뒷 도련을 길게 늘어뜨린 부분)을 달아 워터풀(waterfall) 스타일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대의 S라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19세기형' S라인 스타일의 유행 당시, 여성의 체형은 둥글게 튀어나온 가슴과 배, 그리고 뒤로 뻗은 엉덩이 라인을 만들기 위해 가슴과 배 부분에 커다랗고 둥근 쿠션이 달린 보정물과 엉덩이 쿠션을 착용하였다. 당시 여성의 가슴은 마치 새의 가슴과 흡사하여 비둘기 가슴형태라고 묘사되었다.
이후 20세기, 패션과 유행은 더 빠르게 변화를 겪어나갔고 이상적인 의복의 형태, 즉 이상적인 몸의 형태 역시 다양해 졌다. 1920년대 즈음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부상으로 여배우들의 의상과 그들의 패션이 이상적인 여성상의 기준이 되기도 하였고, 1차 세계대전 직후엔 신여성을 일컫는 H라인의 플래퍼(Flapper)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바지를 착용하게 되고 활동적이며 사회에 진출하여 생활하던 여성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엔 다시금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고 풍성한 스커트 라인의 여성적이고 로맨틱한 X라인의 스타일의 매력에 빠지기도 하였다.
현재, 21세기는 의복으로 이상적 몸을 만드는 시대가 아닌 실제 몸이 다듬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코르셋이나 쿠션 등을 사용해 체형의 라인을 만드는 것이 아닌 실제 몸을 이상적으로 만들고 있다. 몸짱의 유행과 함께 각종 체형관리 방법과 더불어 발전된 의학기술의 도움으로 몸의 겉이 아닌 몸 내부에 보형물을 삽입하거나 추출하여 잘록하거나 풍성한 몸의 부분을 만들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 여성의 이상적 몸매가 S라인이라는 대명사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여성의 체형에서 가슴과 허리, 엉덩이 라인을 생각해본다면 S라인이라는 것은 어쩌면 진정 자연스럽고 건강한 여성의 몸의 형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많은 여성들이 좀더 매력적인 S라인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이고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상적 여성의 몸매가 경향을 달리했던 것을 살펴보면 어쩌면 현재의 죽여주는 S라인의 몸매 역시 추후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모르는 일이다. 또 누가 알겠는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돌고 도는 것이 패션이라면 언젠간 또 다시 펑퍼짐한 D라인이나 밋밋한 H라인, 또는 납작한 가슴과 튀어나온 배가 이상적이고 패셔너블한 여성의 몸매라 칭송 받게 될 날이 올런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