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1
표독스러운 표정 뒤로 수줍음을 숨긴 소녀가 담긴 캔버스, 발그레한 볼과 무방비 상태의 몸짓을 선보이는 봉제인형이 고개를 내민다. 이 아이들을 세상에 꺼내어놓은 사람, 일러스트레이터 한세진이 그들과 함께 모니터에서 벗어나 사람들 앞에 조용히 나섰다. 홍대 앞 작은 카페, 그들의 외출이 시작되었다.
취재│이동숙 (dslee@jungle.co.kr)
사진│스튜디오 salt
작가의 작업실은 일반인에게는 호기심이 가득한 공간이다. 무언가 마법이라도 일어날 듯한 분위기에 여러 재료들이 공간을 휘젓고 다니고 그 속에 미간 주름을 1센티미터 이상 깊이 새긴 작가가 앉아 있을 것 같은 미지의 공간이랄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라면 그 공간에 대한 호기심은 극에 달한다.
일러스트레이터 한세진은 그런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작업실 문을 열고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작업실을 개방했다기보다는 카페와 작업실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게 맞다. 그저 카페를 좋아해서 작업실 겸 카페를 내볼까라는 생각으로 서두르지 않고 공간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작업실과 카페 공간이 50대 50으로 동일하게 공존했지만, 그의 카페를 찾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해 카페공간을 늘려 지금은 카페 한구석 책상 하나가 작업실 전부다.
하얀 캔버스와 울퉁불퉁한 물감들, 색색의 색연필 등이 놓인 그 자그마한 작업 공간도 사람들은 흥미로워하며 들춰보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조심스럽게 구경한다. 작업하는 모습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주변 상황을 잊고 집중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단지, 큰 작업을 하고 싶은데 공간이 작아 좀 아쉽다고.
한세진은 온라인에 ‘두부쩜넷(http://www.duboo.net)’과 ‘마누(www.manoo.co.kr)’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작품도 올리면서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모니터와 온라인의 가상 공간이 주는 제약들이 답답하여 오프라인 공간인 카페를 통해 전시도 하고 작업도 하며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곳은 전시와 소통이 가능한 공간으로 두고, 좀 더 큰 공간을 통해 또 한번 작업 범위를 넓히려고 한다. 커다란 캔버스에 온갖 재료 듬뿍 묻혀가며 그림을 그리고, 나무 같은 단단한 것들과 씨름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Jungle : 카페 겸 작업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한세진 : 워낙 카페를 좋아했어요, 커피도 좋아하고. 그래서 작업실이랑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시작을 했어요. 또, 개인전시를 하고 싶지만 공간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카페를 하면서 전시도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Jungle : 작업 공간이 카페이다 보니 기존 작업실보다 불편하지는 않나요? 반대로 카페여서 좋은 점이 있을까요?
한세진 : 낮에는 카페일 때문에 바빠서 영업시간이 끝난 밤을 이용해 작업을 하거나 중간에 생기는 한가한 시간에만 작업을 해야 되는 점이 좀 아쉽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은 자리 잡는 기간이니까 앞으로 자리가 잡히면 괜찮아 지겠죠.
좋은 점은 예전에 온라인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만 보던 반응을 직접 그림을 보고 얘기를 해주시니깐 좋죠.
Jungle : 카페 외에 작업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세진 : 작가라는 것을 잘 모르시죠. 카페에 걸린 그림을 보시고 작가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디스플레이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요. 작업대를 보고는 사진도 찍으시고 신기해 하시기도 하죠.
Jungle : 작업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되는 데 이 부분도 불편할 것 같은데요?
한세진 : 실제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좀 쑥스럽기도 하고 집중도도 떨어지는데, 그래서 일부러 사람 없을 때 작업을 하거나 손님이 작업대가 안 보이는 곳에 있을 때만 작업을 해요. 하지만 입체물을 만들 때는 집중을 하니깐 주변에 누가 뭐라 하는지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조만간 작업실을 다시 분리할 계획에 있어요. 지금은 작은 작업만 하는데, 큰 작업을 하고 싶어서 여기는 장소가 협소해서 큰 작업은 불가능 하거든요. 손님이 있는데, 망치나 드릴을 사용할 수 없잖아요.
Jungle : 작업 공간이 카페 공간에 비해 무척 작은데요?
한세진 : 원래는 반은 작업실, 반은 카페를 구상했는데 손님이 계속 늘어나게 되니깐 점점 작업실 공간이 줄어들게 되었어요. 카페를 온 손님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진 않다 보니 작업 공간을 줄이게 된 거죠.
Jungle :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다 오프라인으로 나오신 건데, 작품의 성향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한세진 : 원래는 손으로 하는 작업을 더 좋아하는데, 온라인은 한계가 있으니 무척 아쉬웠어요.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그런 작업들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되어 요새는 형태가 있는 입체작업을 더욱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러스트 작품들은 모두 핸드페인팅이었는데, 온라인에 올려진 이미지만 보시던 분들은 카페에 걸린 그림을 보며 새 작품이냐고 물으실 정도로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 그런 부분도 재미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