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8
인디펜던스.
연 매출만해도 30억원을 이미 넘어섰고, KTF 비기, 삼성 애니콜, 엘지카드, TTL, 하나로 통신 등 내노라는 CF는 인디펜던스를 거쳐간다. 인디펜던스가 국내 컴퓨터그래픽 업계에서 선두 그룹이라고 말하는데 누구든 이견이 없다.
* 취재/오규숙 부장
“연필말고도 그림 그리는게 있구나!!”
인디펜던스에 가면 젊은 디자이너 출신 박영민 사장이 있다.
박사장은 최첨단 분야 사업체를 꾸려가는 사람답게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은 기본이고 호기심이 많다. 지금 위치에 있게 된 동기도 바로 “호기심”이다.
박사장이 처음 컴퓨터 그래픽을 접한 건 17년전, 고3때 였다. “연필 말고도 그림을 그리는 게 있더군요. 그 당시 외국에서 만들어진 영상물을 보면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막연하게 컴퓨터 그래픽이 그 꿈을 구현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숫자를 읽으면서 피곤할 줄 모르고 밤을 꼬박꼬박 샜죠.”
홍익대 목공예과에 입학하고 나서도 박사장은 여전히 컴퓨터그래픽에 푹 빠져 있었다.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지던 시절, 전공과 컴퓨터 그래픽을 접목시킬 수 없을까 궁리했다. 그 당시 홍익대는 완고하고 전통적 작업방식을 존중하는 학풍으로 유명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대학생 신분으로 처음 차린 사무실
그러던 차에 친구들과 쌈짓돈을 모아 아예 사무실을 차렸다. 막상 사무실을 차리고 보니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묘연했다. 당시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이해도 못하는 국내 상황에서 비즈니스로 연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한 맥주회사 CF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홍보실로 찾아갔다. 오전 내내 기다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만난 담당자들 반응은 비참했다. 어린학생들이 대견하다는 투였다. 이렇게 몇 군데를 더 찾아다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돈도 바닥이 났다. 대학생 신분으로 차린 첫 번째 회사는 이렇게 문을 닫았다.
“사무실 문을 닫는 마음은 쓰렸지만 이걸로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접지 못했죠”
박사장은 졸업작품으로 4분 길이의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을 준비했다. 그 애니메이션은 전시장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걸 본 학과장의 칭찬은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교수님 생각도 돌려놓았다. 완고하기만 했던 학풍에 변화를 가져온 것과 동시에 사회생활의 첫단추를 걸어준 중요한 만남이 거기서 이루어졌다.
드디어 컴퓨터 그래픽 업계에서 돈벌기 시작
전시회를 보러 왔던 비손텍에 근무하는 사람이 박사장 졸업 작품을 보고 비손텍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한 것이다. 그렇게 박사장의 사회입문은 시작됐다. 처음 자신이 만든 CF가 방영될 때, 그게 신기해서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자랑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에 관한 짧은 얘기 AtoZ
좋아하는 영화?
테리 길리 엄 감독의 브라질, 장피에르 주네&가로감독의 델리카트슨이나 데이 빗 린치감독의 이레이져헤드, 트윈픽스같은 영화들. 컬트라 불리 울 정도로 대중들이 많이 좋아하는 영 화류는 아니지만 고정관념을 넘어선 꿈과 상상 속의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풀어낸 그들의 작품은 나의 둔한 사고에 자극을 주는 환각제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웠는지.어떻게 일 을 시작했는지?
'Flying'나는 어렸을 적부터 난다는 것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있었다.
어떻게 든 날아보려고 높은 곳을 찾아 다니고, 옥상 위에서도 힘차게 몸을 날리는 일을 수없이 했다. 물론 꿈속에서다.
자주 실패하지만 어쩌다 꿈속에서 날 수 있게되면 하루 종일 가고 싶던 곳을 날아다니던 그런 꿈.
그런 꿈을 언젠가 TV속에서 보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꿈.
내가 만든 꿈속에서 마음껏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크리에이티브? 창작?
정말 답도 없고 끝도 없는 길이다. 아이디어를 찾다가 더 이상 생각도 안나고 막힐 때면 음악을 하는 작곡가들이 떠오른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계속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몇 백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면 그들은 정말 위대한 사람들이다.
싫어하는거?
1.남자.
2.고정관념.
3.ABCDEFGHIJKLMNOPQRSTUVWXYZ (최근에 싫어졌다)
무슨 경험?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해보지 않은 것 보단 어쨌건 도움되는 것.
우리가 가진 생각들을 더 풍부하고 진지하게 만드는 것.
우연이던 계획한 것이던 절대 잊을 수 없는 오랜 기억으로 남게 하는 힘. 첫 경험......
공포라?
어느 겨울날 회식 자리에서 술 한잔을 걸치고 12시가 넘어 술 취한 취객이 뒷자리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택시를 탔다. 한강다리를 시속 100km정도로 달리고 있던 잠시 후 뒷자리에 있는 취객에게 기사 아저씨가 몸을 반쯤 뒤로 돌려 술에 취해 얼큰한 목소리로 “어이... #@$$%& -(3초후) ---- -아저씨~~~ %&$*(#@&$(5초후) -----어디가... @@~~@#@$^”란말까지 총 15초가 걸렸다. 난 그때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생각했다. 속이 안 좋다며 내려 달라고 해도 그 아저씨 “계속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나를 위로했다.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추고 문을 열고 도망 나올 때까지 숨막히는 15분. 내 생애 최고의 공포체험이었다. 이런 경험까지는 안해도 좋다.....
돈에 관한 생각은?
무엇인가 열심히 하면 누군가 나에게 준다.
내가 좋아하는 거 그냥 하는 건데도 준다.
근데 잘 못 하면 안 준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한다.
핸디캡은?
술을 잘 못한다. 때론 해야 할 때도 많은 데 잘 안된다. 술자리를 벗어 나려고 몇 번은 취한척해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지만 이젠 정말 취해도 믿어주질 않는다. 그래서 별명이 뺑끼맨이다. 아마도 내가 술을 좀 했으면 회사가 더 번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인디펜던스를 간단히 소개하면...
1996년에 설립했다. 주로 지금까지 광고에 들어가는 3D Animation과 합성 작업을 주로 했고 2년 전에는 원더플데이즈의 특수효과 작업과 자체 기획물인 Egg-Cola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편집부분과 극영화 특수효과 사업부분을 신설하고 부천으로 이전한 애니메이션 사업부는 지속적인 기획물 제작과 확장계획을 가지고있으며 서울의 CF사업부는 올해 6월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여 좀더 낳은 작업환경과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부분을 강화할 계획에 있다. 현재 까지 50명의 제작인원이 있다.
도약계기는?
아직은 도약을 못했다. 이제 준비 중이다. 도약하게 되면 그때 다시 물어봐주면 좋겠다
쉴 땐 머 하냐면?
짧게 쉴 땐 잔다.
어중간 하게 시간이 났을 땐 영화보고.
좀 더 시간이 생기면 낚시간다. 넓은 호수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찌를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내 생활에서 가장 집중력이 강해지는 순간이다 .
바보가 된다. 그게 정말 좋다.
리더십?
강할 때와 부드러워질 때를 아는 것.
나를 따르라 소리치기 보단 소리치지 않아도 따라 주는 것.
근데 소리안치 면 안 따라 줄 때가 더 많다.
이것도 정말 힘든 것 중의 하나다.
맘에 담고 있는 격언?
천재는 타고 나는 것 같다. 배우지 않아도 머든지 잘하거나 한 가지에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 그런데 난 아쉽게도 천재가 아니다.
그래서 난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호기심?
나의
10대 --- 저건 머야? 요건 멀까? 왜 이렇지?
20대 --- 음.............그럴 수 도 있지.
30대 --- 그러든지 말든지
40~ --- 어떻게 될지...나도 궁금하다
직업에 관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정말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
오랫동안 그 일을 해도 즐겁고 힘들지 않은 것.
좋은 사람들?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중요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 주변에는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참 많다.
오랫동안 같이 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빠르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싸다' '빠르다'라는 구호로 국가 경쟁력을 대변하곤 했다.
최근 우리의 경쟁력을 위협하는 다른 국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들의 구호는 '더 싸다' '더 빠르다'이다. 무서운 국가들이다. 이젠 다른 구호를 찾아 봐야 겠다.
혁명?
지금은 산발적으로 쉽지 않은 투쟁을 하는 중. 얼마 후 한국의 애니메이션 연합이 전 세계의 극장을 융단 폭격하는 우리의 찬란한 혁명이 성공하는 그날까지.
패션 스타일?
모두들 양복차림인 모임에서 혼자 오렌지색 셔츠와 청바지에 운동화.
때와 장소를 가려서 챙겨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잘하진 못한다.
이젠 다들 포기 하는 것 같다.
인생행로?
힘들었지만 나중에 웃으면서 되돌아볼 수 있는 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거야라고.....
독서?
'주역' -점을 보는 사람들이 읽는 책이라 하던데.. 개인적으로 나는 한번도 점이나 운세를 누구에게 물어 본 적은 없다. 누군가 내 인생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게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치 또 하찮은 욕심으로 고민하는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 좋다.
헛된 것?
욕심.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것. 정말 버려야 할 것 중의 하나.
주말이라?
평소 때와는 다르게 길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으면 그땐 일요일이나 휴일이 된 거다.
이렇게 살고 싶진 않은데.....
크산티페, 사랑,결혼?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가 있다면 결혼해도 좋다.
Young Min 내 이름이다.
처음만 난 외국인들에게도 Young이라고 불러달라고 하면 아직까진 인정한다.
하지만 이젠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땐 머라고 불러 달라고 해야 할지..
가까이서 보는 자신은...
정말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다.
그나마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항상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때론 그게 힘들다.
그렇게 2~3년을 보내다 엑스포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컴퓨터그랙픽 회사 엑스마키나와 조인할 기회가 생겼다. 디자이너로서 오퍼레이터적인 성격이 많은 업무에 갈등이 깊어갈 즈음이었다. 아하! 아이디어는 이렇게 구현하는 거구나!, 이렇게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이 필요하구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했다.
그러다 신설회사 디지털임팩트로 자리를 옮겼다. 규모도 작고 포트폴리오도 변변치 않은 프로덕션이 살아남는 길은 노력으로 때우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일감을 얻기 위해 스토리 보드 한 장이면 될 일을 동영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그때 처음한 일이 한 케이블 TV 캐치원의 타이틀을 제작하는 거였다. 다행히 반응도 좋고, 케이블 TV와 민영방송국이 앞다퉈 개국하던 시기라서 다른 방송국에서 찾아와 일을 맡겼다. 일도 많았고, 창작에 대한 갈증도 풀어주었다. 문제는 돈이 안된다는 것. 그 뒤 몇 군데 더 회사를 옮기면서 멀티미디어로 포커싱을 해자가면서 컴퓨터 그래픽 시장을 익혀 갔다.
달랑 책상 두개와 컴퓨터 두 대로 시작한 인디펜던스
중대 결심을 한번 또 했다. 지금 인디펜던스 공동 대표로 있는 홍성호 사장과 독립을 하기로 맘을 먹고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구해서 인디펜던스 간판을 내걸었다. 달랑 책상 두개와 컴퓨터 두 대로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각오로 1년 동안은 한달에 30만원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재투자하자고 뜻을 합쳤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덮어버릴 열의에 가득 찼다.
그즈음 대우 싱싱 냉장고 펭귄편 CF를 맡게 되었다. 외국에서 제작하기로 했는데 갑작스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해야 하는 사정이 생긴 것이다.
“일을 맡기러 온 광고회사 임원이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을 하냐면서 다른 프로덕션으로 옮기려고 하더군요. 잘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죠. 고맙게도 우리를 믿어줬고, 결과도 기대 이상이었어요. 그후 IMF가 닥쳐 다들 어려울 때도 우리 회사는 일이 더 많이 몰려들었죠.”
그때 경험으로 박사장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경쟁력만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했다.
날자!!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으로
박사장의 꿈은 인디펜던스를 픽사나 PDI에 버금가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몇 년전부터 차근차근 엄력을 쌓고 있다. CF제작을 기본으로 수익구조를 맞추고,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비싼 수업료를 내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지만 성과도 작지않다. 크고 작은 결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애니메이션 “에그콜라”가 우리나라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시그라프에 출품하게 됐다. 세계시장을 두드리는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실사와 2D, 3D 합성되어 만들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원더플데이즈는 올해 개봉을 목표로 특수효과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요즘 박사장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실감한다. 그 꿈이 단순하고 소박한 것 같지만 작업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웬만큼 노력해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게 박사장 말이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부가가치를 내는 것도 어려운데 여기에다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으면 결국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사장은 성공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자신과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성공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일뿐 결코 성공한 디자이너가 아니라면서 인터뷰를 거부하는 박사장을 설득하는데 명분은 분명했다.
앞선 분야에서 이미 최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거의 전국민)이 “아하! 그 CF 만든 회사”하고 알만한 일을 해낸 디자이너는 이미 많은 걸 이룬 셈이라고 반강제로 인터뷰를 했다.
요즘은 CF 제작만이 아니라 제작경험이 부족한 우리나라 컴퓨터 그래픽업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후배들에게 더 좋은 길을 터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박사장은 늘 골몰한다.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시켜줄 것 같던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여기까지 온 박사장은 이젠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지배하는 날을 꿈꾸고 있었다.